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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파출부들
[머니투데이 홍선근편집국장]세월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지상의 모든 것에 흔적을 남긴다. 사람
들의 몸과 마음에도 자취를 새겨놓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돈 벌러 전쟁터무역의
통역으로 나섰던 젊은이가 저항세력에 인질로 잡혀 구해달라고 부르짖는 절규가 사람들을 쇼크
속으로 몰아넣는다.

돈만 있었어도 그 사지에 뛰어들진 않았을 텐데. 순간적인 아드레날린의 급속 분비. 잠시 그 자
리에 석고상처럼 멈춰서고만 사람들. 이라크파병이라는 국가정책과 개인생명이 서로 맞부딪치는
딜레마가 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어찌할 것인가.

이 일에 관해 사람들의 행동과 눈빛에서 무관심과 체념을 읽는다. 생명경시랄까봐 노골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이에게 개인의 목숨은 도도한 대세
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아우성쯤으로 비쳐진다. 인질을 살려야 한다며 광화문에서 벌어진 촛
불집회조차도 전체적으로는 숙연한 기원의 분위기였지만 일부 경박한 춤과 웃음이 비집고 나오기
도 했다.

인질사태를 예방할 수는 없었는지,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서 살아돌아오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
를 떠나 당사자 입장에서 이번 일의 발단이 무엇인지 꼭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의 처음으
로 시각을 끌어가다 보면 그놈의 돈 때문이다. 모험을 즐기거나 미국이나 한국정부의 명분을 선
전할 생각은 없었다. 돈 벌러 이라크에 갔다. 위험이 있는 만큼 돈벌이의 수준은 높았을 거고 그
래서 갔을 거였다.

이 땅의 우리 현실이 이번 사건의 출발점이라고 하면 과장이고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그렇지
만 지금 당장이라도 이라크에서든 그보다 더 위험한 곳에서든 돈벌이 막일이 있다면 희망자가 줄
을 이을 것이다. 부도나 신용불량 파산 가난 궁핍의 탈출구라면 무엇이든지 잡을 사람들이 너무
수두룩하다. 상황이 심각해 다 아는 사실인데도 자꾸 얘기한다.

최근 제조업을 꾸리며 1인다역을 하는 기업인이 현장에서 접한 세상물정이라며 전해준 이야기.
3가지다. 우선 `달방"을 아시는가. 처음 듣는 말, 모른다. 달방이란 보증금없이 지하 단칸방에서
월 25만원 정도를 내고 일가족이 사는 방을 가리킨다. 사글세방보다 더 열악해진 거주방식이다.
지하상가를 하던 곳 중에서 손님이 없어 망한 자리에 이런 달방이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둘째는 아파트에서 파출부일이 절반 이상 사라졌다. 30% 정도가 남아 있는 실정이다. 파출부 일
을 하려는 대기자만 쌓여 있다. 웬만하면 파출부를 쓰던 부부들이 요즘은 다 직접 집안일을 해버
린다. 파출부를 쓰려는 사람 쪽에서 사람을 구하려고 애쓰던 풍경은 먼 옛날 얘기다. 파출부 일
감이 줄었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정도가 극심해진 것같아 YWCA에 확인해 보니 대체로 사실이다.
파출부를 1주일에 1∼2회 쓸 경우 돈벌이가 너무 적어 아예 3회 이상만 주선해 줬는데 요즘은 1
회조차 감지덕지다.

일용근로자시장에선 한달에 10일 정도만 뽑혀간다. 막일을 하고자 해도 일감을 찾기 힘든 상황
이다. 그래서 부부가 막일을 하면서 살려고 버둥거려도 살기가 힘들다.

이 말을 전해준 기업인 자신도 사업을 접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 시기는 언제인지 하는 고민을
항상 머리 속에 넣고 다닌다.

경제적인 수치로 접근해 보면 도저히 이런 풍경이 잡히지 않는다. 내수가 엉망이지만 수출 덕분
에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1분기 성장률이 5.3%라는 카드를 들이밀면 극빈층의 이런 풍경
은 마치 지어낸 거짓말같다. 그러나 이런 불일치가 더 문제가 아닐까. 경제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데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면 애초에 전체를 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
다.

이라크에서 납치된 젊은이가 무사하길 기원하며 전체 성장률 통계가 놓치고 있는 경제현실의 심
각한 문제들을 다시 짚는다.

홍선근편집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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