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仁祖대왕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1636년) 이야기이다. 국호를 淸이라 고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한 청 태종은 우리나라에 兄弟관계에서 君臣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조정은 일전불사를 주장하는 主戰派와 전술 차원의 화목을 강조하는 主和派로 갈라져 큰 논쟁이 벌어졌다. 강경파인 斥和 주전론이 득세했다.
전투 결과 열흘만에 청나라 군대가 당시 수도인 한양을 점령한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고 온갖 치욕을 받아야 했다. 인조대왕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삼전도(三田渡, 지금의 송파)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 신하의 예를 바쳐야 했다.
그나마 주화파 崔鳴吉 등이 애쓴 덕분으로 두 왕자를 볼모로 보내는 선에서 왕조가 문을 닫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주전파였던 金尙憲과 삼학사(三學士,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이 청에 잡혀가 옥사하였다.
후세 史家들은 이를 두고 "애국의 길과 방법이 다를 뿐 척화파도 주화파도 모두 애국자였다."라고 적고 있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일마다 兩極端論이 맞서 서로 치고 받는 볼썽 사나운 대결 현상을 자주 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분야가 다름 아닌 남북문제이다. 입으로는 모두들 '평화통일'을 말하지만, 그 방법론에서는 외세에 의한 남북 분단 이후 56년 넘게 유독 이 땅에서만 이념논쟁이며 색깔론이 끊이지 않는다.
남북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까지 치렀으니 세월이 지났다고 쓰라렸던 과거사가 말끔히 사라질리 없다. 아직도 남북간의 전쟁 상태가 법률적,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의 찌꺼기가 이곳 저곳에 남아 있음도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한쪽에서는 여전히 이념의 장벽을 높이고 감정의 골을 더 깊이 파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자나깨나 통일만 외치는 맹목적인 통일지상주의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 양극단이 만나 충돌을 일으키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상대방을 삿대질하며 '수구세력'이니, '빨갱이'라는 등 서로 욕지거리를 주고받고 있다.
반세기동안의 남북대결 현상은 바야흐로 온 지구촌이 脫이념화 된 시대 조류마저 거스르며 오히려 '남남갈등'으로 세분화되고 탈바꿈하고 있다.
동서독이 극적인 통일에 이르기까지 걸어 온 길을 되짚어 보면 이같은 남남갈등도, 남북대결도 안고 나가야 할 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갖가지 갈등과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서독 국민과 정부는 의연히 브란트 수상의 東方정책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그 결과가 다름 아닌 독일 통일이라는 기적이었다. 꾸준히 참으며 화해와 교류 협력을 추구해온 독일민족에게 하늘이 내린 축복이며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서독에서는 '통일'이라는 말의 사용마저 아끼며 일체의 정부기구나 단체의 명칭에서 통일이란 간판을 달지 않았다. 괜히 방정을 떨어 상대방(동독)의 심기를 흐리거나, 오해를 유발하지 않으려 한 배려였다.
통일에의 염원이 간절할수록 허풍스런 말과 행동을 삼가해 온 것은 자못 '동양적'이다. 말만 앞세우는 우리와 너무 대조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통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통일할 자격을 갖추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무책임한 흡수통일론을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고 피흘리지 않고 통일이 될 리도 없으려니와, 무조건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목소리만 크게 키운다고 통일이 올 리도 없다.
우리는 냉철한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통일에의 의지와 갈망이 크면 클수록, 더욱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화해와 교류협력이 선행되지 않은 평화통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켸켸묵은 이념논쟁이나 색깔론을 들먹이며 인도주의적 지원마저 '퍼주기'라고 매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는 것은 緣木求魚격이다.
통일할 준비와 자격은 이같은 선행조건의 이행으로부터 시작됨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남북관계에 정치적 목적과 당파적 정략이 끼여드는 시도를 배격하며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는 자세야말로 통일의 첫걸음이다.
통일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버리고 우선은 화해, 협력 그리고 평화 유지에 주력하는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덕목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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