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 “한국에서 다시 일어날까 싶을 정도의 후진형 정치 스캔들이자 기업 스캔들”이라면서도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임명 두 달 만에 총리가 물러난 것에 대해선 어떤 형태로든 국민에게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 전 시장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 정부에서 2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것에 대해선 “사면이 지나치게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여야(與野) 누구든 이 사건을 빌미로 과도한 정치 공세를 편다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22일 전화 인터뷰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가진 대면 인터뷰 등 2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면서 제가 추진했던 정책들이 전부 백지화되고 그 가치가 폄하당하는 걸 보면서 (사퇴를) 후회하기 시작했다”며 “시장이 바뀌면 이 지경까지 가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또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에 대해선 “불쑥 (야권과) 전쟁 상태에 돌입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 역풍을 초래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보고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나.
“낙후된 우리의 정치·기업 문화로 인한 대형 정치 스캔들이자 기업 스캔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업이 정치권의 힘을 빌려 생존하고 정치권도 이를 통해 도움을 받는 건 이제 거의 끝난 거 같다. 한국에 다시 일어날까 싶을 정도의 후진형 스캔들이다.”

- 이완구 총리 사퇴는 어떻게 보나.
“당연한 사퇴라고 본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총리 본인이 더 큰 부담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 자정을 넘긴 한밤에 돌연 사퇴했는데.
“모양과 절차상으로 좀 부적절한 면이 있었지만, (이 총리가) 빨리 결단을 한 것에 대해선 평가를 해야한다.”

-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보나.
“대통령은 모든 인사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임명 두 달 만에 총리가 물러난 것에 대해선 사과든 뭐든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성완종 리스트’는 ‘표적 리스트’란 비판도 나온다.
“누가 보든 본인(성 전 회장)의 주관적 판단이 담긴 메모다. 국민은 이 사건이 성 전 회장이 평소 기록하는 객관적인 장부에서 시작된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2차례 사면을 받았는데.
“사면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비판의 소지가 있다.”

- 서울 관악을 재·보선 지원 유세를 하고 있는데 분위기는 어떤가.
“성완종 파문이 터졌을 때만 해도 판세가 큰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영향이 크진 않다. 국민이 여당도 야당도 모두 부패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태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야(與野) 누구든 이 사건을 빌미로 과도한 정치 공세를 편다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오 전 시장은 2011년 야당의 100% 무상급식 안(案)을 반대하며 이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쳤지만 개표 요건(33.3%)에 못 미치는 투표율(25.7%)이 나오자 시장직을 사퇴했다.

- 최근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에 대한 견해는.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좀 이른 결정이었다.”

- 왜 이른 결정인가.
“내가 올 초 아프리카에서 귀국했을 당시 여론조사들을 보니까 무상복지는 경계해야 한다는 응답이 60%가 넘었다. 그걸 보고 무상복지가 얼마나 재정적으로 부담되는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저변에 확대되고 있다고 봤다. 우리 국민의 혜안에 감탄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지사가 그런 결정을 했고, (무상복지 부작용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려 분위기 확산에 역행하는 현상이 생겼다.”

-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건가.
“내 판단에는 무상급식 수혜 범위를 소득 하위 50%나 70%까지도 타협 과정에서 양보할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한다. 양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전면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데 주안점을 뒀어야 하는데, 불쑥 (야권과) 전쟁 상태에 돌입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 부작용, 역풍을 초래했다.”

- 어떤 역풍을 말하는 건가.
“(경남도에서) 단식·삭발 투쟁이 등장하고, 진보매체에선 한 학교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급식비 못 낸 사람은 먹지 말라’고 했다는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 (반격의) 빌미를 준 게 아닌가. 무상복지로 (정치적) 승부를 걸겠다고 작심하고 있는 진영은 굉장히 용의주도하다. 그쪽을 상대하려면 정교하게 접근해서 반대 논리를 최소화 해야 한다.”

- 본인도 2011년 야당에 양보했다면 무상급식으로 시장직까지 던졌을까.
“나는 2011년 야당과 협의를 하면서 처음에는 (무상) 급식 혜택 범위를 소득하위 30%를 제시했다가 막판에는 70%까지 양보했었다. 그러나 야당은 상위 30%까지 다 주자는100% 무상급식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됐다.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극빈자부터 최상위 부자까지 똑같은 액수를 주는 무상복지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복지 확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職)까지 걸었다.”

- 무상복지를 표를 얻기 위한 ‘정치 복지’라고 했는데, 현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도 표를 의식한 것 아닌가.
“둘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여러 복지 정책을 시행하려면 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계속 증세없는 복지를 말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난관을 돌파해서 증세를 해도, 지금처럼 ‘정치 복지’를 하게 되면 예산이 금방 소진되기 때문에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또 어느 시점에 불가피하게 증세를 해야한다면 대통령 입장에선 그를 위한 숙성 과정, 정지 작업이 필요하다.”

- 2011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야권발(發) 무상복지에 어떻게 대응할 것 같나.
“시장직을 건 것은 후회했기 때문에 직을 거는 것을 제외하곤, 그때보다 더 강하게 싸웠을 것 같다.”

- 시장직 사퇴를 언제 후회했나.
“이후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면서 제가 서울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일관되게 추진해온 사업이 전부 백지화 되거나 폄하되는 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예를 들면 멀쩡하게 완성해서 물려준 건축물(세빛둥둥섬)에 문을 닫아 걸었고, 한창 공사를 진행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예산을 대폭 깎았다. 시장이 바뀌면 이 지경까지 가는구나 싶었다.”

- 요즘은 세빛둥둥섬과 DDP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세빛둥둥섬은 3년간 폐쇄됐고, DDP는 개장이 2년 정도 늦어졌다. (박원순 시장의 조치로 인한) 기회 비용이 엄청나게 큰 거다.”

- 여권에선 시장직 사퇴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당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이외에 왕도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