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자유게시판 > 민청학련 이철에게 [들어라, 양키들아]를 사다준 그의 아비 이근진

다음은 2004년 경의 이철 사이트의 '이철 에세이' 에서 필자가 프린트해둔 부분이다. 이철 사이트는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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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가난한 풍경속에서 걸어온 아이 2]

.............. 내가 겪은 4.19는 그렇게 왔다. 기다려도 오지 않던 전차, 거리의 눈부신 갓 돋은 플라타너스 잎사귀, 아련한 봄 햇살속으로 달려가던 시위대, 그들이 외치던 '자유'와 '민주'라는 구호들의 그 먼 울림들, 불현듯 내 눈썹에 박힌 투명한 유리 조각, 손바닥에 묻어나던 선명한 핏자국......

(중략)

언제쯤 병이 나을지 기약이 없었다. 학교에는 결국 휴학계를 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갔고 2학기도 거의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퇴원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차도가 있었다. 집에서도 얼마 동안은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했다. 이 기간에 운동으로 중단했던 독서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주로 책을 구해다 주셨다. 나는 헤세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도 읽었다.
아버지가 구해준 책 가운데는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외국인 저자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도 낯설었다. [들어라 양키들아!],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가 쓴 책이었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학생의 필독 목록에 오를 만큼 대중화되었지만 당시는 구하기도 어려운 신간 서적이었다.
밀즈는 생생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쿠바가 공산화된 원인과 과정을 성명했다. 쿠바라는 나라가 북한과 마찬가지로 자유세계의 적이며 철의 장막 소련의 지령을 받아 인류를 위협하는 "빨갱이' 나라라고 귀가 아프게 들어오던 나였다. 그 나라의 집권자인 카스트로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독재자요 살인마라는 것이 그 때까지 쿠바를 바라보던 우리의 시각이요 상식이었다.
라이트 밀즈는 그런 상식을 완전히 뒤엎고 있었다. 상식의 대반전, 나는 침을 꼴깍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오히려 카스트로에 의해 무너진 바티스타 정권이야말로 쿠바 민중을 처참한 지경으로 내몬 부패 권력이었으며, 폭력과 살상을 서슴치 않은 반민주 세력이라는 사실이 밀즈의 울분에 찬 격정적인 문체로 까발려지고 있었다.
극심한 빈부격차, 권력의 억압과 착취, 음모와 테러, 음험한 제국의 그림자, 고난속의 쿠바 민중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카스트로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의 대열에 동참했다. 현지인들의 분노에 찬 증언으로 밀즈는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으로서 저자의 논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광야의 호통소리를 듣고 난 뒤처럼 한동안 귀가 먹먹했다. 내 머릿속을 온통 뒤집어 놓는 혼란과 그것을 제압해오는 신선한 사고의 전환에 나는 몸서리쳤다.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체험이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이처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흥분했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실은 허구일 수도 있다는 이 놀라운 발견! 나는 충격을 받았다. 책읽기를 통해 처음으로 맞딱뜨린 전율이었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카스트로 정권도 나중에는 부패했고 국민 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쿠바인들은 스스로 선택한 혁명과 카스트로 정권을 버리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쿠바 난민'사태가 그것이다.

타락한 혁명의 징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그 책 이후에 펼쳐진 세계였다.

밀즈는 세상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내게 주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다.

이 새로운 시각이 세상 속 모든 사물의 성격과 존재를 바꾸리라. 이것은 내가 병 중에 얻은 귀중한 깨달음이었다.

이 체험은 내 삶과 정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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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을 빨갱이로 교육시킨 者는 그의 아비 이근진이다. 부자가 똑같이 비틀린 사상, 惡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