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결혼한 뒤 첫 집을 장만한 김모씨(33여)는 이런 게 사는 재미구나라며 활기에 찼다. 은행에서 주택을 담보로 8천만원을 대출받은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데다 자신도 직장이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새로 산 집으로 이사한 지 두달 만에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데 이어 남편마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됐다. 가계의 유일한 소득은 김씨가 버는 월 1백80만원가량이 전부였다. 그나마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들에게 매달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결국 김씨는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형편이 어려워져 대출이자를 3개월쯤 연체했지요. 그랬더니 은행에서 기한이익 상실로 집이 경매에 부쳐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뇌졸중으로 거동조차 불편하신 시아버지가 계신데 길에 나 앉을 수도 없고. 은행에서는 다른 데서 돈을 빌려서라도 이자를 갚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담보가 없어도 돈을 빌려준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고 대부업체에 전화했지요.
대부업체는 1백50만원을 빌리는데 수수료 35만원을 뗀 뒤 10일마다 이자만 30만원씩을 갚으라고 했다. 김씨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 마음에 돈을 빌렸다. 그러나 한 달이 안 돼 또다시 이자를 연체하게 됐고, 대부업체는 5백만원을 더 빌려 줄테니 그 돈으로 이전에 빌린 1백50만원의 이자를 갚으라고 했다. 물론 고금리를 조건으로 내건 대출이었다. 대부업체를 이용한 경력 때문에 김씨는 더 이상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처지에 몰렸다. 사금융의 늪에 빠져든 것이다.
최근 들어 사금융 피해자가 많아지는 것은 가계빚 급증이 드리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거나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람들은 가계부채에 허덕이다 사금융업체에서 돈을 빌려 쓴 뒤 고금리의 덫에 걸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적게는 연 6~7%에서 많을 경우 연 1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이 찾는 대부업체의 평균 대출금리는 지난해말 현재 196%에 이르러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의 최고 30배를 넘는다. 법정이자율(연 66%)의 3배를 넘는데도 서민들이 사금융업체를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가계빚으로 신용도가 낮아지면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조성목 서민금융지원팀장은 은행카드사 등에 몇 차례 연체가 있거나 대부업체의 신용조회 기록만 있어도 은행권에서는 대출이 안된다면서 그러다보니 일반인도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사금융업체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이 연체율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담보능력이 없거나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에게는 소액대출마저 꺼리는 실정이다.
금융연구원 자료를 토대로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90년대 회사원주부대학생 등 일반인의 사금융업체 이용 비율은 4.7%에 그쳤고, 나머지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나 중소상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용자의 76%가 일반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금융업체 이용자 10명 중 8명가량이 일반인일 정도로 가계빚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이 많다는 얘기다.
금융연구원 강경훈 박사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뒤 연체없이 원금을 모두 갚았다고 하더라도 대부업체 이용 경력이 문제가 돼 은행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며 이는 대부업체 이용자에 대한 신뢰할 만한 신용정보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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