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속담에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있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죽끓듯하는 조령모개(朝令暮
改)를 뜻한다. 고려시대 어떤 관원이 공문을 기안, 하인
을 시켜 보냈다. 이튿날 보니 바꿔야할 것이 있어 다시
고쳐써서 다른 하인을 시켜 “앞서 간 하인의 것을 회수
하고 이것을 전하라” 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고쳐보
낸 공문에도 또 고쳐야 할 것이 있어 또 다른 하인에게
“빨리 뒤쫓아가 두사람을 다 불러오라” 했다.
하인이 달려가보니 앞서 간 두 사람은 아직 집에서 출발
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언제나 그러기 마련
인데, 무엇하러 애써 가다가 되돌아 오겠느냐” 했다.
조선조 우의정을 지낸 노수신(盧守愼)이라는 대문장가가
있었다. 그는 조정에서 하루종일 있어도 나랏일에 관한
방안이나 정책등을 내놓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신
하가 그를 천거한 율곡에게 왜 저런 무능한 인물을 추천
했느냐고 따졌다. “공연히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보
다 낫지 않소” 율곡의 대답이었다.
뒤집기를 밥먹듯 하는것 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고 가
만히 있는 편이 폐해가 적다는 것. 이런 세상이치 때문
에 ‘옛법고치지 말고 새법 내지 말라’는 말이 생겨났
다.
우리 경제난맥의 주범은 ‘정책의 변덕’이라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일관성 없고 무원칙한 정책운
영, 인기영합적인 선심정책, 잦은 말바꾸기가 경제를 망
치고 있다”는 소리가 높다. 정부가 증시부양책을 발표하
면 오히려 주가가 떨어질 정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신뢰도가 이 모양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정책을 ‘샤워용 수도꼭지’에 비유하
기도 한다. 샤워를 하다 물이 뜨거워 찬물표시쪽으로 꼭
지를 틀면 물이 금방 차가워지고, 더운 표시쪽으로 틀면
금새 뜨거워진다는 것. 경제정책의 선택과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수도꼭지론’이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수도꼭지를 너무 자주 바꾸는 통에 정책
이 갈팡질팡, 도무지 국민이 갈피를 잡을수 없어 정책의
신뢰도가 더 떨어진다. 이젠 ‘정부를 믿으라’고 아무
리 외쳐봐야 ‘양치기 소년’의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으
니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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