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업체가 4년전 수도권 신도시에 들어설 오피스텔을 분양하면서 계약자들에게 은행 대출을 알선하고 분양금을 챙긴 뒤 부도를 내자, 오피스텔 구경은 커녕 통장조차 보지 못한채 대출승인 도장을 찍었다는 이유로 빚더미를 짊어져야 했던 한 가장(家長)이 분신 자살을 시도한 것을 비롯 수백 가구의 가계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은행측은 "대출을 신청했던 분양계약자들이 지난 3년 6개월동안 이자를 한번도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면서 대출의 성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채 은행직원들이 부정 대출을 저지른 것처럼 근거없는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맞섰다.
'3000만원 대출에 이자만 2000만원.'
살인적인 고리 사채업자들이 저지른 횡포가 아니다. 형체가 없는 경기 고양시 오피스텔 '청구 오딧세이'를 지난 97년 분양받은 계약자들이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다.
지난 97년 10월 경기 일산 신도시에서 (주)청구가 분양하는 오피스텔 '청구 오딧세이'를 분양 계약한 550세대는 260억원을 대출받았고, 보람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은 (주)청구의 계좌로 260억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주)청구가 부도를 내면서 오피스텔은 지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분양계약자들의 이자만 불어나기 시작, '대출금 3000만원 이자 2000만원'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빚으며 수백 가구의 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18일 일산청구 오딧세이 계약자 비상대책위원회(http://www.ilsan1009.com)에 따르면 '지난 97년 10월초 (주)청구가 경기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 소재 '청구오딧세이' 오피스텔을 분양하면서 보람은행(현 하나은행) 및 장기신용은행(현 국민은행)과 함께 중도금 대출을 널리 홍보했고 당시 분양계약한 936가구가운데 550세대가 260억원의 대출을 신청했다. 이 중도금은 1998년 3월 1차 중도금 납부를 시작으로 총 10회에 걸쳐 순차적으로 집행될 예정이었으나 보람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은 분양계약을 하자마자 중도금 대출자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채 비밀리에 중도금 총액 260억원을 (주)청구의 계좌로 일괄 지급했다.
대출은행인 보람은행(현 하나은행)과 장기신용은행(현 국민은행)은 당시 이런 사실을 계약자 및 대출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대출을 신청한 분양계약자들은 260억을 통장도 받지 못하고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채 대출승인 도장을 찍었다는 죄 아닌 죄(?)로 인질로 붙잡힌 셈이다. 이후 (주)청구 장수홍 회장이 한나라당 대선자금 불법지원에 따른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주)청구는 내부 경영부실과 막대한 부채로 인해 부도를 내고 말았다.
비대위는 또 '보람은행을 승계한 하나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을 합병한 국민은행은 원금과 이자를 갚으라고 계약자들을 볶았고, 이들 은행으로부터 대위변제 요구를 받은 서울보증보험은 압류통지문을 남발하면서 부동산 가압류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 '억울한 서민을 신용불량거래자로 만들어 사회생활을 가로막고 있다. 하나은행이 현재 원금 3000만원 대출기준 할증이자를 적용해 1900만원의 이자까지 갚으라고 협박하고 있는 와중에 (주)청구는 법정관리 상태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한 채 황량한 백석동 건설현장은 4년째 노란 먼지만 날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비대위는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부당한 대출금 유용에 협력한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기존 대출약정을 유지하고 살인적인 이자를 탕감하고 서울보증보험은 대위변제를 취소하고 모든 대출자 가압류를 즉시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또 '(주)청구 법정관리인은 하루빨리 공사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0일 하나은행으로 부터 9000만원을 대출을 받은 장 아무개씨가 개인사업마저 여의치 않자 1년전에 가출, 노숙생활을 전전하다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치는 일이 벌어졌다. 장 씨는 특히 '내 한몸 죽어 오디세이 가족은 해결돼야 한다'는 유서를 모자속에 지니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반면 하나은행 론(LOAN CENTER)센터측은 "많은 계약자들이 대출의 성격과 정황에 대해서 잘못 이해한 상태에서 영업을 방해하고, 비방광고를 게재하는 등 정당한 채권자로서의 권리행사를 왜곡해서 표현하고 있다며 항변하고 나섰다.
하나은행측은 "중도금 대출인데 일시에 실행됐다. 계약자들에게 통보 없이 실행됐다'는 지적에 대해서 "이 대출은 중도금 대출이 아니다. 중도금 대출이라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해진 기일에 대출이 실행되나 이 대출은 분양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이다. 계약자들은 대출약정서 작성 당시 '대출금 실행동의서 및 위임장'을 작성했고 이 동의서에는 '1997년 10월중 청구가 지정한 날에 대출을 실행한다'라고 명기돼 있었다. 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일부 계약자들에게 당시 은행 직원이 충분히 구두로 설명했으며, 이는 법정에서의 다툼에서도 인정된 바 있다"면서 "이 대출은 특정 일자에 맞추어 실행되는 중도금 대출이 아니며, 대출이 언제 실행될 것인지를 계약자들은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계약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또 '이자를 (주)청구가 내는 대출이기에 이자를 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 대출의 계약 당사자는 계약자들과 하나은행, 그리고 서울보증보험이다. (주)청구는 대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청구가 이자를 내야 한다'는 주장은(주)청구가 계약 당시 선전한 '트리플대출'이라는 안내장 때문으로 알고 있다"면서 " '트리플대출'은 계약자들이 내야 할 이자를 청구가 대납하고 나중에 준공시점에서 그동안 (주)청구가 대납하였던 이자를 계약자들이 정리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계약자들과 (주)청구와의 계약에 따른 것일 뿐이다. 대출을 받은 계약자들은 당연히 원금과 이자를 정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측은 "(주)청구가 부도를 낸 후 비대위는 대출이 부당하게 취급됐다며 당시 취급 직원을 형사 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리됐다"며 "계약자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 당시 직원이 '(주)청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이 게시돼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집단대출의 연체로 인해 어느 누구를 불량등재 등록을 한 일은 없다. 몇 사람이 불량등재 됐다고 주장했으나, 확인 결과 다른 은행이 불량등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3천만원 대출에 이자가 1900만원"이라는 얘기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98년 5월3일부터 발생한 이자는 현재 200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계약자들이 과거에 한번도 이자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3년 6개월동안 누적된 이자인데, 매일 연 19%의 이자율을 적용한다"고 덧붙였다.
하나은행측은 "하나은행이 그동안 기울여 온 노력이 폄하돼 전파된다면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다수의 계약자들은 하나은행은 곧 무성의한 은행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것"이라며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 들여야지, 결코 과장하거나 폄하해선 안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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