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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고백-초임시절 회고 경관

엄주엽 [email protected]

먼저 이 고백이 청렴하게 열심히 복무하는 대다수 선배·동료 경찰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명을 밝히고 고백하고 싶습니다만, 저 역시 사랑하는 가족을 둔 가장으로서 자신을 숨기게 됨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1997년 경찰공무원으로 들어와 현재 ××지방경찰청 산하 모 경찰서 교통사고처리반에서 근무중인 경장 김충근(가명)이라고 합니다. ××도 A군 내에 있는 B파출소가 첫 근무지였습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공무원 부정부패 척결’ 구호가 난무하고 파출소에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작년 9월부터 지역별로 파출소가 ‘순찰지구대’로 통·폐합돼 지금과는 환경이 조금 달랐을 때였지요. 그래도 경찰 동기들을 만나면 지금도 상황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첫 근무 파출소에는 경찰대학을 나온 20대 소장이 있었지만, 경찰생활에 이력이 붙은 40대 후반의 경사급 부소장이 소장을 ‘왕따’ 시키고 직원들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보통 관내 갈빗집 등 업소를 돌며 용돈을 얻어 쓰고 공짜밥을 먹고 하는 것은 모두 부소장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별별 일이 다 있더군요. 읍내에서도 벗어난 지역이라 부소장 정도면 관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고 있었습니다. 우리 관내에도 몇몇 사람이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었지요. 신입인 저는 몰랐지만, 부소장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김성찬(56·가명)씨도 부소장의 ‘밥’이었습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이 있던 김씨는 이 지역에 개발바람이 불자 ‘졸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려고 몇 년 동안 노력하다 포기한 분이었습니다.

김씨가 무면허에 음주운전을 자주 하다보니 부소장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소장은 누군가에게 음주운전하던 김씨의 차를 일부러 살짝 들이받게 했습니다. 부소장은 무면허 음주운전에 사고까지 내 당장 구속될 처지에 놓인 김씨를 을러 500만원을 받아 차를 들이받은 사람에게 100만원을 떼주고 파출소 직원들에게 5만원씩 나눠준 뒤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습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울분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쩌지 못하겠더군요. 저는 말단 순경부터 출발했지만, 처음엔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3차 시험까지 통과해 마침내 충주에 있는 경찰종합학교에 입교했을 때는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각오는 6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일선 파출소에 발령을 받자마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계속 근무해야 하는지, 지금까지도 갈등하고 있습니다.

보통 파출소에서 돈을 주고 받을 때는 감시용 카메라를 피해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부소장이 민원인과 화장실에 들어가면 우리는 ‘금고(金庫)’에 들어간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는 관내 유지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냈지요.

그런데 저의 경찰 동기들과 만나보면, 제가 겪은 부소장과 비슷한 사람들이 여전히 여기저기 꽤 많더군요. 정치인들의 불법자금 수수를 욕하지만 자기 일처럼 느끼진 못합니다. 규모도 큰 데다 기업의 돈이니 ‘눈먼 돈’이라고 생각해서일겁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이런 비리는 정말 시민의 고혈을 빠는 일이란 느낌이 듭니다. 그들은 걸리지도 않고 정년 때까지 해먹을 건 다 해먹습니다. 그걸 보면서 경찰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순경들도 조금씩 부소장 같은 선배들에게 배우게 됩니다.

내리막길 아래에서 2시간 정도 과속차량을 단속하면 보통 30만∼40만원은 들어옵니다. 안 받으려고 해도 일단 잡으면 돈을 내밀죠. 뇌물을 주면 과중처벌 당한다고요? 웃기는 얘기입니다. 어떤 경찰이 뇌물 준 사람 구속시켰다고 언젠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 우리는 ‘육갑 떤다’고 비웃었습니다. 저의 이런 ‘고백’도 공무원들 사이에 비웃음거리가 되겠지요.

범인을 잡아도 진급할 사람에게 공로를 넘깁니다. 진급할 사람에게 포상을 받게 해서 진급을 돕는 게 관행처럼 돼있습니다. 동료가 결혼하거나 경조사가 있을 때 관내 업소들에게서 상납 받는 것은 아직 기본입니다. 순찰차가 고장 나면 관내 정비소에 가서 간단한 건 무료로 수리하는 것도 변함이 없습니다.

환멸을 느끼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시작한 경찰생활이지만, 이젠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골적인 방법은 쓰지 않지만 민원인이나 관내 유지들이 내미는 돈을 거부하지 않고 못이기는 척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경멸하는 몇몇 선배 경위의 모습이 어쩌면 10년, 20년 뒤의 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가끔 소름이 돋습니다. 절대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아비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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