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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쉼터지 ‘돼지우리’나 다름없다”

노숙인지원체계점검 2- 열악한 제도적 지원, 내부 행정 불투명.. 쉼터 개선책 요원

미디어다음 / 전실노협 조성준 간사

옷깃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알립니다. 밤이되면 슬슬 차가워지는 기운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입니다.

노숙인지원단체들은 여름에도 쉼터의 입소율은 동절기와 엇비슷하다고 전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거리의 노숙인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는 거처가 없거나 집을 떠나온 노숙인들이 1차적으로 접하는 생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숙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노숙인의 상황과 형편에 주거 복지 체계가 진지하게 고민돼야 하고 그에 따른 복지 행정의 실효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숙인 지원 문제의 해법은 어디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을까요. 미디어다음은 노숙인 지원 체계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하고, 거리- 쉼터- 쉼터 이후의 대안을 진단한 전실노협의 기획 기사를 소개합니다.
98년 IMF 노숙인 거리로 쏟아져.. 전시상황 방불 임시방편 쉼터 급조

ⓒ미디어다음 김준진

97년 11월 21일 한국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그 이후 한국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노숙인쉼터는 이러한 격변기에 만들어졌다.

98년 전국각지의 무료급식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전국의 주요역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어 노숙을 시작하였다. 마치 전시상황과 비슷했다. 아무도 이러한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숙인 증가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료급식을 이용하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노숙인들의 거리생활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대책이 논의되고 집행되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일시적으로라도 거주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노숙인 쉼터를 설립할 것을 합의하고, 가능한 조직을 중심으로 쉼터를 개소하기 시작하였다.

허나 쉼터를 만드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노숙인에 대한 여론은 동정적이고 우호적이었지만 막상 자신이 사는 곳에 쉼터를 만들겠다고 하면 여론은 싸늘하게 변하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기존 사회복지 시설 중 종합사회복지관에 노숙인 쉼터(희망의집)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정책이었으나, 당장 노숙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시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노숙인쉼터는 98년 5월부터 99년 1/4분기까지 약 10개월 만에 전국에 160여 개소가 만들어졌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 정도 수의 복지시설을 만든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임시방편으로 쉼터 설립 후…전문화, 유형화 등 후속 대책은 뒷전

이처럼 노숙인쉼터는 긴박한 응급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쉼터가 개소된 이후부터였다. 정부와 민간 기구 사이의 근본적인 인식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 단체들은 쉼터 개소 이후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제도 보완과 쉼터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정부는 ‘이제 할만큼 대충은 한 것 아니냐’며 숨을 고르고 천천히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때문에 쉼터의 재자활 사업, 쉼터의 유형화·전문화 등은 쉼터 개소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지만 아직까지도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이다.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환경
간이영수증으로 보약값 처리? 불투명한 행정도 고질적 문제

쉼터의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1∼2평 남짓한 방안에 6명이 무리지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장기간 세탁을 하지 않는 이불 10여장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방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화장실에도 비누 등 기본적인 세면도구도 없는 등 위생상태도 엉망으로, 말이 쉼터지 ‘돼지우리’나 다름없었다.” ?언론 보도 중 한 노숙인 -
“실태점검을 나갔더니 ‘원장님 보약값 영수증’이라며 떡 하니 붙여 놓았더라구요. 그것도 문방구에서 파는 간이영수증으로... 수 십 만원짜리 영수증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 놓으니 참 답답하고, 어처구니도 없구...” - 노숙인 쉼터 담당 공무원 -
위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쉼터의 문제는 쉼터 외부의 정책적 문제와 운영 조직 내부의 문제로 나누어진다.

쉼터 개소 이후 열악한 환경에 대한 문제는 줄기차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늘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제도 개선을 통해 획기적인 환경 개선을 기대했지만 부칙은 “5년 유예”라는 단서가 붙었다. 행정당국은 “결국 쉼터 시설 문제는 ‘운영주체의 몫’”이라며는 발뺌을 하고 있다.

물론 열악한 제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안락하고 깔끔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쉼터도 많다. 이것은 쉼터의 운영자와 생활하는 노숙당사자분들의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운영 주체들의 자발적 노력만으로 열악한 쉼터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력 부족 때문에…” 주먹구구식 회계처리 언제까지?

노숙인 담당 공무원이 한 말은 쉼터 운영 주체들의 내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그 동안 노숙인 쉼터의 행정처리 능력 부족은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이 수시로 제기해왔던 문제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하여 쉼터 운영자들은 “회계담당자가 없이 실무자가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실무자의 이직이 너무 잦아서 행정 처리가 서툴 수 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무인력 때문에 행정 서류에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항변을 해왔다. 인력지원 등 현실의 변화 없이는 개선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한 항변만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쉼터 운영 방식을 제도화하고 회계와 행정 서식에 더욱 강력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노숙인 당사자들 “모든 쉼터 회계 정보 공개하라”

지난해와 올해에는 노숙인쉼터의 부정회계 사건이 공론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부정사건을 계기로 노숙인 당사자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중 일부는 전국의 모든 쉼터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며 전국 모든 쉼터의 회계를 공개하기 위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 중이다. 일부 쉼터 운영자들에게는 억울한 면이 있을지 모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2005년 현재 쉼터의 모습은 ‘위기의 쉼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현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 연대와 초심(初心)”이 필요하다.

현재 노숙인쉼터가 당면한 외적인 문제들의 경우 개별쉼터의 운영주체와 실무자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열악한 시설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 제시에 모든 당사자들이 함께, 자주,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함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먼저 개별 기관이 처해 있는 각기 다른 상황을 공유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노숙인을 위해 더 나은 방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쉼터 운영 주체들의 내부적인 문제 해결에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쉼터를 운영하는 개별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내적 문제들의 경우 조직적인 결의와 실천이 없다면 해결하기가 어렵다.

내적인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놓은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허나 드러내 놓지 않는 한, 문제화 되지 않고 개선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조직 내에서 문제를 드러내놓고, 소통하고, 논의하고, 실천할 때에만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쉼터가 처해있는 다양한 내적·외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쉼터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왜 노숙인쉼터를 만들었는가? 개인의 안위만을 위해 쉼터를 세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나 현재 쉼터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 개별 운영주체들이 논의하고 있는 방향이 ‘노숙인을 위해’서란 대의에 부합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만이 ‘위기의 쉼터’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노숙인시설인 ‘쉼터’의 정체성은 늘 안개 속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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