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어제 들어온 제보 > 사스 환자 감추기 ‘비밀작전 13일’

▲ 사스 추정 환자 K씨가 격리 입원했던 임시 병동 모습 컨테이너 박스2개를 연결해 만든 이곳은 사방에 담장이 둘러쳐져 있어 외부와의 출입이 차단돼 있다.

국내 유일의 사스 추정 환자 K씨(42)가 입원했던 수도권의 한 병원은 지난 10일 K씨가 퇴원할 때까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작업’을 펼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스의 2차 전파를 막는 일과 함께, 외부에 ‘사스 병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철저히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보건당국은 이런 중요한 일을 일반환자들이 밀집한 민간병원에만 맡겨놓고 후속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는 등 방역체계에 허점을 드러냈다.

K씨가 이 병원에 옮겨진 것은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귀국하면서 고열·기침 등의 증상을 보여 인천공항에서 바로 후송됐다. 국립보건원은 이튿날 K씨의 폐렴증세를 확인, K씨를 국내 최초 사스 추정 환자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 병원 의료진은 K씨를 사스 의심 환자 정도로만 여겼고, 일반 병동의 1인실에 격리 입원시켰다. 병원 관계자는 “K씨가 사스 추정환자라는 보건원의 발표도 사전에 통보 받지 못한 채 언론을 통해 이날 저녁 뒤늦게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병원장은 심야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병원장은 사스 추정 환자가 입원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절대 알리지 말 것을 지시하고, K씨를 2차 전염 위험에서 좀더 안전한 곳으로 옮길 대책을 강구했다. 병원장은 “‘사스 병원’으로 소문날 경우 900여명의 입원 환자와 그 가족들이 동요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모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소문을 듣고 달려왔지만, 병원측은 정문을 차단하고 취재진의 진입을 막았다.

병원측은 K씨 격리를 위해 병원 건물 외곽에 있던 농구장에 임시병동을 세우기로 결정, 작업에 들어갔다. 밤 11시쯤 컨테이너 박스 대여 회사를 긴급 수소문, 6평 크기의 박스 2개를 이송해 왔다. 이후 20여명의 시설과 직원 등이 총 출동해 수도·전기·전화 등을 설치했고, 침대·소독대 등을 옮겼다. 밤샘 작업 끝에 동이 틀 무렵 임시 병동은 겨우 완성됐고, K씨는 오전 6시쯤 일반병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병원장은 “환자에게 현재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며 “환자가 불안해 하지 않도록 TV를 달아주고 신문을 매일 제공했다”고 말했다.

임시병동에는 분진마스크와 보호복을 착용한 주치의 한 사람만 출입했다. 의료진은 2시간마다 K씨의 상태를 ‘핫 라인’ 전화로 확인했고, K씨는 약물 복용법과 주사제 처리법 등을 교육받았다. 임시병동 외곽에는 24시간 경비원이 상주했으며, 가족과의 면회도 차단됐다. K씨는 임시병동 담장 밖의 동생과 안부를 몇 마디 주고 받았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병원 관계자는 “주치의도 K씨 입원 기간 내내 가족 간 2차 전염 방지를 위해 귀가하지 않고 병원에서 숙식을 했다”고 전했다.

병원측은 보건당국에 환자를 격리입원시킬 수 있는 국립의료기관으로 이송할 것을 요구했으나, 보건당국은 ‘진료 거부’에 해당된다며, 병원측 의견을 묵살했다.

병원장은 “우리 병원은 수도권 일대의 중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어서 의료진이 사스에 2차로 감염되거나 ‘사스 병원’으로 알려질 경우, 일대 의료전달체계가 마비된다”며 “민간병원도 하루 만에 임시병동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전염병 발생 비상사태를 대비해 환자 격리 시설 하나 갖춰놓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K씨도 보건당국의 조치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병세가 완연히 호전되고 세균성 폐렴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계속 사스 추정 환자로 격리되자 한때 ‘식사거부’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취재진은 현재 자택에서 격리 중인 K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K씨는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email protected] ) 8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