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어제 들어온 제보 > 건설현장 재중동포들, 안전모·안전벨트도 없었다

[한겨레] 판교 아파트 건설현장 가보니

열명중 한 두명만 착용…“안전화도 지급 안되는데”

3층 높이서도 장비없이 작업…‘안전’에서조차 차별

14일 오전 11시 경기 성남시 판교 주공아파트 건설 현장. 지상 4m 가량 높이에서 안전벨트와 안전모도 없이 골조작업을 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눈에 띄었다. 안전망도 없었다. 작업 현장 아래쪽엔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 있고 깊은 웅덩이도 파여 있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건설 현장에서 이른바 ‘교포팀’이라고 부르는 재중동포들이었다. 낮 12시께 점심식사를 하러 내려오는 100여명의 노동자 가운데 안전모를 쓴 사람은 열에 한두 명뿐이었다.

“안전벨트요? 안전화도 지급이 안 되는데요?”

현장 식당에서 만난 재중동포 김아무개씨도 오전 내내 3층 높이에서 안전벨트 없이 일했다. 김씨의 신발은 안전화가 아닌 일반 등산화였다. 그는 “안전장비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일일이 달라고 하기는 눈치가 보이고, 그래서 ‘그냥 주겠지’ 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일해 왔지만 처음에 성남시청에서 두 시간짜리 안전교육을 받은 게 전부”라며 “그마저도 ‘받을 사람만 받고 오라’는 식이어서 안 간 사람도 꽤 많다”고 말했다.

반면 현장에서 만난 한국인 팀장 임아무개씨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안전벨트 등 안전장비 없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다”며 “교포팀에서 안전장비를 안 차고 일하는 경우를 보긴 했는데, 지급하지 않은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시공사인 ㅌ건설의 안전과장 김아무개씨는 “안전벨트는 모두 지급했다”며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그는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라며 더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각종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재중동포들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들은 ‘안전’에서조차 차별받고 있다. 임차진 민주노총건설노조 경기지부 조직국장은 “아파트가 고급화하면서 공사에 들어가는 사람 품이 늘어나자, 하청업체들이 수지를 맞추기 위해 임금 단가가 낮은 교포팀을 많이 쓰는 등 비용을 삭감하고 있다”며 “안전 비용도 여기에 포함되다 보니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중동포들은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6년째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재중동포 김아무개(48)씨는 “건설 일용직이 위험하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다”며 “중국에 있는 집에 생활비도 보내야 하고 여기 있을 때 최대한 돈을 모아야 하니 위험을 따질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판교 현장에서 만난 재중동포 김씨는 지난 7일 과거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전화를 십여통 주고받았다. 중국 지린성의 가족한테서 국제전화가 오기도 했다. 이천 화재 참사가 난 날이다. 그는 “사실 안전이라는 말은 이천 사고가 나기 전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그 현장에 없었다는 데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87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