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덕 골프장을 고발하려 합니다.

지난 1월 7일 오전 10시 쯤이었습니다. 경주 신라 컨츄리 클럽에서 50살 캐디 최선임 씨가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습니다. 저희 어머니입니다.

엄마의 직업은 말씀드렸듯 '캐디'입니다. 그런데 이 골프장에선 캐디에게 캐디 업무가 아닌
골프장 관리일까지 강제로 떠맡겨 왔습니다.

그날도 엄마는 캐디 업무가 아닌 골프장 관리 업무 즉, 골프장 잔디가 파인 곳을 모래로
채우는 일 (일명 '디폿작업'이라고 합니다)에 동원돼 나가던 중이었습니다.

모래통이 작은 카트 앞, 뒤로 실려 있었고 엄마는 앉을 공간이 부족해 운전자 옆 보조석
 자리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손에는 모래삽을 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탄 카트는 아스팔트 길에서 잔디
필드로 들어가기 위해 커브를 틀었습니다. 그 순간 카트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엄마도
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카트는 약간 턱이 진 잔디밭으로 치고 올라가면서 '덜컹'거리며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엄마는 그 충격으로 카트에서 튕겨져나와 왼쪽 머리부분이 아스팔트 바닥에 심하게
부딪혔습니다. 엄마는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사고 직후 119로 경주 동국대 병원에 이송됐으나 상태가 너무 심각해 다시 대구 경북대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때문에 사고 발생시간이 아침 10경이었는데 밤 8시가 돼서야 두개골 오픈 수술을
했습니다) 병원 측에선 '의학적 처방이 무의미하다'는 비관적인 진단을 내렸습니다.

회사분들이 오시더니 "엄마가 비록 일용직이지만 23년간 성실하게 근무했고 여러차례
우수사원으로 뽑혀 상을 받은 만큼 병원비와 장례비를 모두 회사에서 부담하겠다"
고 약속했습니다. 무척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의학적으로 전혀 살아날 가망이 없다던 엄마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적같이 손을 움직이고 눈을 뜨고, 무언가 알아듣는 듯한 눈짓을
하시는 겁니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말했고 가족들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서울 삼성병원에서 뇌수술 권위자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엄마의 수술을 부탁드렸고 2월 25일 밤 환자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 측에서 갑자기 "더이상 병원비를
지원해줄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온 겁니다. 금방 숨이 멎을 것 같던 엄마가
의식을 되찾고,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으로 변하자 태도가 돌변한 겁니다.

회사에선 "캐디는 원래 산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직업이다. 보상을 원하거나
억울하면 소송을 하라"고 했습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사람의 약점을 이렇게 악하게 이용할 수가 있을까요?
엄마의 사고로 아빠도, 언니도 직장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6개월 된 아이를
돌보면서 엄마를 간호하고 있습니다.
온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엄마를 간호하느라 집안의 수입이 전무한 상태에 있습니다.

회사측은 저희 집에 돈이 없어 감히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소송을 못할 처지라는 걸
간파한 겁니다. 처음엔 엄마의 상태가 결코 호전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선심쓰듯 얘기했던것 같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저희 가족의 삶은 지금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함께 일하던 캐디 두 분이 1월14일 엄마 병문안을 왔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한의사를
하고 계시던 삼촌이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와 계셨고,
삼촌이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하자 두 분이 답변해 주었습니다.
 (아래 글은 두분의 말을 요약한 겁니다)

첫번째 문제는 '업무의 부당성'입니다.

잔디가 패인곳에 모래를 채우는 일은 캐디의 일이 아니고 회사의 코스관리팀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무보수로
일을 시켜왔다고 합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회사 직원이 해야 할일을 강제로 시켜놓고 사고가 나니까
회사측은 캐디는 산재 보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디폿 작업은 캐디에게 시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 외에도,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면 회사에서 캐디들에게 집에서 대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아무런 보수도 없이 순번대로 눈을 치우는 일과 청소에 내몰았다고 합니다 .
또 정기적으로 캐디 2명이 한팀이 되어 당번을 서는데 그때, 클럽하우스 주변정리와
청소까지 시켰답니다. 물론 무보수고요….

둘째 '안전교육의 소홀함'입니다.

이렇게 생소한 업무에 내몰면서 안전 교육은 애초에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 손님에 대한 서비스 교육만 이뤄졌는데, 예를 들면, “손님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라”는 것이고 신변에 대한 안전 수칙은 “골프공에 의한 타박상을 조심하라는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고로 문제가 복잡해 질 조짐을 보이자 회사에선 부랴부랴 최근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셋째, 산재 보험 제외 신청서에 왜 사인을 했느냐? 란 문제입니다.

캐디들은 업무 도중 수시로 사인을 하는데, 그게 무슨 내용인지 회사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읽어 볼 시간조차 주지 않아 그저 허겁지겁 사인하고
손님이 부르면 바로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내용인지 좀 설명해 달라고 하면 그저 "골프공에 맞아서 안경 등이 깨지고 신체적
부상이 발생해도 회사에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회사는 산재 보험료의 비용부담을 하지 않기 위해 애초부터 캐디들에게 산재 보험 가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분의 증언인데, 디폿 작업시 카트는 원래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데 작업의 편의상 페어웨이 가상으로 주차를 시키라고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불행히도 페어웨이로 들어가던 중에 너무나 큰 사고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저희는 살고 싶어서 끝까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엄마의 생명을 절대 포기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험합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엄마의 막대한 병원비와 더불어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언론에 억울한 상황을 알리고 엄마가 치료받을 수 있는 데까지는 치료를 받게
하고 싶어서 독자제보의 글을 올렸는데 감사하게도 KBS 와 MBC에서 취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3월25일과 3월30일에 각각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방송이 나간후에도 회사측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 가족은 이 싸움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엄마의 초인적인 힘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이 싸움이 비단 우리 엄마만을 위한 싸움이 아닌것 같습니다.
지금도 본업외의 일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캐디들과 특수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엄마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를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싸울 겁니다.


착하게만 사셨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없었던 우리 엄마를 위해 이제는 엄마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보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이 힘을 내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