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이 ‘위기’다.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하다. 빚은 폭증하고 있지만, 내부는 성과급과 복지기금 등 나눠먹기에 몰두 중이다. 천문학적 부채는 마치 ‘남의 일’이다. 경영진과 감사 등 주요 자리는 모두 친정부 인사들의 차지다. 그 결과 경영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서는 무책임의 상황이 부채 증가와 도덕불감증의 토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들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1) 빚더미

LH 109조… 20개 기업 2012년엔 333조

국회 지식경제위의 12일 국정감사에서 질타 대상이 된 한국가스공사의 부채는 17조7700억원(2009년·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다. 자산 대비 344%이고, 2007년 8조7400억원에서 불과 4년 새 두 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그 결과 이자비용만 2008년 4400억원에서 2014년 81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공기업들의 부채 악화 실태는 대부분 ‘빨간불’이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 부채가 2005년 3조3000억원에서 현재 14조5000억원으로 339.1% 증가했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는 같은 기간 3조3628억원에서 16조3455억원으로 5배 가까이 폭증했다. 한국도로공사도 “2020년 부채 55조원으로 하루 이자만 80억원이 지출될 것”(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으로 추산됐다.

특히 심각한 곳은 이명박 정부의 ‘건설 공사’ 두 축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109조원)와 수자원공사(13조원)이다. 민주당 유선호 의원은 2012년 주요 20개 공기업 부채가 2007년에 비해 192조원 증가한 333조6000억원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두 공기업의 부채 증가분이 6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지난 7년간 “밑빠진 독에 물붓듯 10조원을 LH에 투자”(한나라당 신상진 의원)한 데서 보듯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급기야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4일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앞으로 공기업 부채 문제는 누구의 책임인지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2) 돈잔치

성과급 수천억원 나눠먹기 ‘도덕적 해이’

부채 더미 공기업들의 내부 실상은 한심하다.

한국가스공사는 이날 국감에서 부채는 물론 도덕적 해이도 질타를 받았다. 지난 2년 동안 109억원의 중식보조비와 자기계발비를 중복 지급(한나라당 박민식 의원)하고, 부채 외에 4조원대의 미수금이 쌓인 상황에서 가스 요금을 올려가면서까지 559억원의 배당금 지급(민주당 김재균 의원)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농식품위 송훈석 의원(무소속)은 지난 8일 농협 국감에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성과급비로 지출한 예산이 1조8513억원이라며 ‘돈잔치’를 문제 삼았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11일 “한국조폐공사가 지난 4월 비상경영을 선포했으면서 6월에는 직원들의 상여금으로 전년 대비 26.8%나 증가한 185억원을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빚더미가 큰 LH는 지난해 통합하기 직전에 직원들에게 나눠먹기 식으로 사내복지근로기금 434억원을 집행하기도 했다. 2005년에 비해 부채가 5년간 5배 폭증한 SH공사의 경우도 같은 기간 성과급은 오히려 36억6800만원에서 47억1300만원으로 증가했다. 석유공사는 지난해에만 직원 1인당 577만원의 복지카드를 지급하고, 이와 별도로 설·추석 등 명절에는 직원 1인당 176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지급했다.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은 지난 4일 행안위 국감에서 42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131개 지방공기업들 중 118개가 지난 3년간 성과급을 지급했으며, 그 규모가 5500억원에 달한다고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3) 낙하산

사장·감사 자리마다 MB맨 ‘정권 전위대’

공기업의 부실과 난맥상은 결국 독립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들 공기업 사장과 감사 자리가 낙하산과 대선 ‘보은 인사’ 등 정권의 전위대들로 속속 채워지면서 독립된 경영능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에 등재된 공공기관 기관장 및 감사 571명 중 160명(28%)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이거나 선진국민연대 등 대선 외곽 조직과 관련된 친정부 인사로 분석됐다.

빚을 내 4대강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한 수자원공사에 대해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지난해 9월 4대강 사업 참여를 결정한 이사회에 참석한 사외이사 7명 중 6명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 정책자문단 출신과 한나라당 공천 신청자 등으로 전부 친정부 인사”라고 지적했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지송 LH 사장도 전형적인 ‘MB(이명박 대통령)맨’으로 통한다.LH가 보금자리주택 등 정부의 국책사업마다 끌려다니고,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앞장서 무리하게 통합해 부실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이 사장 이름이 거명되는 상황이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12일 농어촌공사 국정감사에서 “비상임이사 7명 중 3명이 선진국민연대 출신이고 1명은 낙하산 인사”라고 밝혔다. 송훈석 의원도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을 강행하기 위한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광호·이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