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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산중공업에 다니는 직원입니다.
저희 회사가 연일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언제부턴가 노동계의 정치투쟁의 장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지난 1월9일 고 배달호씨 분신사망사건이 발생한 후, 저희 직원들는 모두가 불행한 사태에 가슴아파하면서도 사태가 하루빨리 수습되어 회사가 정상화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확대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태가 수습은 커녕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저는 물론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배경에는 사건의 당사자인 노사 양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한편으로, 여론을 호도하여 노동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사태해결을 지연시킨 일부 언론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대체로 언론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거나 명백하게 잘잘못이 가려진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도를 합니다. 때로는 양쪽 모두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을 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두산중공업 분신사망사건이 발생한 후 줄곧 노조쪽에 동정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거나 기본적인 사실조차 편파, 왜곡 보도했던 언론매체들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국민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는 잘 모르겠지만, 답답한 마음에서 몇자 적어봅니다.
제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은 매체는 1월9일 사건발생직후부터 두산중공업 사태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해온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와 메이저언론으로서 이번 사건을 비중있게 다뤄온 서울 MBC 등입니다.
하나하나 실제 보도된 내용들을 살펴보며 그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마이뉴스의 경우 윤성효 기자가 1월9일 사건발생 직후부터 1월15일까지 약 1주일간 현장에 머물면서 무려 36차례나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불과 며칠만에 그 많은 기사를 쓴 윤성효 기자의 성실성과 의욕은 정말 존경하지만, 문제는 윤성효 기자가 그 많은 기사에서 일관되게 일방적으로 노동조합 또는 분신대책위측의 동향과 주장만을 보도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읽어보면 알겠지만 회사측의 입장이나 주장의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발표한 보도자료나 성명서 외에는 직접 취재하거나 멘트를 딴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윤성효 기자의 1월16일자 ‘분신이란 말처럼 현장도 급박했다’는 현장취재기를 보면 “…(현장을 떠나면서)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발걸음은 빈소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전 분향을 한 적이 있지만 왠지 한번 더 가보고 싶었다… 지역 노동자단체 대표 20여명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어서 반가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기자로서의 객관적, 중립적인 자세보다는 심정적으로 노조쪽에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사 내용중에는 윤성효 기자가 그동안 낯익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면서 “오늘로서 현장에서 철수한다”고 하자 다들 “왜 그러느냐, 더 취재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1주일동안 분신현장에 머물면서 회사측의 홍보실이나 회사측 관계자와는 단 한번도 만나지 않은 사실과 너무나 대비됩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에 대한 반응을 보더라도 당연히 노조쪽에서는 거의 ‘대변인’으로서, 회사쪽에서는 ‘눈엣 가시’로 극단적인 대립을 보입니다. 실제로 윤기자가 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을 살펴보면, 이 두가지 상반된 친근감과 적대감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윤성효 기자는 1월23일자 “배달호씨는 왜 자살을 선택했나? 한국중공업 특혜인수서 예고됐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두산중공업이 한국중공업을 특혜인수했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윤기자는 “총자산 4조537억원의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이 불과 3,57억원에 인수한 것은 어떤 특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단편적인 논리를 폈습니다.
2000년말 한국중공업 민영화 당시, 정부가 산업은행의 한국중공업 지분 36%를 매각함으로써 민영화를 추진했고, 두산은 입찰에서 당시 주가 3,800원보다 두배이상 높은 8,150원을 써냈다는 사실은 기사내용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윤성효 기자는 ‘지분인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와 ‘자산인수방식’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3천억으로 5조원짜리를 인수했기 때문에 특혜’라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폈던 것입니다.
실제로 특혜가 있었다면 누구든 사법당국에서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하고 또 잘못이 있다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윤성효 기자처럼 아무런 근거없이 단편적인 논리만 갖고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은 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마저 의심스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성효 기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월12일자 “배달호씨 분신 노조탄압서 예고, 블랙리스트 이어 공작문건 충격”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기사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날 오전 10시에 분신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를 하기도 전인 새벽에 기사가 작성되어 보도됐습니다. 물론 이것이 노조측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윤성효 기자가 이른바 ‘엠바고’를 깬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다시한번 윤성효 기자와 노조측의 친밀감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도 윤성효 기자의 신념이나 사상을 문제삼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기사는 최소한 기사로서의 양식과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윤기자가 2월24일자 “두산중 사태, 신문은 어떻게 보도했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50대 늙은 노동자가 분신 자살했고, 49재가 가까워 오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회사에서는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노동부 특별조사에서 일부 부당노동행위 사례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분신을 했다는 것”과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자체로 중요한 팩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윤성효 기자의 문제제기 속에는 그것이 기사를 써야 하는 어떤 당위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줍니다. 나아가 다른 언론들이 그런 당위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윤기자에게는 문제로 비춰진 것입니다.
윤성효 기자는 2월25일 두산중공업 폭력사태와 관련, 기존의 보도태도에 비추어 보면 “회사 경비원이 노동조합 간부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고 보도할 만 했지만 의외로 ‘충돌’이라는 표현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도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회사 경비원이 폭행한 것은 ‘폭행’했다고 표현하고, 노조간부들이 폭행한 것은 그냥 ‘충돌’이라고 표현하는 기지를 엿보였습니다. 그리고는 2월27일자 ‘두산중 폭력사태, ‘유도’의혹 제기돼’라는 기사에서는 회사측이 노동조합의 폭력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즉,
노동조합이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회사가 유도했다는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결론은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쓴 대부분의 기사는 외형적으로는 기사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조합쪽의 유인물과 질적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 별로 보지도 않는데, 왜 그런 데 신경쓰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잘못된 언론보도는 이해당사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장황하게 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는 그 의도야 그렇지 않았을 지라도 두산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데
일조했으며, 많은 두산중공업 직원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서울 MBC는 오마이뉴스와 달리, 두산중공업 사태에 대한 보도횟수는 많지 않지만 그 영향력에 있어서는 비교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그간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과 PD수첩에서 각각 한차례씩 두산중공업 사태를 다루었으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여러 차례 보도가 된 적이 있습니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텔레비전의 심정적인 보도 태도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 그것도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프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수습을 바란다면 언론은 문제를 심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2580과 PD수첩 모두 프로그램 서두에서부터 진행자의 아무런 멘트도 없이, 곧바로 성우가 비장한 목소리로 유서를 읽는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미망인의 울부짖는 모습을 비춰준 후 회사의 탄압을 성토하는 노조간부들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구성방식은 누가 보아도 “배달호씨는 회사의 탄압에 의해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서울 MBC 2580의 이상호 기자가 1월1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취재기 “대검 공안부장과 대낮 폭탄주를 마실 때 자본의 미친 춤 넘실대는 방파제 뒤에선”을 보면 과거 노동문제에 역외자였던 이상호 기자가 고 배달호씨를 취재하면서 빠졌던 낭만적인 ‘감상’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두번째는 명백한 왜곡보도 내용입니다.
서울 MBC는 배달호씨의 죽음의 원인을 ‘가압류’라고 보도하고, 분신대책위측이 공개한 실수령금 58,000원이 찍힌 2002년 8월분 급여명세서까지 보여주었지만, 실제 지난해 가압류 금액은 200여만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지난해 정직 및 구속기간을 제외하고도 배달호씨가 실제 받은 연봉은 2,500만원을 넘습니다.
또한 서울 MBC는 배달호씨가 “숨쉴 방한칸 없었다”며 마치 70년대 저임금 근로자들처럼 극도로 빈궁하게 살았던 것처럼 보도했지만, 그의 연봉이 4,500만원 수준이라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두산중공업 근로자의 90% 이상이 모두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고 자가용을 갖고 있습니다. 학자금도 거의 회사에서 보조해주기 때문에 여느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풍족한 생활을 하는 편입니다.
더구나 공익사업장으로서 파업권이 제한돼 불법파업이 되어 손배가압류를 당한 진짜로 ‘억울한’ 한라병원과 민간사업장으로서 파업권이 보장돼 있는 두산중공업에서 파업의 목적이나 절차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 폭행 등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정당한’ 손배가압류를 하나로 뭉뚱그려 모두가 문제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손배가압류의 문제점을 피상적으로 접근한 데 따른 것입니다.
연봉 1,500만원도 안되는 진짜 생존권이 문제인 한라병원 간호사들과 연봉 4,000만원이 넘는 두산중공업 근로자를 어떻게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편 손석희의 시선집중도 사건발행후 수차례 두산중공업 사태를 보도한 적이 있으며, 그 보도태도는 TV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난 2월26일 경남도민일보 표세호 기자를 전화로 연결하여 전날 발생한 폭력사태에 대해 다뤘는데, 문제는 폭력사태의 발단이나 그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과거의 잘못된 회사의 노무관리로 인해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는 점입니다.
2월25일 다른 회사 노조간부들이 몰려와 쇠파이프를 들고 회사 임원과 경비원들을 무차별 폭행한 사실은 단지 ‘충돌’이 있었다고 가볍게 넘어가고, 사실상 폭력사태와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논란이 될 수 있는 ‘과거’의 문제를 그 원인으로 지적하는 태도는 왜곡, 편파보도를 넘어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포기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과거 대학생 시절에 언론을 가진 자의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노동자나 학생들의 시위를 편파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정권과 자본의 나팔수라고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저는 이제 더 이상 언론이 가진 자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언론이 다소 회사쪽에 경도된 입장에 서서 보도를 한다면 정상으로 생각할 것이고, 오히려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도를 하면 ‘어 제도권 언론이 웬일이야?’하면서 놀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언론도 노조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반영하고 노조쪽의 입장에 서서 편파적으로 보도하는 경우도 생긴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저는 과거에도 정권과 자본에 편파적인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판했지만, 마찬가지로 노조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태도 또한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편파, 왜곡보도로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의 대가는 너무나 큽니다.
이것은 노동조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서울 MBC의 진지한 반성과 변화를 강력히 촉구하며 이글을 마칩니다.
두서없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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