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亞太간부 잠적
아태재단의 회계업무를 총괄해 온 김병호 전 재단 행정실장이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했다. 최성규 전 총경,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이어 대통령 아들 관련 사건에서만 벌써 세 번째다. 사건의 중심인물들이 툭하면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아예 숨어버리는 사례가 근래 유난히 빈발하고 있는 것은 검찰이 범법자들의 농락대상으로 모독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병호씨가 잠적한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에 유출된 그의 ‘메모’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메모에서는 김홍업씨와 아태재단, 그리고 그 주변의 정체모를 돈 흐름과 수상쩍은 움직임들이 물씬 풍겨난다. ‘국정원 5억쯤? 1억짜리도’‘김성환 거래시점 99년 몇 천만원, 2000년 8월 이후’에서는 검은 돈 냄새가 나고, ‘아직 나온 것 無(무)’‘청문회 방지’ ‘재단 성역?’에서는 쫓기는 자의 위기감과 이를 벗어나려는 절박한 몸놀림의 흔적이 묻어난다. ‘후광(김 대통령의 호) 돈 확인’이라는 희미한 연필메모에 이르면 이 의혹의 끝이 과연 어디인가 하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김병호씨가 잠적하기 전 언론에 한 설명들은 설득력이 거의 없다. 예컨대 ‘국정원 5억쯤?’은 “친구 부탁으로 국정원에 전산용지 납품관련 예산을 물어본 것”, ‘후광 돈 확인’은 “후광문학상 기금의 무리한 모금과정을 거론한 것”이라고 했는데, 거론된 당사자들도 터무니없어 하거니와 누가봐도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이 이상한 잠적자의 메모 출현으로 ‘김홍업 의혹’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따라서 검찰은 무엇보다 김병호씨 신병을 하루빨리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메모 말고도 그는 김홍업씨의 지시로 16억원 돈세탁 심부름을 한 장본인임이 검찰수사로 이미 밝혀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인물이라면 검찰은 유사시에 대비해 면밀히 소재를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뒷북을 쳐 놓고 “피의자도 아닌데 어떻게…”라는 판에 박힌 변명을 하는 것은 궁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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