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급 줄줄이 월급높은 타사로
언론사 기자이탈 현황
“기자정신 사라지고 기술만 남아”
“신문산업 사양추세 비전 안보여”
작은 신문사에 다니는 L기자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0년. 하지만 과연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자꾸 의문이 든다. 기자를 꿈꿀 때, 그리고 입사 초기 가졌던 ‘지사적 기자 정신’은 간 데 없고, 기사를 쓰는 ‘기술’만 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를 만나면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기사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낼까’ 궁리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게다가 최근 들어 회사도 사정이 좋지 않은지, 자꾸만 흉흉한 소문이 들려 마음이 편치 않다. L기자는 틈만 나면 유학을 가서 다른 분야를 공부해볼까, 외국계 기업에 취직을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다른 작은 신문사에 다니는 8년차 K기자는 얼마 전까지 후배의 고민 상담에 바빴다. 취재도 열심히 하고 기사도 잘 써서 유달리 아꼈던 후배가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고 K기자에게 상담을 한 것이다.
신문 산업 자체가 사양 추세인 데다, 자본 구조도 취약한 지금의 신문사가 장기적으로 내다볼 때 과연 무슨 비전이 있겠느냐는 게 고민의 요지였다. 게다가 큰 신문사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급여도 후배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고, 큰 신문사나 방송사가 가진 영향력은 후배의 마음을 거의 굳히게 한 것 같았다.
K기자 역시 지난 1∼2년 사이 다른 신문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회사가 어려울 때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돈 때문에 회사를 옮긴다는 말이 날까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기자들이 벤처 기업으로 대거 몰려간 2000년 이후 최근들어 작은 신문사의 젊은 기자들이 큰 신문사나 방송사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세 명의 경력 기자를 채용했다. 당시 경력기자 선발 기준에 ‘2∼5년차’라고 못박은 사고 때문에 한 신문사에서는 편집국장이 직접 ‘집안식구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최종 합격한 기자들은 한국일보, 대한매일, 매일경제 출신이다.
조선은 지난해 5월에도 13명의 경력 기자를 선발했다.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긴 기자들은 연합뉴스와 한국일보가 각각 3명, 동아·경향·매경이 각각 2명, 문화일보가 1명이었다. 조선은 2001년에도 부산일보와 국민일보에서 각각 1명씩 채용했다.
SBS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경향신문 2명, 한국일보와 YTN 각 1명씩 모두 네 명의 경력기자를 뽑았고, MBC 역시 최근 2년 동안 경력기자 8명을 채용했다.
방송사나 큰 신문사들이 경력기자를 뽑을 때마다 작은 신문사들은 몸살을 앓는다. 이에 따라 작은 신문사들은 3∼4년차 젊은 기자부터 중견급 기자들의 공백현상이 심각해졌다.
한국일보는 지난 1년 동안 5명의 기자가 조선일보와 SBS로 옮겼고, 문화일보는 9명의 기자 가운데 대부분이 동아와 조선, 중앙일보로 떠났다. 경향신문은 최근 2년 사이 13명의 기자가 SBS, 중앙, 조선, MBC 등으로 떠났고, 연합뉴스는 2001년 이후 5명이 조선일보 등으로 옮겼다.
한 신문사의 중견 기자는 “떠나려는 기자들을 잡고 싶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어 눈물을 머금고 후배 기자들을 보내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회사 차원의 대책 수립이 얘기되기도 하지만, 속수무책이기는 회사측도 마찬가지다.
10231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