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씨(42)는 얼마 전 유학차 한 동남아 국가에 머물던 중 주인집 아들이 자신의 방에 들어와 우리 돈으로 수십만원을 훔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주인집 아들은 친구들을 몰고와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서씨는 다음날 한국영사관을 찾았다. 하지만 현지 영사는 대뜸 “돈 관리는 본인이 알아서 잘 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면박을 줬다. 이에 서씨가 강력히 항의하자 그때서야 영사는 현지 경찰에 연락해 사건을 해결하고 돈을 찾아줬다.
김모씨(29·여)도 한국 영사관이라면 고개부터 흔든다. 최근 한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던 중 현지 불량배들로부터 성희롱과 심한 모욕을 당해 영사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옷차림부터 잘하고 다니라”는 힐난뿐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김씨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옷차림을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면박을 당하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영사관에 전화를 거는 동안에도 불량배들이 부근을 계속 맴돌아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지만 “(대사관에) 사람이 없으니 부근 한국식당을 찾아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정부의 영사업무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일어나는 안전 사고는 본인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되는 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정부의 영사업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대응에도 책임이 있다”고 평가했다.
해외에서 한국인의 안전과 관련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정부는 “그 많은 교민 모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느냐”고 하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지역에서 빈발한 한국인 사업가 상대 범죄와 영국, 미국 등에서 일어난 유학생 상대 범죄에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또 로버트김 사건에 대한 무대응과 재일동포 지문날인 거부운동에 대한 무능력한 대응도 그 사례로 꼽힌다.
“이젠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위험지역에 가면 스스로 자기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외교관들의 교민보호 인식부족도 그 못지 않은 것이다.
해외교포연구소 이구홍 소장은 “우리 외교부 관료들이 영사업무를 ‘동사무소 서기’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영사업무에 대한 불만은 누누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김씨 사건 이후 외교부가 내놓은 각종 영사업무 강화방안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컨설팅 업체 ‘아서디리틀’은 지난 5월말 외교부 조직 전반을 진단한 결과 보고서에서 “국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영사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외교부에서는 “외교부 업무를 어떻게 삼성전자와 같은 민간기업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느냐”는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컨설팅사 관계자는 이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외교부 역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만큼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조직을 유연성 있게 변화시켜 급변하는 외교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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