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근무하고 있는 현직 경찰관이다.
내가 경찰관을 처음 시작할 무렵 소방관은 경찰과 가장 가까운 공무원이었다.
당시 소방관중 일부가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지만,
소방관들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때론 경찰관보다 더 재빨리 현장에 나가있
었고, 때론 도망가는 뺑소니 운전자나 범인을 추격하여 잡는 일을 서슴지(?) 않
았다.
화재신고를 받으면 항상 소방관 뒤를 따라 출동하게 되는데, 가까이서 보는 화염
은 정말 무섭고 뜨거웠지만 소방관은 망설임없이 불속을 뛰어들었고 나는 뒤에
서 조금은 경이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소방관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겨울 술에 취한 사람이 길바닥에 누워있다는 신고를 받으면 119는 당연히
출동하여 술에 의하거나 다른 것에 의한 "응급환자"인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함에도, "술에 취했다"는 신고인의 막연한 추측을 토대로,
"단순히 술에 취한자"로 판단하고 술에 취한 사람 처리는 "우리의 몫이 아니
다"라며 친절히 타기관 전화번호까지 가르쳐 주고 끊어버린다.
몇년전부터는 "구조대및구급대의 편성운영등에관한규칙"을 개정하여 단순
히 술에 취한자"는 구조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민원인의 구조요청
을 거절하거나 경찰에 떠넘기고 있다
그럼 "구조대및구급대의 편성운영등에관한규칙"은 무엇인가?
제31조 (구급요청의 거절) ①구급대원은 환자의 병력·증상 및 주변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응급환자가 아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환자에 대하여 의료지도 의사의 의견을 들은 후 이송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다만, 민간구급차 또는 다른 교통수단에 의한 이송이 곤란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단순 치통환자
2. 단순 감기환자. 다만, 섭씨 38도 이상의 고열이 있거나 호흡곤란이 동반되는 경우를 제외한다.
3. 혈압 등 생체징후가 안정된 타박상 환자
4. 술에 취한 자. 다만, 강한 자극에도 의식의 회복이 없거나 외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
(이하 생략)
위 규정을 보면 술에 취한자는 구조요청을 거절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장에 출동하여 주취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의
료지도의사의 의견을 들은후 판단토록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단순히 신고전화내용만으로 "단순히 술에 취한 사람"이라고 추정하고 현장확인
을 하지 않은채 구조요청을 거부하거나 타 기관에 떠넘기는 것은 분명 직무유기
이다.
또한 단순 주취자라하여도 특별한 민간교통수단이 없는 경우에도 이송요청
을 거절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있다.
더구나 넘어져 얼굴에 생채기가 있고, 몇번이고 흔들어 깨워도 대답이 없거나 집
이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에는-----강한 자극에도 의식의 회복이 없거나
외상이 경우이므로 ----당연 거절사유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이송을 거절한 구급대원은 별지 제4호서식의 이송거절·거부확인서를 작성
한 후 그 내용을 이송을 요청한 자에게 구두로 알려주어야 한다.
동 규정에 의한 이송거절·거부확인서는 당해 구급대원의 소속소방관서에 3년간
보관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 규정이 있음에도 현장확인없이 신고내용만으로 단순주취자로 판단하
여 구조요청을 거부하거나 타기관에 떠넘기던 지금까지의 안이한 신고접수 행태
는, 분명 "남양주소방서 사건"을 태동시킬 전조였다.
남양주소방서의 "술취한 노인의 2차례에 걸친 구조요청 전화에도 "잘 생각해보
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황당한 응대는, 비근한 예에 불과하다.
몇년전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때에도 불길과 연기에 갇힌
피해자들이 수십여통의 신고전화를 하였으나 지령실 근무자는 "화재대처요령"을
알려주기는 커녕 "갔습니다. 갔어요"하며 소방차를 이미 출동시켰다는 대답만 반
복하여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범죄현장에서 흉기 등으로 자해하거나 쌍방폭행하여 다친 피
의자를 지구대에 연행하고,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코자 응급조치 요청을 하였으
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의자의 치료는 우리 임무가 아니다"라는 이유를 내세
워 수차례 출동거부하는 경우가 있었고,
자살기도자가 "죽겠다"는 전화를 마지막으로 전원을 끄고 실종된 사안에 대해
선조치 없이 원거리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족증빙서류를 직접 가져오도록 요구하
거나,
실시간으로 휴대폰위치추적을 해야 찾을 수 있음에도 상부기관에 서류작성,보고
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위치추적을 1-2번 형식적으로 하고 끝낸다던지,
당뇨환자가 길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을 주민이 주취자로 오인하여
119에 신고하자, 현장 확인없이 신고인에게 다시 112에 신고하도록 유도하는 행
위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물론 119신고 급증으로 인한 대원들의 노고를 모르는바 아니다.
하지만, 112순찰차 근무자나 119구급차 근무자의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만의
하나" 응급상황이나 범죄로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항상 출동하여 현
장확인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거나 심한경우 직무유기에 가까운 경우까
지 있다.
이와 같은 119시스템의 문제는 비단, 일부 구급대원이나 지령실 근무자의 안이함
에서비롯한 것은 아니다.
시초는 "응급환자있는 곳에 범죄가 있고, 범죄있는 곳에 응급환자가 있다는 당연
한 현 상황"을 무시한 법 체계이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911 통합시스템으로 사건현장에 경찰과 구급요원이 함께
출동한다.
범죄현장에는 반드시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고 피해자나 피의자를 응급구호할 인
력이 함께 출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반드시 119와 112시스템의 통합이 필요하다.
응급환자 중 많은 환자가 술에 취한채 소방관을 폭행, 성희롱하고, 개인차처럼
구급차를 부르고 응하지 않으면 욕설을 하는 등 소방관의 인권침해와 공무집행방
해 현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안을 제외하고 수사권과 강제력이 없는 소방관들이 이런 악질 환
자들을 상대로 적절히 대처하기란 어렵다.
이럴때 소방관과 경찰이 어떤 현장이든 함께 출동한다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소방관과 응급구조인력이 전무한 경찰간의 "윈윈"게임이 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주변인 다수가 이에 찬성하고 있고, 동료 경찰관 대부분이 이런 류
의 시스템 통합에 찬성하고 있다.
예전엔 소방과 경찰이 한 기관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시스템이 유사하고 긴밀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119와 112시스템을 통합하여 통합지령하고,
장기적으로는 소방방재청의 응급구호기능과 경찰의 112시스템의 기관 통합 또한
연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방관들의 살신성인의 모습이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현재 안이한 119구급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지도 모
른다.
경찰과 소방은 한배를 탄 동료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봉급표에도 경찰,소방은 같은 직렬이며 직제나 직급도 동일하고, 금융기관 신용
도나 연금 또한 경찰소방은 같은 조직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소방방재청이 되길 누구보다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약간의 쓴 소리를 이렇게 두서없이 적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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