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대구시 대명동에 사는 전모(62)씨는 4일 난방보일러에 쓸 액화천연가스(LPG)를 주문했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난달 한 통에 2만8000원하던 LPG 가격이 3만1000원으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전씨는 "12월부터 난방용 연료의 세금을 깎아 준다기에 값이 내릴 줄 알았는데 되레 올랐다"며 "빠듯한 살림에 올 겨울나기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유가에 따른 서민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달 마련한 '난방용 유류세 인하 대책'이 표류하고 있다. 정치권이 대선에 골몰하면서 관련 법을 검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는 12월부터 겨울철 3개월 동안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국회가 민생 법안 처리를 외면하면서 저소득층은 겨울이 지나고 난방을 해야 할 판이다.
◆대선 와중에 피해 보는 서민=지난달 21일 오후 국회 재정경제위 소회의실. 난방용 유류에 대한 특별소비세 인하를 논의해야 할 회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 의혹,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출마, 범여권의 합당 움직임이 꼬리를 물면서 의석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이 후보들 간 '공방전'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조세심사소위 위원장인 대통합민주신당 문석호 의원은 "의원 모두 세율 인하에 공감하는 만큼 법안 처리에 어려움은 없다"면서도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은 지난달 13일 당정 회의에서 등유와 취사.난방용 LPG.LNG 등 서민용 난방 유류에 대해 겨울철(12~2월) 동안 탄력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30% 내리기로 합의했다.
당초 이 대책은 '유류세 일괄 인하'라는 알맹이가 쏙 빠져 '속 빈 강정'이란 비난을 받았다. 그나마 건더기인 난방용 유류세 인하도 정부가 약속한 시한에서 나흘이나 지났지만 세금이 내릴 조짐이 없다. 난방용 유류의 세금을 낮추려면 우선 국회에서 '특별소비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에 근거해 대통령령으로 30%의 탄력 세율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소세법은 정기국회 회기 마감일(9일)이 코앞인데도 국회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특소세법을 다루는 재경위 조세소위는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실정이다.
◆겨울 지나야 내리나=재경부 소비세제과 조규범 과장은 "국회 일정이 차질을 빚어 난방용 유류세 인하는 일러야 내년 1월께 시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탄력 세율 적용 시기를 내년 1~3월로 한 달 늦출 예정이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난방용 연료 소비가 급감하는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반감된다. 사실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에서 2개월(1~2월)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박진근 명예교수는 "선거 때마다 경제공약을 쏟아 내지만 정작 서민 생활에는 무관심한 정치권의 이율배반적 태도가 문제"라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기를 놓친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민생은 뒷전에 둔 정치권의 힘겨루기로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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