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의원님께
안녕하십니까.
연일 국정을 살피고 민심을 돌보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얼마전 한 뉴스에서 20년전 우리나라 사람들의 직업선호도 1위가 국회의원이었으나 지금은 5위로 내려앉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저 역시 가슴 아프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논쟁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지금의 한국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희망이 넘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정치는 지금 뼈아픈 성찰과 자기정화의 폭풍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비를 제대로 이겨내면 역사는 2003년을 한국정치의 가장 소중한 시련기로 기록할 것입니다.
한국정치가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주창해왔던 지방분권의 문제도 뜨거운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께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제기된 지방의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 좀더 깊은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속한 정당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 있는 자리는 다르다 할지라도 의원 여러분들은 오늘날 한국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입니다. 지도자는 한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기다려야 할 때와 행동해야 할 때를 지혜롭게 구분하고 과감하게 실천합니다. 그런 지도자를 가지고 있는 시대와 나라는 늘 반짝거리기 마련입니다. 지금 참여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 중의 하나인 분권은 한국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과감한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방분권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지방분권은 참여정부의 문제제기여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21세기를 맞으면서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방분권운동의 목표는 우리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소외된 지방을 배려하자는 '나눔운동'의 성격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지난 반세기동안의 인구와 경제의 서울집중이 한국의 압축성장을 견인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에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지방분권이 역차별이라거나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에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양적인 성장보다는 삶의 질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마이너리티에 대한 제도적인 보장이 필수적인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요컨대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이같은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것은 곧 21세기가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1962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은 울산공단 기공식에 참석해서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연설했습니다. 작은 사례에 불과하지만 지난 40여년간 한국사회의 가치관은 이같은 인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치인이 어느 도시엔가 가서 이같이 연설한다면 그는 아마 돌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발전지향이나 경쟁력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시대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방분권을 제도화시켜야 한다는 우리들의 바램은 21세기적 발전모델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방분권은 서울을 살리는 길입니다.
지방분권이 이루어지면 서울과 수도권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주장에 많은 의원님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형식논리로만 본다면 그같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지극히 정서적인 판단입니다. 지방분권의 본질은 서울과 수도권을 위축시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서울이 더 이상 확장이나 성장이 불가능한 과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은 쉽게 확인됩니다. 교통과 통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서울의 교통은 러시아워가 따로 없는 복잡한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어떻습니까. 서울이 몇몇 부자들만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과포화상태에 이른 서울의 문제를 서울이 스스로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방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그 해답일 수 있습니다. 지방을 고르게 발전시켜 서울의 과포화를 해소하고 그를 통해 각각의 경쟁력을 높혀 한국 전체를 역동시키자는 것이 지방분권의 기본목표입니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거나 곧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익숙해져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진전하면 앞으로 수년 내에 한국은 더 큰 경쟁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위기에 발목잡히지 않고 보다 길게 보며 원대한 목표를 향해 굽히지 않고 전진하는 것은 한 시대를 통찰하는 정치인들의 남다른 장점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가 거두어온 발전과 성장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지방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만
많은 분들이 지방분권이 이루어졌을 경우 닥칠 불행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특성화된 발전전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화가 먼저 이루어지면 지방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결국 지방의 토호들만 혜택을 보는 악순환이 아니냐 혹은 지방의 발전전략이 완성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지원책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높습니다. 지방의 시민사회가 아직 힘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지방 내부의 불균형발전만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 옳은 지적이고 깊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된 서울집중과 지방의 몰락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불행한 상황을 가져왔습니다. 지방의 인구감소는 이제 과소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져 있습니다. 면 소재지의 초등학교 교실마저 지난 몇 십년 동안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년조차 구성되지 않는 불행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농번기에 농촌들녘에 젊은 농군을 발견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농촌총각이 장가를 못가서 농약을 마시는 일은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합니다.
지방은 이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조건을 따지고 이런저런 전제를 두는 것은 마치 지금 중병에 걸려 생사기로에 선 환자의 은행잔고를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지방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지방을 살리는 것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방토호들을 경계하고 각 지방의 특성화된 발전전략을 마련하는 일은 이제 지방에 맡겨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한 지방의 대표가 아니라 나라의 대표입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을 믿는 법을 먼저 터득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방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서울에만 사람이 있고 서울에만 민주주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방이 지금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지적은 옳지만 지방이 왜 그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긍정적으로 변화, 발전시키지 못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지방은 끝없이 위축되며 수세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지역사회가 역동하며 발전할 때 모순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지방분권의 제도화와 정착은 지방에 잃었던 역동성과 활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원님.
의원님은 한 지방의 지도자일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지도자입니다. 서울도 하나의 지방에 불과하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장은 백번 옳습니다. 지방분권은 서울과 수도권이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지방분권이 지역차별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차별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중의 하나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지방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지방분권의 문제에 주목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국회에는 지방분권과 관련된 3대 법안이 의원님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 법안은 나름대로 치열한 토론과 준비를 거쳐 입안되었습니다. 역사는 아마 지금의 이 법안들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노라고 기록할 것입니다. 지방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마시고 한국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의 힘으로 지방분권 관련 3대 법안의 통과를 지지해 주십시오. 소리 없이 타오르고 있는 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의원님들의 건승하심을 기원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3년 11월 17일
전국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 김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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