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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원권 수표, 개인정보 적기 찜찜해
수수료 낭비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 고액권 현금 발행하면 안되나
	최육상(run63) 기자

며칠 전, 나는 100만 원권 수표를 들고 한 시중 은행을 찾았다. 10만 원권 수표 9장과 현금 10만 원으로 교환을 요청했더니 수중에 돌아온 것은 99만9100원. 분명히 은행에 들어갈 때는 100만 원이었는데 나올 때는 9백 원이 모자랐다. 수표 발급 수수료를 고객인 내가 물었기 때문.

같은 은행 100만 원권 수표를 10만 원권으로 교체하는 데도 수수료가 드느냐고 묻자 창구 직원은 "죄송하지만 수표는 별도의 발급 수수료가 붙는다"며 "수수료를 안 떼려면 현금으로 받으셔야 한다"고 답했다.

또 한가지. 나는 같은 은행 100만 원권 수표인데도 신분증을 제시하고 주민번호를 기재해야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위조) 수표 확인을 위해 그러는 것인데, 수표는 매일 결산하면서 폐기하니까 개인정보 유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개인정보 적어? 말어?

현재 수표법과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수표의 개인정보 기재는 상거래 때에는 당사자간 협의에 따라 하지만, 은행에서는 반드시 기재하게 돼 있다. 상거래는 그나마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은행에서는 금융실명제법이 우선하기 때문. 하지만 은행 밖으로 수표를 들고 나가 사용해 보니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서울의 한 지하철 매표소에서 요금 충전을 위해 10만 원권 수표를 제시했더니 역무실까지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한 뒤 수표 번호와 신분증을 둘 다 확인해야 했다.

수표 사용에 개인정보를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역무실 담당자는 "손님 말씀이 맞는데, 역 차원에서도 어쩔 수 없다"며 "혹시라도 위조 수표가 발생하면 그 손해가 고스란히 이 역에 미치기 때문에 부득이 신분 확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점 등 대부분의 업소에서도 수표 사용시 주민번호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이동통신 대리점에서는 주민번호가 아닌 휴대전화 번호만을 요청했다. 어쨌거나 상거래에서 수표를 사용할 때 주민번호든 휴대전화번호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건 분명했다. 말이 상호 협의이지 업소 주인들의 개인정보 기재 주장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대부분의 업소 주인들은 "수표의 위조 여부 확인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혹시라도 입게 될 피해를 우려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이 잦지 않은 고액권 수표는 그렇다 치더라도, 10만 원권 수표의 경우 일상 생활에서 쉽게 유통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개인정보 기재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업소 등을 거친 수표의 개인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활용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실제 주민번호와 실명, 휴대전화번호 등만 있으면 개인정보를 활용한 불법은 얼마든 가능하다. 핸드폰 결제나 불법 사이트 가입 등이 대표적.

이뿐만이 아니다. 수표는 앞서 은행 창구의 사례처럼 소비자에게 발급 수수료를 고스란히 전가할 뿐만 아니라 은행도 매번 새롭게 발급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시시때때로 폐기처분하는 수표의 유통 수명이 현금보다 짧은 것은 당연한 일. 소비자나 은행이나 이래저래 비효율적인 수표 발급 비용을 서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흥행 보증 수표? 사용 편한 현금이 낫다

굳이 경제성장률이 몇 % 높아졌느니, 현금 최고액인 1만 원권의 가치가 어떠니 따지지 않더라도,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10만 원권 수표의 사용 방법은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이곳 저곳에서 발생하는 지금, 10만 원권 수표 사용이 참으로 머뭇거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고액권 현금(10만 원권) 발행은 시급해 보인다. 논의는 있어 왔지만 현금 발급 비용과 탈세나 뇌물수수 등의 문제 때문에 머뭇거린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것들이다.

'흥행 보증 수표'라는 말이 있다. 수표는 믿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중에서 상거래에 오고 가는 수표는 믿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실제 10만 원권 수표를 사용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불편이 따랐다. 내가 보기에는 '흥행 보증을 위해 개인정보를 기재하는 수표' 대신 '사용 편하고 개인정보 유출 걱정없는 현금'이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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