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이상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예보는 신한은행과 SC제일은행을 대신해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의 부실 책임을 묻기 위해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등에 대해 291억원의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문제는 예보가 이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공적자금을 단 한푼도 회수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돈은 고스란히 금융회사에 돌아가게 된다. 엉뚱하게도 공공기관이 민간기업의 ‘특별이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15일 신한은행·수협·대한생명 등 7개 금융회사가 이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소송을 포기하면서 시작됐다.
신한은행은 “출자전환한 주식이 현대건설의 주가 상승으로 크게 올라 많은 이익이 발생했다”며 “손해를 봐야 피해보상을 받을 텐테 사정이 이러니 승소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의 주가는 올 들어 가파르게 올라 지난 6월 초 한때 주당 7만6700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금융회사의 출자전환가격 4만5250원(액면가 5000원에 9.02대 1 감자비율 감안)에 비해 70%나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해당 금융회사가 챙긴 평가이익은 일부 매각분을 제외할 경우 약 150억∼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회사가 소송을 거부하면서 예보는 속앓이를 하게 됐다. 예금자보호법에는 금융회사가 소송 요구를 거부할 때에는 예보가 대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민 예보 특별조사기획팀장은 “법률에서 이처럼 대리소송을 규정한 데다 부실책임을 물어야 할 당사자가 있는 상황에서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예보가 금융회사의 소송거부 때 이를 강제할 수단이나 제재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송당사자가 싫다는 소송을 예보가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예보가 이길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소송 비용도 문제다. 관련 규정에는 예보가 소송에 이기면 금융회사가 물어주지만 질 때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예보가 책임질 수도 있다. 금융회사로서는 그야말로 밑질 게 없는 ‘꽃놀이 패’다. 예보 입장에서는 실익도 없는 ‘악수’를 두는 격이다.
예보가 ‘사상 처음’으로 부실기업주에 직접 손배소를 내게 된 사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법규정이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보는 2002년부터 올 4월까지 713개 부실기업을 조사해 금융회사에 소송을 요청한 부실책임자와 소송금액은 각각 643명, 9127억원에 달했지만 승소 실적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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