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홍수, 이성훈 기자]

교보생명 임원 20여명의 집단 사표제출 사실이 알려진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점은 종일 어수선했다. 오너 경영인인 신창재 회장이 대구 등 지방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가운데, 박성규 대표이사 부사장 등 간부들은 오전 내내 대책회의를 갖고 수습책을 논의했다.

196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임원 집단 사표제출 사태를 맞은 교보생명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중대위기 맞은 교보생명

교보생명은 최근 몇 년 사이 보험 판매실적이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2004 회계연도(2004년 4월~2005년 3월) 교보생명의 수입 보험료는 8조8889억원으로, 신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2000년(11조4070억원)에 비해 20% 이상 감소했다.

재무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도 168%로, 삼성생명(300%)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재무상태를 개선하려면 증자(增資)를 해야 하나, 대주주(신씨 일가)측이 증자 여력이 없어 수천억원대의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땜질을 하고 있다.

수익성 지표인 위험손익률(보험금 지급 대비 이익률) 역시 7%대로, 삼성생명(32%), 대한생명(14%)보다 뒤처진다. 이번 집단사표 제출도 근인(根因)을 따져 보면 ‘경영실적 부진’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질적 측면에선 신 회장 취임 이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보험계약 유지율(13회차 기준)이 50%대에서 80%대로 뛰고, 보험설계사 1인당 생산성도 크게 개선됐다. ‘단기(短期) 성과’보다는 ‘장기(長期) 전략’을 중시하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먹혀들고 있다고 교보생명은 자평한다. 전문가들도 교보생명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낼 경우 중장기적으로 훨씬 강한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너와 전문경영인 관계 재정립돼야”

산부인과 의사(서울대 의대) 출신인 신 회장은 취임 후 외부컨설팅을 통해 ‘윤리경영’ 등의 새 전략목표를 수립하고, 조직과 기업문화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기 시작했다. ‘혁신 전도사’란 별칭까지 얻으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있었다. 신 회장의 고객 최우선의 윤리경영 방침은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전문경영인과 영업조직의 반발을 샀다. 예컨대, 전문경영인들은 회사 수익에 부담을 주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에 대해 해약을 유도해야 한다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신 회장은 “고객의 이익에 반한다”며 거절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너가 추구하는 이상(理想)과 전문경영인이 중시하는 현실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보생명 전직 고위 임원 B씨는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기업 덩치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춰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내부 갈등설

21일 아침 신 회장에게 먼저 사표를 냄으로써 집단사표 사태를 촉발시킨 교보생명 박성규 대표이사 부사장은 “최근 사고 보험금이 과도하게 지급되면서 목표한 경영성과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CEO로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측은 “다른 임원들 20여명도 연대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함께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원진 가운데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몇 명은 사표를 제출하지 않아 경영진 내부 갈등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김홍수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ongsu.chosun.com])

(이성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inou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