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노무현비리 > [물러나] 왔다…갔다…헷갈리는 ‘盧線’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전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첫 반응은 ‘침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례없이 신속하게 대통령 주재 안보관계장관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그만큼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실망도 컸다는 이야기다. 지난 8월 초 언론사 간부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과 미국을 ‘고집불통’으로 표현하며 그 사이에서 ‘좌절감’을 토로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북한 핵실험 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가 혼란스럽다. 정책의 ‘방향타’를 좀체 분명히 하지 못한 채 연일 이어지는 발언들은 조금씩 엇갈리는 상황이다. “(핵실험 이전과 이후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같을 수는 없다”(9일 특별기자회견)는 ‘상황논리’지만, 대북정책의 기조가 걸린 점에서 노대통령의 모호성에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온다. 혼선의 핵심은 대북포용정책과 관련한 발언 등 남북관계 문제다. 적어도 과거 주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 ‘한국의 목소리’와 ‘균형’을 추구·강조하던 것에서, 이제는 ‘동맹’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핵실험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특별회견에서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 아니겠는가”라며 ‘재검토’를 시사했던 노대통령은 10일 여야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선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U턴했다. 다음날 민주평통 자문위원 간담회에선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남북간의 화해·교류·협력이 큰 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포용정책’의 성과를 평가했다. 불과 두달여 전 “대북지원은 1차적으로 평화비용, 2차적으로 통일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8월 군 지휘관회의) 등의 언급에 비하면 노대통령의 포용정책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는 지점이다. 정부가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언급하는 등 ‘제재’쪽으로 발을 담그는 흐름과도 배치된다. 11일 민주평통 자문위원 간담회에서 거론한 북한의 ‘안보위협론’에 대한 평가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노대통령은 “북한이 말하는 안보위협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대단히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전의 “핵과 미사일이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2004년 LA발언)거나 “한·미 연합훈련 내용이 보기에 따라 북한이 불안하게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다”(2006년 몽골 동포간담회) 등의 평가와는 괴리가 큰 언급이다. ‘한·미동맹’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발언도 흔들리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한·미동맹의 경우 “한국 각료들은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안되냐”(지난 7월 국무회의)는 언급은 핵실험후에 “미국이 동북아 지역 동맹국들에 대한 안보공약을 거듭 확인한 것은 적절한 조치”(9일 조시 부시 미대통령과의 통화)로 바뀌었다. 역시 ‘자주’와 한·미간 ‘공고한 동맹’ 사이에서의 오락가락이다. 남북관계를 두고도 노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관용과 인내로 북한을 설득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이렇게는 이제 해나갈 수는 없게 된 것 아닌가”(9일 특별기자회견)로 강경해졌다. 핵실험이란 비상상태에 ‘동맹’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단기처방’이지만, 정부나 국민들로선 헷갈리는 대목이다. 물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대통령이 한번도 포용정책의 기조를 부정한 적은 없다”면서 “포용정책 수정 시사나 안보위협론 평가는 북한에 대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실제적인 기조 자체의 변화가 아닌 ‘상황논리’에 따른 전술적 변화라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결의안에 대해서도 “국제법적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우리가 회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념의 문제라기보다 정책결정자로서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명이다. 〈김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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