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은 탄핵제도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으로 역사적인 오류를 저지른 일이다.
탄핵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 중 잘못을 저질러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엄격한 요건을 부치고 제도의 정략적인 운용을 막기 위해 관료기구인 헌법재판소의 심판까지 거치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번 사안에서 국회는 대통령에 의해 나라의 위기가 증폭되어 국가의 존립이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여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여기서 탄핵 반대론자들이 즐겨 쓰는 16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얼마 남았는지 그들이 얼마나 부패하였는지는 탄핵안 가결자체와는 관련이 없다.
그런데 헌재는 탄핵안의 심판에서 국회의 소추가 정략이었는지의 여부는 판단하지 않고 판결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통령의 행위가 위법이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는 정상참작의 재량권을 행사하였다. 그 결과 국가적인 위기는 극복되지 못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말로만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을 뿐 오히려 탄핵 전보다 더 자기를 지지한 사람들 만에 의존하는 좌파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헌재가 위법이라고 지적한 사안을 고치려는 노력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법률전문가들로 구성된 관료기구인 헌재가 대통령의 잘못이 국가의 존립에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 월권이다. 탄핵의 법적인 타당성만 판단하면 되는 것을 위법이 중대한 지를 재단하였기 때문이다. 국가 존립의 위기라는 것은 예단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정작 현실화 되었을 때는 국가가 존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예단만 있을 뿐 실험하여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막중한 판단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국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가 넘는 193명 의원이 파면하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겠다고 판단하였으면 그것으로 사실관계는 확정된 것이고 헌재는 이를 바탕으로 심판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헌재는 처음부터 다시 사실관계 심의를 시작하고 위법은 위법이나 파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양형(量刑)을 작량경감하는 엉뚱한 판정을 한 것이다.
헌재가 판결문에서 “대통령이 헌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가 없다”고 밝힌 것이나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도 헌재의 권한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정치적인 것이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인지도 명백하지 않다.
탄핵당한 본인을 심문하지 않고 어떻게 헌법질서 역행의 적극적인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였는지도 의문이지만 헌재도 위법사실은 국회와 같이 인정하면서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이 아니라고 판정하려면 그 사유가 분명하게 소명이 되어야 하는데도 판결문에는 그것이 없다.
탄핵 기각의 의견을 개진한 헌법재판관들도 지금쯤은 자신들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 지를 깨닫고 당황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대국민담화를 보면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위법에 대해서는 한마디 사과도 없고 소추 사유였으나 헌재가 탄핵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한 측근 비리만 사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가 지적한 위법은 앞으로 계속할 수도 있다는 시사가 된다. 또한 탄핵의 전제가 된 국가존립의 위기는 탄핵이전 보다 더 심각해진 상황이 되고 있으니 순전히 법문상의 자구해석만으로 시종하며 논리의 장난을 즐긴 헌법재판관들이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국가 존립의 위기는 탄핵이 있기 전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당장 업무복귀 때 대국민담화에서 보여준 오늘의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도 최근의 위기 자체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경제의 투명성만을 강조하여 좌파적인 경제정책을 강력히 시사하였다.
물론 국민 다수의 지지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 자본주의 약점을 수정하여 나가는 좌파적 정책을 택한다고 하여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정책 부재로 거의 파탄에 이른 경제를 살리려면 비록 다른 정권이 택한 것이라 하더라도 종전의 정책을 그대로 집행하여 안정을 시킨 다음 경제가 어느 정도 힘을 얻을 때 수정을 검토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대통령 자신도 담화에서 진단하고 있는 것처럼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영양제 몇대로 일으켜 세워 ‘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것처럼 되돌리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상태의 경제를 투명성으로 살려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주식시장은 매수세가 완전히 사라져 거의 공황상태가 된 것도 우리경제에는 장래가 없다는 시장의 판단으로 볼 수밖에 없는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또 다른 위기는 주한미군 감축문제이다. 이것은 분명히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까하여 정부가 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이거나 미국이 탄핵안이 기각되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이 친미로 돌아설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한 결과인 것 같다.
하여튼 주한미군 일부를 이라크로 차출한다는 방침은 탄핵이 기각되자 바로 공개되었다. 민족 공조론자들이나 좌파들은 미군이 감축된다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북한이 주한미군이 나가야 한다고 모든 레벨의 남북대화와 국제교섭에서 줄기차게 주장하여 왔던 것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분명히 국가적인 위기인 것이다.
친북 성향의 방송이나 신문들이 주한미군 감축이 위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고 위기가 아닌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주한미군이 북한의 남한적화위협을 막은 것은 미국의 막강한 전력을 상대할 수가 없다는 북한의 전략에 의해 남침의지를 참은 데서 온 것이지 대한민국의 힘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또 병력을 빼가는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는 위협이 없도록 하겠다고 한 말들을 언론들은 강조하고 있는데 그러면 미국이 방위조약상의 의무였던 한국주둔군을 줄이면서 안보위협이 있어도 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안보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인데 미군이 있으면 저절로 얻어지는 전쟁억지력을 왜 굳이 버리려 하는 지 그 의도를 의심치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오늘의 위기는 미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하는 한국동란 체험자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불안을 해소해주는 것이 집권자의 의무인데 그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지지한 사람이 아니면 버릴 수도 있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위기를 느끼게 하는 조짐들은 많지만 위의 두 가지만으로도 노 대통령의 탄핵은 당연하였고 그밖에도 나라를 네 편과 내편으로 가르는 국론 분열의 양상을 더욱 심하게 만든 것, 구체적인 정책의 마련이나 집행은 관료체제에 떠 맡겨 놓고 자신은 파워게임 같은 정치를 위한 정치만을 즐기는 것도 충분한 파면사유이다. 당장 원내 제 1당을 만들어 냈으니 그 힘으로 무엇을 도모할 지 알 수가 없게 되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법적인 췌사로 국가적인 위기를 막기 위해 마련된 탄핵의 기회를 흐려 놓아버렸기에 역사적인 오류를 저지른 것이 된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북한이 채택하고 있어 한국동란 시 점령당한 땅에서 많이 목격한 인민재판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거의 매일처럼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젊은 세대들에 점령당한 이른바 사이버 월드 인터넷상에 온갖 상소리를 섞어 가며 “누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내보내려하느냐”는 여론을 만드는 데 재판관들이 영향을 받았다면 그것은 분명 북한 식 인민재판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여 대통령을 파면하여도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말인데 이 같은 위협에 굴복한 듯한 인상은 판결문에서 소수의견을 감추는 데서 엿보아 진다. 여론이란 매일처럼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탄핵심판도 이 같은 여론에 흔들리지 않을 법률전문가에 의한 심판을 최종적인 것으로 해 놓았는데 이 최종적인 단계가 여론에 의해 지배되었다면 그것은 법률전문가의 견해가 아닌 여론에 따라 춤추는 정당정치인들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최근의 여론은 어느 세력에 의해 조직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탄핵안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야 할 상황인데 탄핵 반대론자들이 기승을 부리는 데서도 알 수가 있다.
이번 노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보면 우리의 탄핵 심판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국가적인 위기를 구하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가 마치 형사재판의 정상참작 식으로 재판이 된다는 것은 위기 극복의 수단이 못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란 대의기구가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음 번 개헌을 하게 되면 헌법재판소를 없애거나 아니면 탄핵만은 대의기구에 맡겨야 한다. 단원제인 우리 국회의 속성상 법사위가 소추기관이 되고(정략적인 운영을 피하기 위해 대법관 한사람이 법사위를 사회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국회본회의가 판정기관이 되도록 고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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