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짓 못해먹겠다는 대통령 밑에서 노동자짓 못해먹겠다.
저들은 철도노동자의 총파업을 반긴 듯 했다.
연세대를 빙 둘러서 그물망을 펼쳐놓고 있었다.
퇴로를 열어 줄 것이라고 믿은 우리는 우왕좌왕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물에 갇히고 말았다.
발이 빠른 동료들은 담을 넘어 도망을 쳤지만, 잡혀가는 동료들을 두고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대부분은 알아서 잡혀 주었다.
닭장차에 실려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죄가 무언지도 몰랐다. 곧 풀려날 줄 알았다.
담을 넘은 동료들도 간단치는 않았다. 배낭을 메고 도망치는 아버지 뻘 되는 노동자들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들 뻘 훈련된 군사들의 그물에 하나 둘 잡혀 들어왔다.
철도노동자들은 나이도 많았지만 겁도 많았다. 파업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1000명 가량이 경찰서에 갇혀 각서까지 썼으니, 현장 복귀는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문자 메시지 하나에 그들은 10시간 넘게 갇혀있던 경찰서 문을 나서자마자 2차 집결지인 종묘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예정에도 없었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무작정 산개를 했다. 휴대폰 하나 들고 피시방으로, 찜질방으로, 여관으로, 산 속으로, 동해로, 서해로 발길이 닿는대로 몸을 피했다.
머리카락 하나 보일새라 꼭꼭 숨었다. 복귀 마감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나서고, 법무장관이 겁을 주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어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 4월 20일 정부와 철도노조는 " 향후 철도개혁은 철도노조 등 이해 당사자와 충분한 논의와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고, 이러한 절차를 거쳐 관련법안이 성안될 경우 조속한 시기에 국회 통과를 위해 철도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순진한 철도노동자들은 ‘4․20 노정합의'에 따라 바람직한 ‘철도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자체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철도개혁'에 대한 졸속입법을 강행 처리하려 했다.
반칙이었다. 무엇보다 졸속입법이 통과되면, 철도노동자들은 연금과 퇴직수당, 고용에서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철도의 시설과 운영의 분리로 인해 안전이 위협을 받게된다. 또한 고속철도의 건설비 중 65%인 12조를 새로운 철도 조직이 떠 안게 됨으로써 적자의 악순환은 곧 철도의 공공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재벌과 해외 자본의 군침 도는 식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졸속입법을 보류하고, 약속대로 '사회적 합의'를 거치자는 철도노동자의 호소를 정부는 거절했다. 대통령이 100분만 투자하면 철도파업을 막을 수 있을 거라며 대화를 요구했지만 기꺼이 정부는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았다.
약속을 지키라는 정당한 요구를 대통령은 철도노조의 불법 정치 선동이라고 했다. 조합원들은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약속을 어긴 사람들은 철도노동자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철도노동자들은 일년 365일,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104년을 일해왔다.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졸린 눈을 비비며 밤새워 일해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순진한 철도노동자들은 ‘파렴치범'이 되어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엄단에 처해질 ‘범법자’가 되어 있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참여정부에서 철도노동자와 그 가족은 이미 국민이 아니었다.
떠밀리다시피 파업에 들어가긴 했지만, 권력에 빌붙는 국회의원 말고, 가진 자의 이익에 충실한 국회의원 말고, 노동자의 하소연을 들어 줄 국회의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을 보류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관련법이 통과됐다. 철도노동자들이 거리를 헤매면서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지만 국회의원들은 잡담하듯 너무나 쉽게 법을 통과 시켰다. 30여 년 전 노동자 전태일에게 대학생 친구가 하나 없었던 것처럼 철도노동자에게도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해 줄 국회의원 하나 없었다.
입법 보류를 위해 파업을 강행했던 철도노조는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대통령의 반 노동자적인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전리품으로 전락되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그랬으리라. 조흥은행 동지들이 그랬으리라.
서러웠다.
파업을 접어서가 아니었다. 650명이 넘는 지도부가 직위해제 되고, 8209명의 조합원이 중징계가 예고되어서도 아니었다.
불의에 대항해야 한다던 대통령이 정직하지 못한 정권에 저항했던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는 게 서러웠다.
그런 이를 대통령 한 번 만들어 보겠다고 선거 전날 전화통을 붙잡고 밤을 지새웠다는 동료의 순수했던 열정이 배반당하는 게 서러웠다.
연두색 돼지 저금통에 희망을 꼬깃꼬깃 적어 넣었던 고사리 아들놈의 손이 급기야 제 아빠의 목을 조이는 것임을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내심 그런 그를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노심초사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대통령짓 못해먹겠다는 대통령 밑에서 정말이지 노동자짓 못 해먹을 노릇이지만 그래도 우린 노동자였다.
우리는 함께 파업에 돌입했던 처음 모습 그대로 모두들 씩씩하게 현장에 복귀했다.
줄줄이 직위해제 당했고 줄줄이 중징계가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일 년 치 이상 담아 온 6․28 파업의 무용담을 풀어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부족했던 경험들을 한 보따리 가득 풀어놓으면서, 좀더 치밀하게 철도 현장을 누빌 것이다.
백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처럼, 곁눈질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온 것처럼, 54년 어용의 터널을 박차고 달려온 철도노동자들이기에,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당당한 발걸음으로 인사드릴 것이다.
철도노동자 총파업으로 철도를 이용하는데 불편하셨을텐데도 의연히 견디어 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빠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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