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0일 미디어법 처리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친박(친박근혜)계 움직임이 초점이다. 이날 청와대 내부에선 박근혜 전 대표의 전날 미디어법 ‘반대투표’ 발언을 놓고 불만과 성토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이대론 안 된다”는 인식이 두드러졌다. 여권이 전력투구해야 하는 시점에서 박 전 대표의 언행 때문에 힘이 빠지는 상황을 매번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연말·연초 법안전쟁 때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들이 국민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박 전 대표 발언은 당시 ‘속도전’을 주도했던 청와대로선 허를 찔린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디어법 관련 '찬물'  

청와대는 미디어법안 처리 결과를 향후 친박계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시금석으로 삼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미디어법 처리과정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가 중요하다”며 “그 결과에 따라 친박계와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 전 대표는 딜레마다. 국정운영에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중요할 때 애를 먹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그간 박 전 대표와 ‘갈등모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도 강화론’ 주창 후 ‘화합모드’로 선회하는 조짐이 보였다. 화합과 통합을 중시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여권 개편시 ‘친박계 입각론’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점에서 특히 박 전 대표의 ‘반대투표’ 발언은 여야가 한치 양보없는 극한 대치를 하는 상황에서도 막판 타협을 시도하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는 게 청와대 시각이다.

만일 미디어법 처리가 물건너가고 친박계의 ‘비협조’가 드러나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나아가 친이(친이명박), 친박계 관계는 이전보다 악화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9월 정기국회와 10월 재보선, 내년 6월 지방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양측 간 다툼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청와대로선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국정운영 큰 부담

청와대가 이날 겉으론 당내 결속을 통한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기대감을 표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일단 미디어법 처리 전까진 친박계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표 발언은 중간에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잘못해서 빚어진 해프닝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범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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