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논설입니다.
'이미지 정치’의 함정
이미지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짱’ 정치신인, ‘유명’ 정치신인들이 당내 경선과 공천과정에서 단연 두각이다. 정치권이 끌어주고 언론이 밀어준다. 비판하는 체하면서 실은 얼굴사진 박아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어떤 언론사는 아예 ‘얼짱’이라며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분석이랍시고 정치권의 얼짱 유명인 선호는 새로운 정치트렌드란다. 가히 얼짱과 유명인 전성시대다.
한국정치권은 이미지천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이라는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서민이미지, 거대언론과 미국에 당당히 맞서는 소신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젊은이들의 열광을 끌어내는 원동력이었다.
특히 지금의 얼짱신드롬을 주도하고 있는 네티즌에게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은 최고의 상품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1년. 그 원칙과 소신은 하나의 신기루로 변해가고 있다. 굽실거리지 않겠다던 대미외교가 아부와 눈치보기, 그리고 알아서 기기로 가득 찬 대미외교로 나타났다.
수구언론과 비타협적 투쟁이 건전한 긴장관계로 바뀌더니 급기야 더이상 기자들과 소주파티는 없다던 선언이 불과 1년도 안돼 수구언론 편집국장들과 막걸리파티로 사라져버렸다.
법이 언제는 노동현실을 앞서간 적이 있느냐며 노동악법을 질타하던 모습은 강경노조 노동귀족 운운하며 오히려 ‘사용자 대항권’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는 수준으로 변질해버렸다. 노대통령과 함께 원칙과 소신이라는 이미지는 청와대에 함께 입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언어적 유희’를 즐기는 자로서의 이미지, 고무줄 소신에 철사 철학의 이미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이미지정치, 당장은 눈과 귀가 즐겁지만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약’이다. 이 마약은 지금도 정치인들에 의해 제조되고 언론에 의해 유통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즐겨 찾는 메뉴는 얼짱이나 유명언론인의 정계입문뿐만이 아니다. 언론이 유통시키는 메뉴 또한 이런 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달 21일 방송뉴스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노숙자 무료급식소를 찾아가서 떡국을 퍼주는 장면을 보여준다. 최대표가 나갔던 용산의 무료급식센터는 날마다 300여명에게 배식을 하는 데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최대표가 떡국을 퍼준 시간은 딱 5분. 카메라기자들이 녹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만 딱 배식을 한 것이다.
같은 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전라도 순창 종갓집에서 ‘1일 며느리 체험’을 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당시 동행했던 기자들은 정의장이 종갓집 부인들이 만든 음식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고 카메라기자, 사진기자들 앞에서 잠간 설거지하는 모양새 취하는 모습만 보았다. 설거지를 한 시간은 자신들이 먹은 밥상을 치우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정치인들의 민생 챙기기 실체는 정치쇼를 중계보도해주는 언론을 이용한 이미지정치였다. 그리고 언론은 공범자였다. 이런 이미지정치에 따라 여론조사 지지율이 널뛰기하는 것이 국민들의 수준이었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마약제조업자라면 언론은 유통업자였다. 그리고 총선은 말 그대로 허울뿐인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그대로 유통하는 세력들을 징치하는 기회다. 유권자로서 거의 유일한 권리다.
〈양문석/전국언론노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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