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특종 훔쳐간 동아와 조선
박지원-김영완씨 출입국기록 보도 뒤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지난 27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현대 비자금 150억원의 열쇠를 쥔 인물로 알려진 김영완 씨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한다고 보도한 기사가 실제로는 지난 24일 발행된 시사주간지 일요신문이 보도한 특종기사를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일보는 지난 27일자 1면 사이드톱으로 올린 <2000년초 정상회담 예비접촉때 박지원-김영완 출입국기록 일치>라는 기사를 통해 "2000년 3, 4월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남북비밀접촉을 가질 때 현대측의 비자금 150억원을 돈세탁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완씨도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체류했던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관련기사에서 박지원 전 장관과 김영완 씨의 출입국 기록을 표로 만들어 제시하며 "김씨의 출입국 기록이 박 전 장관과 일부 겹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에서 김씨와 박 전 장관이 만났는지 또는 모종의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된 바 없다"는 특검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조선일보 또한 같은 날 1면 <박지원·송호경 4차례 예비접촉 때마다 김영완 씨 현지 다녀왔다>는 사이드톱 기사에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현대로부터 받았다는 150억원의 돈세탁을 총괄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영완 씨가 2000년 3∼4월 박 전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간의 4차례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일정과 일치하는 시점에 예비접촉이 열렸던 싱가포르·상하이·베이징으로 출국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동아일보와는 달리 특검이나 특검팀 관계자를 인용하지 않았으며 관련사실을 김씨의 출입국 기록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보도했다.
두 신문 보도가 일치하는 부분은 박 전 장관과 김씨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해 김씨가 현대 비자금 돈세탁에 관여한 것 외에 남북간의 정상회담 예비접촉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또 관련내용이 자사 취재에 의해 최초로 밝혀진 특종인 것처럼 "밝혀졌다"와 "확인됐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박 전 장관과 김씨의 출입국기록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일요신문'에 의해 최초로 보도됐다. 매주 화요일 발행되는 일요신문은 최근호(24일자) 4∼5면에 걸쳐 <박지원 가는 곳에 그도 있었다>란 기사에 두 사람의 출입국 기록을 표로 제시하며 "정상회담 막후협상 벌이던 2000년 3∼4월 사이 박지원-김영완씨 해외동선 세 차례나 겹쳐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보도 3일전에 이미 같은 내용을 '일요신문'이 보도한 것이다. 그런데도 두 신문은 '일요신문'을 인용하지 않은 채 자체 발굴기사인 듯 작성해 보도했다.
일요신문 편집국의 한 고위간부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최근 한겨레신문이 일요신문 특종을 베꼈으면서도 이를 밝히지 않고 자사 취재기사인 것처럼 보도한 사건과 똑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며 "특검 출입기자들은 관련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이 일요신문을 보고 쓴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두 신문이 일요신문 기사를 어디까지 참고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기사 출처는 밝히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인 윤리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가 기사에서 밝힌 '특검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서도 타사 기자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대북송금과 현대비자금을 수사했던 특검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27일 관련사실을 보도하기 전까지는 박 전 장관과 김씨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맞춰본 적이 없으며 이를 특검 출입기자들에게 알려준 적도 없다는 게 특검 출입기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한 특검 출입기자는 "특검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보도가 나온 후에 박 전 장관과 김영완 씨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해봤다고 말했다"며 "두 신문이 일요신문 보도내용을 기초로 기사를 썼다는 것은 특검 출입기자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 이후 중앙일보는 27일 오전 7시 38분 자사 인터넷신문인 조인스닷컴에 올린 <정상회담 예비접촉 때 김영완씨도 출국>이란 기사를 통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남북 비밀 예비접촉을 가질 때, 현대측의 비자금 150억원을 돈세탁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완 씨(50)도 같은 장소에 체류했던 것으로 일요신문이 보도했다"고 소개했다.
한겨레신문은 다음 날인 28일자 3면에 <정상회담 예비접촉 때 박지원씨와 출입국 일치-김영완 씨 역할 의혹 증폭>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관련내용이 일요신문을 인용한 것임을 밝혔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특종처럼 보도한 내용을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은 일요신문 특종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관련기사를 작성한 동아일보 기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건이) 일요신문 특종임을 인정한다. 기사를 쓰는데 참고가 된 것도 사실이다. 특검팀 관계자와 얘기하다보니까 일요신문에 보도가 됐었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그러나 별도로 특검팀 관계자를 통해 일요신문이 보도한 출입국 기록 날짜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해 기사를 썼다. 일반적으로 어느 신문이 특종했을 때 별도 확인취재를 거쳐 보도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특검팀이 출입기자들에게 관련사실을 알려준 적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특검팀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를 발표한 적은 없으나 특검팀내 취재원을 통해 별도 확인취재를 한 것이므로 특검팀을 인용한 기사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론했다.
조선일보 기자는 "일요신문을 참조한 것이 사실이다. 일요신문을 보니까 두 사람의 출입국기록이 같다고 돼 있어 기사의 방향을 김영완 씨가 박지원 전 장관이 출국했던 현지(상하이와 베이징)에 갔었다는 쪽으로 바꿔 썼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직업윤리상 일요신문을 참고했다고 밝히는 것이 맞으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한다는 일요신문 보도내용을 현지에 갔었다는 쪽으로 기사의 야마(핵심)를 바꿨고 출입국기록에 대한 별도 확인과정을 거쳐 썼기 때문에 일요신문을 밝히지 않았다"며 "특검이 두 사람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고 보도 이후에야 확인해준 것은 사실이다. 이번 기사와 관련해 일요신문 기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고 털어놨다.
한편 지난 20일자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전두환씨 10대 손녀·손자 30억대 부동산 갖고 있다>는 1면 기사 역시 일요신문이 지난 5월 6일과 13일(발행일 기준) 보도한 내용을 재정리한 수준의 기사였던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213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