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14년 전, 월간지 기자로 활동하다가 스물아홉의 나이에 경찰에 입문하여 신임교육을 수료하고 서울지방경찰청 남대문경찰서 태평파출소에 부임하던 때를 차분히 떠올려본다.
당시 서울시 소재의 파출소는 모두 2개조가 24시간씩 교대하는 2조2교대제를 시행하였고 근무인원은 대부분 한 반에 5명이었으며 관할 구역에는 20여개의 순찰함이 설치되어 순찰할 때마다 일일이 자필서명을 해야 했다.
제법 굵은 비라도 내리는 날씨에는 순찰용지가 비에 젖어 볼펜 끝으로 찢기거나 잉크가 번져 못쓰게 되었던 때도 부지기수였다.
또한 통풍이 안 되는 우비를 입고 순찰하다가 돌아오면, 제복은 땀에 흠뻑 젖어 역겨운 냄새가 배었고 하루 종일 그렇게 마르고 젖고를 반복하다보면 찌든 악취와 함께 기분까지 가라앉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4시간 근무중에 개인별로 순번을 정하여 4시간의 휴게시간을 주었는데, 월15일 근무일중 3～회 정도는 낮에 지정되고 야간에도 초저녁이나 새벽녘에 지정되면 별로 도움이 안 되고 그나마 심야에 지정되더라도 신고가 많아 거의 쉬지 못했으며 결국 몸은 녹초가 되어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곧장 쓰러져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였다.
주간에는 도보순찰을 위주로 교통단속이나 기초질서단속 업무를 병행하였고 야간에는 적은 인원 때문에 접수되는 신고사건을 처리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격무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파출소의 업무는 주로 야간에 바빠지는데, 그 이유는 퇴근 후에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만취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주문화로 인하여 술값이나 택시요금에 대한 말다툼 그리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작되는 단순폭력이나 집단폭력 그리고 심야에 귀가하여 이루어지는 부부싸움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고가 비교적 적은 날에는 방범순찰을 돌았는데, 하루동안 도보순찰은 대략 7～8회 가량 지정되었고 매시간 50분 정도를 걷다보면 새벽 3시쯤에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그래서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신 커피만 해도 하루 일곱 잔 정도였고 아침 8시에 세면할 때에는 예외 없이 코피를 쏟았으며 ... 퇴근하면 시청역에서 휘경역까지 약25분 정도 전철을 탔었는데 열 번중에 아홉 번은 목적지를 그대로 지나쳐 나중에는 아예 좌석에 앉지 않고 손잡이를 잡고 서서 다녔다.
그나마 그렇게 곧장 퇴근하는 날은 억수로 운이 좋은 날이었다.
왜냐하면, 지역특성상 경호경비나 집회시위가 많아 비상동원이 잦았고, 경찰서마다 치안공백이 우려된다며 매번 비번자를 대상으로 교육이나 사격 등의 직장교육을 실시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파출소 근무자들의 초과근무시간은 대략 월150시간 정도 되었는데... 야간근무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은 아예 없었고 시간외근무시간도 73시간만 고정수당으로 지급했는데, 이는 실제 시간외근무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임금여건이었다.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초과근무수당의 10%도 받지 못하였고 동사무소의 행정공무원이 일체 시간외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13시간을 기본적으로 인정해주는 여건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적은 보상액이었으며 더욱 격분했던 차별은 당해 계급에서 5년 이상 근무하면 누구나 다 지급하는 대우공무원수당(매월 기본급의 6%)을 경찰관(소방)에게만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어느새 햇수로 15년이 지났다.
5년 전부터 별도의 인원증원 없이 3조2교대로 근무형태를 전환하였는데, 근무강도는 훨씬 더 높아졌고 초과근무시간은 겨우 월평균 30시간이 단축되었으며 초과근무수당은 20시간이 줄어 봉급인상률을 감안하면 그때보다 개선된 부분은 전혀 없다.
그 동안 좋아진 것이 있다면 경찰제복의 디자인이나 재질 그리고 순찰차 등의 장비의 품질뿐이다.
당시 K은행 종합기획실에 근무하던 막역한 친구는 ‘2조2교대’ 근무가 단순히 하루 근무하고 하루 휴식한다고만 알고, 내가 한 달에 보름을 쉬고 일년에 6개월을 쉰다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민들도 순찰지구대 경찰관을 부러워한다.
사흘에 한 번씩 휴무로 쉬고, 봉급도 공무원중에 제일 많이 받고, 경찰채용시험 경쟁률도 높아져 들어가기도 무척 힘들어졌다며... 이제 경찰관을 바라보며 박봉과 격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경찰(교대부서)공무원만 휴무일이 없고, 그리도 많다는 봉급은 철도공안보다도 -5.5%나 적으며 20-30:1로 높아졌다는 채용시험 경쟁률은 행정직 200-300:1의 1/10에 지나지 않아 사실상 그 격차는 더욱 더 벌어졌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지금 한국경찰은 그러한 현실왜곡속에서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다.
경찰은 출근하기가 두렵다.
국가는 너무나 오래 전에... 믿음을 상실했다.
국민과 경찰이 하나가 되어 지역치안을 완성하도록 가교역할을 해야할 언론은 무슨 철천지 원수가 졌다고 경찰이 무엇을 어떻게 하더라도 결론은 비아냥이나 비난으로 마무리한다.
흉악한 범죄자를 검거하다 두 명의 경찰관이 순직했는데... 그들의 잣대로 현장조치가 어쩌고 저쩌고를 시끄럽게 떠들며 죽은 형사들의 영혼까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모욕을 일삼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오죽하면 살아있는 경찰도 할 말을 못한다. 어떻게 매도 당할지 몰라서... 세상이 두렵다. 언론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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