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7. 30
정치학박사 이 영 환
대법원은 지난 23일 조무제 대법관 후임으로 김영란(사시 20회) 대전고법 부장판사의 제청과 관련하여 강병섭(사시 12회)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절차에 대한 문제점과 최근의 일부판결에 대해 “개혁만 쫓으면 사법부 위기를 맞을 것” 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사의를 표명하였고, 이영애(사시 13회) 춘천지법원장도 이와 관련하여 지난 26일 사직서를 이미 제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두 원장은 이번에 대법관에 추천받았던 고참 법관의 신분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보수성이 강한 사법부가 서열파괴의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조직내부에서 강한 불만이 일고 있는 점, 정치권 및 시민단체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 하는 점 그리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수뇌부들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인사를 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점 등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행정부가 개혁, 개혁하니까 사법부도 이에 편승하여 시류에 따라 간다면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사회에서 최고의 지성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법부가 지금 문제가 많은 정치권력에 부화뇌동하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은 헌재에서 비록 기각판결은 했지만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했고 지금도 국민들로부터 도덕성과 리더십문제로 엄청난 불신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 어찌 이에 눈치나 보는 사법부로 전락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탄핵소추를 받았다는 자체는 국가 최고고권자로서 엄청난 권위의 실추이며 수치가 아닌가.
사법부는 썩고 부패한 행정부나 입법부에 비해 그래도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로서 언제나 정의의 실현과 양심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어야 함에도 이를 팽개치고 잘못된 정치권력에 영합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
대법관의 자리가 연공서열을 파괴하면서 까지 인사를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의 권리보호도 어렵고 사법부개혁도 어려운 것인지? 묻고 싶다.
어디까지나 사법부는 정의와 양심의 편에 서 있어야 하며 진보니 개혁이니 보수니 하는 정치판의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입장에서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쟁취하고 그 권위를 확고하게 세워나가면서 일상적으로 잘못된 것은 고치고 개혁해나갈 때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법관이 죽어 있으면 정의와 양심은 죽게 되고 양심에 따른 재판도 사실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병역거부자의 무죄판결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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