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김성호 법무장관의 교체를 놓고 뒷말이 무성한 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한 ‘소신 발언’ 으로 김 장관이 밀려났다는 분석이 제기되던 지난 7일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인 이재상(64·사진) 이화여대 법대 교수를 만났다.

법조윤리협의회는 지난달 27일 출범했다. 이 교수는 “법무장관은 독립성이 없다”는 한마디로 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했다. 법무장관은 행정부의 일원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인 만큼 옳은 말이라 해도 대통령과 정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법무장관은 대통령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무부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똑 부러지는 촌철살인식 답변은 인터뷰 내내 계속됐다. 그러나 이 교수는 초대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으로서 전관예우 근절이란 법조계의 숙제에 대해서는 부담과 고민을 감추지 않았다.

―법조윤리협의회는 아직 생소한 기구입니다. 전관예우를 없애는 기구라던데.

“공직에서 물러난 변호사나, 일반 변호사들보다 2.5배 이상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들의 수임 과정을 살펴볼 것입니다. 브로커를 고용해 사건을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면 징계하게 되죠. 이른바 사법개혁이란 ▲로스쿨 도입 ▲형사소송법 개정 ▲사법비리 척결 등 3가지로 이뤄집니다. 즉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법조비리 척결입니다.”

―고질적 브로커 병폐가 없어질까요.

“없애야만 합니다. 사건 수임료 일부가 브로커에게 간다면, 결국 그만큼 국민부담이 늘어나는 겁니다. 다만 상대가 변호사다 보니 조사도 힘듭니다. 협의회에 징계상신권과 수사의뢰권이 있지만 자료만 분석해서는 얼마나 적발될지 두고봐야죠. 협의회 혼자서 법조 브로커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가장 기대하는 것은 시민들의 신고입니다.”

―본격적인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공직출신 변호사 등은 올 하반기 수임 실적을 내년 2월에 보고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자료를 분석해야죠. 현재로서는 조사 권한을 가진 조직도, 예산도 없습니다. 6개월에 200여건을 검토해야 할텐데 분석 및 조사·탐문 인력이 10명 정도 필요합니다. 변호사나 판·검사 등 자격을 가진 이들이 조사해야죠. 협의회는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됩니다. 예산도 3분의 1씩 출자하고, 세곳에서 인력 파견 문제도 논의 중입니다. 잘되면 바람직한데, 협조가 안되면 부작용도 있을 수 있죠. 실제 협의회 위원들은 분기에 한번밖에 안 만나요. 결국 조사기구의 예산을 확보하고 어떻게 운영할지가 관건이죠.”

―과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

“미국 등 어디에서나 전관예우는 있습니다. 이를 감시하고 대책을 세우는 기구는 반드시 필요해요. 어쨌든 예방적 효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수임 내역을 감시하고, 계속 보고해야 한다는 자체가 중요하죠. 브로커를 쓰거나 전관예우를 누리려는 사람들도 징계와 상관없이 계속 보고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조금은 삼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법조인들로만 구성된 협의회를 통해 법조비리가 해결되겠냐는 식으로 부정적 의견을 보였습니다.

“대개 무슨 ‘위원회’에는 시민단체가 참여하게 마련인데, 이번에 변협이나 검찰, 법원 모두 그 과정을 생략했죠. 하지만 이런 구성이 장점일수도, 단점일 수도 있어요. 국민참여도 좋지만, 법조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조사를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석궁테러까지 벌어졌듯 법조계 전반에 대해 국민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검찰과 법원내 비리도 있겠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전관예우와 브로커 문제입니다. 변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전반의 신뢰 문제입니다. 사법을 안 믿으면 더 이상 믿을 게 없어요. 법치국가가 뭡니까. 마지막에 법은 믿어도 된다는 생각에 국가가 유지되는 겁니다. 사법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 존립 자체가 어렵습니다.”

―사법 신뢰를 위해 칼을 뽑으신 셈이시군요.

“칼을 뽑긴요.(웃음) 하여튼 일은 열심히 하려고 해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변호사들이 스스로 잘해야 합니다. 변호사를 돈 버는 직업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변호사는 자기 이익보다 의뢰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변호사 배지에 왜 저울이 있겠습니까. 법의 형평성, 평등을 지켜야죠.”

―과거 변호사로도 활동하셨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변호사 5년 했는데, 누군가 ‘변호사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줬다면 아마 계속했을 것입니다. 그때 생각에는 완전히 사기꾼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죄날 사람 무죄나고, 집행유예 받을 사람 집유 받고, 실형 받을 사람 실형 받습니다. 제가 하는 것은 거의 없고 판사가 다 하는데 저는 중간에 돈만 받고 있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 변호사가 할 일이 많더군요. 피의자의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하고, 간혹 무죄 받을 사건이 유죄가 되는 일 없도록 합니다. 결과뿐 아니라 재판 진행과정에서 변호사 역할이 분명히 있어요.”

―형사소송법 전문가로서 법조계 쟁점인 공판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어느분 말씀처럼 검찰 신문 조서를 내던지면 안됩니다. 수사 결과를 휴지로 만들면 안되죠. 제일 무죄나기 쉬운 사건이 수사기관에서 자백한 경우입니다. 공판중심주의는 재판장이 심리를 정말 잘해야 됩니다. 조서도 모두 증거가 될 수 있는데 수사 결과를 믿지 말라고 하면 안되죠.”

―일각에서는 사법개혁이 너무 성급하게 진행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법개혁을 오래 논의해오기는 했는데, 그 과정에 전문가가 너무 적었죠. 전문가 없이 법원과 검찰이 티격태격 법을 만들었습니다. 국회에서도 하루에 모두 통과시켜버리는 등 너무 성급하게 진행됐죠. 나중에 보세요. 재미있는 실수가 몇가지 있습니다. 법원과 검찰간 타협이 잘 안되니까 당초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간 것도 있죠. 다만 여러 좋은 제도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정혜승 사회부기자 [email protected]

이재상 교수는 누구

이재상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법학전공자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형법 및 형사소송법의 대가로 꼽힌다. 검사 출신의 이 교수가 집필한 ‘형법총론’과 ‘형법각론’, ‘형사소송법’ 등의 교과서는 사시준비생들에게 ‘바이블’로 통할 정도다. 지난 2005년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지휘 파동’ 당시 이 위원장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법무부장관에게 검사에 대한 일반 지휘·감독권을 주되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지시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대구 출신인 이 위원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으며 1966년 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과 법무부 검찰국 검사로 활동했다. 1978년 잠시 변호사로 개업했던 그는 1980년 이화여대 법대 교수를 시작으로 경희대 법대와 이화여대 법대 학장 등을 지냈으며 한국형사정책학회 부회장, 한국형사법학회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김남석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