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05-01-21 18:21]
76세 할머니 A씨는 아는 사람에게 빌려준 10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낸 소송 때문에 최근 인천지방법원을 찾았다.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A씨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법정에 앉아 3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그날 얻은 소득은 다음 재판기일을 지정받고 돌아온 것뿐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비용이 부담스러워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A씨보다 늦게 온 변호사들이 먼저 변론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후 A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대법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대법원은 “재판진행은 재판장의 고유권한으로 누구도 관여할 수 없습니다”란 짤막한 회신만 보냈다.
지난 17일 가게세 700만원을 내라는 소송을 당해 서울중앙지법을 찾은 B씨도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B씨는 오전 10시로 예정된 재판시간에 맞추느라 아침장사도 포기한 채 법정을 찾았다. 1시간 반이 넘도록 법정에 앉아 기다리는 사이 변호인석을 차지한 변호사들은 변론을 마치고 하나 둘씩 썰물처럼 빠져 나갔지만,B씨는 점심시간이 다 된 11시50분쯤에서야 호명됐다.
A씨와 B씨처럼 재판시간에 맞춰 1∼2시간 기다렸다가 1분도 채 안되는 변론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2000만원 미만의 소액사건의 경우, 판사 한 사람이 한 시간에 진행해야 하는 재판이 무려 10∼40건에 달해 사건별로 시간을 지정해주기는 어렵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문제는 이같은 소액사건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이 30% 정도로 나머지 대부분 사건은 법률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변호사가 새치기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데 있다.
특히 법정에서는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을 먼저 진행하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져 “생업도 제쳐두고 왔는데,사람을 차별하느냐”는 일반 소송인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자기 사건 하나만으로 온 일반인들과는 달리 변호사들은 기일안에 여러 사건이 걸려 있을 수 있고,재판이 생업활동이라는 차원에서 배려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새치기를 막기 위해서는 변호사 수임사건과 일반사건을 구분해 기일을 따로 지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든지,은행처럼 법정밖에 번호표 뽑는 기계를 설치해 순서대로 사건을 진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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