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용국 기자]

▲ 국선전담 변호사로 뽑힌 이영미 변호사

ⓒ2006 김용국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돈 들여서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걸 나무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돈 없는 사람이 빚을 내면서까지 변호사를 사야 한다면 그건 문제죠. 저는 돈 없는 피고인들의 입이 되고 싶어요."

2월 9일 저녁 눈이 내리는 신촌에서 만난 이영미(29)씨는 올해 사법연수를 마친 새내기 변호사이다. 그는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법원 선발 국선전담 변호사에 뽑혀 오는 3월 1일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활동하게 된다.

법원이 피고인 대신 선정...국선변호 사건만 맡아 새로 도입한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란? '국선변호사'란 법원이 피고인을 대신하여 선정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법원은 형사피고인이 ▲빈곤 등의 사유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거나 ▲미성년자, 70세 이상의 노인, 농아자인 경우 ▲3년 이상의 징역형 등 법률에 의해 반드시 변호인을 선임하여야 할 경우에 변호인이 없으면 국선변호사를 선정하도록 되어 있다.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는 국선변호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 대법원이 시행하는 제도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2년간 법원이 지정한 월 40건의 국선변호(형사)사건을 맡는 대신, 그 외에 다른 사건을 유치할 수 없다. 대법원은 서울 15명을 비롯, 전국에 42명의 국선전담 변호사를 선발하였다. 그동안 국선변호는 변호사의 부수적인 업무로 인식되면서 형식적이고 무성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선변호만을 전담으로 하는 변호사들이 선정됨에 따라 내실있는 변론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용국

국선전담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의뢰인을 만나는 대신 법원에서 선정해준 사건만을 맡게 된다. 그가 만날 형사 피고인은 한 달에 40명이다. 꿈 많은 20대 법조인으로서 여러 가지 길이 있었을 텐데 굳이 국선변호를 자청한 까닭은 무엇일까.

"고민이야 적지 않았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오라는 데도 많았어요(웃음). 보수와 근무조건, 장래 가능성을 따져보다가 문득 왜 내가 이 직업(변호사)을 선택했나 돌아보게 되었어요. 아, 난 양심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걸 보람으로 느끼며 살겠다고 생각했지. 그래, 20대의 신념을 실천하며 살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자연히 제가 할 일이 보였어요."

"국선이 사선보다 불성실하다는 편견 깨고 싶다"

	▲ 이영미 변호사는 "국선변호사가 사선보다 불성실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2006 김용국

하지만 국선변호사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도 국선변호사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형사재판 업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데 피고인이 여러 명인 사건이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이 국선변호를 신청하였는데, 변호사가 나오지 않았다. 사건번호를 듣고 나서 한참 후에 나온 변호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기가 맡은 피고인이 누구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도 "국선(변호사)이 사선(변호사)보다 성의 없다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며 "그동안 국선변호의 가장 큰 문제는 부수적인 업무로 인식되었다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국선변호사에 대한 편견, 당연히 깨야죠. 전담변호사는 다른 사건을 맡지 않고 국선변호만 담당하기 때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어요. 저 혼자 힘으론 안 되겠지만 한 10년 정도 지나면 국선변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거라고 봐요."

10년이라. 설마 10년 동안 국선변호만 할 생각은 아닐 텐데.

"(국선변호를) 계속 할 거예요.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어요."

너무 확신에 찬 답변이었다. 아직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까. 그래서 이 변호사에게 도전적인 질문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중죄인이라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률 검토"

- 한달에 맡게 될 형사사건이 40건이다. 기록검토, 피고인 면담, 서류제출, 증인신문, 법정출석 등의 업무가 녹록찮다. 혹시 잘 모르고 선택한 것 아닌가.

"일이 많고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법연수생 시절에 항소심 국선변호를 해본 경험도 있다. 그때는 3건을 갖고 한 달 내내 바빴다. 목격자 진술서를 작성하고, 증인신문을 준비하느라 날을 샌 적도 있었다. 그 결과인지 몰라도 3건 모두 1심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젊을 때 스스로 인생의 많은 부분에 열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오는 되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진심이다."

- 국선변호를 잘하기 위해선 경륜과 경험이 필요한데, 패기만 갖고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경륜과 열정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한다. 경험이 풍부한 선배 변호사들의 실무 감각은 배워 나가겠다. 하지만 나 역시 최근 형사 재판의 흐름이나 판례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히 변론할 계획이다."

- 살인, 강간치사와 같은 중형을 저지른 피고인들을 변호하게 될 수도 있는데.

"법률적으로 검토할 부분과 사회에서 비난받을 부분은 구별해야 한다. 변호사는 중죄인이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을 적용해 나가겠다. 살인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심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해볼 부분도 있을 것이다."

- 사건당 20만원이면 많지 않은 돈이다. 사무실 운영하고 활동비로 쓰려면 부족하지 않겠나.

"벌써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웃음). 나야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큰 불만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서 6명의 변호사와 함께 공동사무실을 마련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 일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채 소신만 갖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공익을 위한 활동인 만큼 국가에서도 국선변호 지원에 더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다. 결국 국민을 위하는 일이니까."

▲ "사선이 아니라고 불안해하지 말고 국선변호사를 믿으세요."

ⓒ2006 김용국

"누군가 저 때문에 즐겁다면 행복해요"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가 선택한 길이 젊은 시절의 치기나 객기로 한 순간에 결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20대 그의 화두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득 힘들 때 스스로 "너 얼마나 행복하니?"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100% 만족해요. 원하는 일 잘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 저 때문에 즐겁다면 저도 행복해요."

자신을 찾아오게 될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사선이 아니라고 불안해하지 말고 국선변호사를 믿으세요"란다.

"제가 여자고 나이가 어리니까, 게다가 돈을 주지 않았으니까 불안해할 수도 있겠죠. 그럴 때마다 전 '돈 많이 주고 선임한 변호사보다 더 잘 해줄 수 있으니 마음 놓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변호사는 형사소송 전문가가 되고 싶다. 특히 법심리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의 심리적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올해 이 변호사가 만나게 될 피고인은 400명이다. 이들 모두의 입이 되어줄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이 변호사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김용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