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모(42)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사건을 의뢰한 A변호사와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변호사 개인 핸드폰으로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소송이 진행 중이라 답답한 마음은 더 커져갔다. 김씨는 방법을 찾다가 서울지방변호사회를 찾았다. 당장 A변호사를 형사고소하고 싶었지만 변호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진정을 접수한 변호사회는 사실 확인을 위해 A변호사 사무실로 연락을 취하고 팩스로 진정내용을 보냈지만 전화와 팩스 모두 수신이 불통이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를 상대로 한 진정사건과 관련, 최근 연락이 닿지 않는 변호사가 상당수에 달하자 실태파악에 나섰다.
◆징계처분 내려도 연락 안돼 =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역시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연락이 안 되는 변호사들이 늘자 전국 지방변호사회에 공문을 내려 보내고 소재 파악이 안 되는 소위 ‘유령 회원’의 현황 조사를 요청했다.
채근직 변협 회원이사는 “현황을 파악해 시민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며 “변호사수가 크게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사무실을 운영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 이사는 “사무실을 닫아 수임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의뢰인과의 분쟁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변협은 변호사 징계처분 후 연락이 되지 않아 본인에게 통보하지 못할 경우 ‘공시송달’을 통해 징계를 공식화하고 있다. 공시송달은 당사자의 주거 불명 등으로 소송관련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 서류를 법원 게시판이나 신문에 일정 기간 게시함으로써 송달과 같은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일부 변호사는 사무실 전화를 핸드폰이나 집전화로 착신해 놓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 문제로 의뢰인과 분쟁 잦아져 = 형편이 어려워진 변호사들은 돈 문제로 사건 의뢰인과 분쟁도 잦아지고 있다.
B변호사는 의뢰인이 맡긴 보관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에 불출석하고 잠적했다. 소송을 당한 피고측 대리인이던 B변호사는 피고가 원고에게 줄 합의금을 맡아 보관하다 이를 빼돌렸다. 횡령혐의로 재판을 받던 B변호사는 선고 당일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 후 피고측과 합의를 해서 풀려났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C변호사는 의뢰인들과의 분쟁으로 변호사협회에 20여 차례 진정이 올라 온 경우다. 승소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승소를 장담하면서 무리하게 수임했거나, 수임료를 다른데 써버리고 맡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사건 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의뢰인들이 진정을 하면 결국 돈을 주고 합의를 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아직 징계처분이 내려진 적은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진정을 많이 받는 변호사가 있지만 진정인과 합의를 하기 때문에 징계처분을 하기 어렵다”며 “이런 변호사들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의뢰인과 분쟁이 발생하면 수임료를 돌려주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들이 늘면서 진정을 많이 당한다”며 “변호사협회에 출석해서 ‘정말 줄 돈이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변호사수는 지난 96년 3000여명에서 2004년 5000여명을 넘어서고 올해 2월말 현재 8700여명에 달하는 등 매년 급격히 늘고 있다. 변호사협회는 이 같은 추세에서 로스쿨 등으로 법조인이 대량 배출되면 상당수 변호사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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