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시인하고 그것을 만방에 알리기라도 하면 학교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신학자의 정체성마저도 훼손당하는 행위다. 나아가 교단의 정체성마저 통째로 뒤흔드는 일이다.

 정체성 때문에 잘못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시인도 할 수 없다는 막무가내가 최근 발생했다. 예장합동 산하 총신대교수회는 언론중재위원회가 조정한 중재합의에 응할 수 없다며 반기를 든 것이다. 총신대가 발행하는 총신원보는 지난 5월,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는 이단중의 이단이다. ‘피가름’을 옮겨야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다.거기에 무슨 생명의 복음이 있겠는가” 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내용을 본 평강제일교회측은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한 교회와 목회자의 명예를 짓밟았다며 발끈했다. 급기야 교회측은 그릇된 보도내용을 바로잡고자 하는 취지에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총신원보에 대한 조정신청을 했다. 결과는 정정보도에서 반론보도로 완화한다는 중재합의가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총신교수회에서 ‘반론 보도문’게재를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그 이유를 ‘학교와 신문 그리고 신학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둘러대고 있다. 그럴듯한 명분도 있다. 신학자들이 이단과 관련한 비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반론문을 실어야한다면 신학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겠느냐는 것이다. 풀이하자면 이단을 상대해서 혹 잘못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정통의 자존감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는 해석도 된다. 정통은 무소불위의 권위가 있다며 은근슬쩍 교만함 마저도 엿보게 한다.

정통이 주장하는 정체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교회측은 얼마 전 ‘기자회견’자리에서 정통을 자처하는 교단 교수들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총신 교수회의 결정은 실정법을 무시하는 비신사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실 언론중재위는 사실관계를 따져서 쌍방간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여 화해케 하는 기관이다. 예컨대 공정한 판결을 위해 정통, 이단의 종교적 이해관계가 절대 개입할 수가 없다. 일종의 진실의 바탕위에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구인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정을 거부하는 것은 마치 ‘반론보도문’ 사안이 정통교단의 교수단의 판단이 실정법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이미 중재위원회의 판결을 승복하기로 한 결정이 하루아침에 실정법쯤이야 하는 오만함으로 뒤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학교와 교수진의 정체성이 실정법을 거부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더더욱 아닐 텐데도 그 주장을 좀처럼 꺾지 않는다. 교회측은 아직까지도 총신에 속한 교수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거짓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입힌 편파보도가 정체성이냐고 되묻고 있다. 더군다나 ‘피가름’ 발언을 한 교수에게는 이미 약식기소로 2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진 상태고, 현재 이 사건은 항소 중에 있다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총신회보의 보도는 잘못된 기사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 하다.

과연 이 사건의 판결인정이 총신대교수진의 정체성을 훼손할 만큼 큰 것인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반론보도문이 자존감을 크게 상하게 하는 일인가. 사회실정법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는 과연 정통수호를 위한 처사인가 되묻고 싶다. 지난 총회에서 합동교단은 평강제일교회를 여전히 이단교회라고 ‘영입불가’방침을 내린 상태다. 그러나 교회측은 교단영입과정에서 영입을 반대하려는 두 세력의 거짓모함과 여론몰이로 무산된 게 아니냐며 의구심까지 나타내고 있다. 그 배후세력의 비겁한 행위들을 묵과할 수 없다고 성토하기도 한다.
엄연히 드러난 실정법마저도 따를 수 없다는 뻔뻔한 사람들이 무슨 일인들 정의롭게 할 수 있겠냐는 듯이 말이다.
                                                                    전용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