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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종교는 세금의 성역인가

ⓒ시사저널 안희태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앙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성직자는 주당 54시간 노동에 월 평균 1백51만원을 받고 있다.하지만 소득세를 내는 성직자는 거의 없으며 정부가 납세를 종용하지도 않는다.위는 대형 교회 예배 모습

직장인 김문수씨(33)는 이른바 ‘유리지갑’이다. 매달 원천징수되어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근로소득세 내역을 볼 때마다 아깝지만 공동체를 위한 의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인다.그런 김씨이지만 최근 아내가 다니고 있는 서울 소재 모 대형 교회 목사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김씨는 “그 목사는 연봉이 수억원이 넘는다.서민들도 소득세를 내는데 왜 목사는 세금을 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종교는 세금의 성역인가? 오랫동안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어왔던 종교인 납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국세 징수 강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탈세 방지’가 국정의 최우선 목표가 된 가운데, 일부 시민단체들이 종교인·종교단체 세금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창립된 시민단체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종비련)’가 선봉에 섰다.이 단체는 지난 2월2일부터 온라인으로 ‘종교인 탈세 방지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2월17일에는 서울 영등포 전철역에서 회원 아홉 명이 모여 거리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이들은 입간판 선전물을 세우고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 주며 서명을 독려했었다.이날까지 온·오프라인을 합쳐 1천8백명이 서명에 참여했다.입간판 선전물에는 ‘다른 나라 종교인은 세금을 내는데 우리 종교인은 세금도 안 낸다는 것을 아십니까?’ ‘월급쟁이들만 봉이냐? 종교인도 세금 내라!’ ‘세금 안 내는 종교집단은 서민에게 부담 주는 이기주의 집단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종비련 오진환 사무처장(50)은 “처음에는 법에 종교인 면세 조항이 있는 줄 알고 헌법 소원을 제기하려 했다.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것이 없더라. 그냥 탈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천주교 성직자는 원천징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마태복음 22장에 등장하는 이 글귀는 성직자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근거로 자주 쓰이지만 한국에서는 소용없는 말이다.목사·승려·신부 같은 성직자들은 각각 교회·사찰·성당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다.이 소득에 대해 천주교 성직자와 극소수 기독교 목사들은 소득세를 납부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소득 신고도 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고 있다.정부에서도 세무조사를 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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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1994년부터 소득 신고를 하고 소득세를 자진 납부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웬만큼 자리 잡은 교회 목사는 대개 월 1백50만원가량의 ‘사례비’(생활비)를 받는다.2년 전 기독교방송(CBS) 조사에 따르면, 전체 목사의 80%가 연봉 1천만원대라고 답했다. 교회 규모가 커지면 사례비도 따라 증가한다.대형 교회의 사례비 액수는 외부에 좀처럼 공개가 되지 않으나 목회자 1천명 교회의 경우 3천만~4천만 원 정도이며 연 소득이 10억 원이 넘는 목회자도 있다.

하지만 이 중 소득세를 납부하는 목사는 손에 꼽힌다.세금을 자진 납부했다는 사실만으로 뉴스거리가 된다.송파구 풍납동 광성교회 행정담당 박재신 목사는 “목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목사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소득세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교회 헌금으로 사례비를 받는 목회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이중 과세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납세 의무에서 벗어나기는 불교도 마찬가지다.조계종 총무원 사무처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스님에게는 소유라는 것이 없다.따라서 소득세를 낼 것도 없다.다만 총무원 직원들의 경우는 원천징수해 세금을 내고 있다”라고 밝혔다.국장이 월 1백20만원, 총무원장이 3백만원가량이며 총무원장도 세금을 낸다. 조계종 사찰의 경우 사찰이 종단 재산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스님에게는 소유가 없다’는 말은 원론일 뿐이다.실제로 스님도 사적인 소비 행위를 하며 당연히 생활비도 받고 있다.

“성직자도 근로소득세 내라” 86%

승려의 생활비는 기독교 목사만큼 많지는 않다는데 액수를 파악하기는 더 힘들다.
천주교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1994년 7월 천주교 주교회의가 세금을 내기로 결의한 이후 현재 각 교구에서 신부·수녀 등 천주교 성직자들의 세금을 매달 원천징수하고 있다.서울대교구측은 고용보험을 제외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비도 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서울대교구에서 생활비를 가장 많이 받는 성직자는 월 85만원이다.이 경우 소득세는 월 3천원에 해당한다.나머지 대다수 천주교 성직자들은 면세점(소득이 낮아 세금이 면제되는 기준점. 5백만~6백만원)보다 낮은 소득을 신고하고 있다.서울대교구 경리 담당자는 “추기경이나 일반 신부나 활동비 액수는 똑같다.주임신부를 맡거나 상여금이 있을 때 조금 차이가 날 뿐이다.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은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돈을 쓸 일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비천주교 신자 처지에서, 아니 납세자 처지에서 굳이 따지면 천주교 성직자들은 성당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많이 받는데 이는 소득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할 수 있다.하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성직자 납세 원칙을 천명하고 장부를 만들어 소득을 보고하고 있다는 점은 기독교·불교에서와 현격히 다른 점이다.

여론은 대체로 종교인 소득세 부과를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누리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2월17일 현재 1만8천명이 참여한 가운데 86%가 종교인 근로소득세 부과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종교인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풍경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쪽 부속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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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계종측은 스님은 원론적으로 소유물이 없기 때문에 소득세를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세뿐만이 아니다.시민단체 종비련은 성직자 개인뿐만 아니라 종교 단체 법인의 취득세·양도세·재산세를 비과세하는 정책도 문제 삼고 있다.현재 종교단체 법인은 비영리·공익 법인으로 분류되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종비련 이드 공동대표는 “교회 예산 가운데 공익에 쓰이는 돈은 3%도 되지 않는데, 과연 공익 법인이라고 할 수 있나? 종교단체에 과세하면 투명성도 높아지고 국가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교 단체에 들어간 자금은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종종 종교단체 기부가 탈세·비자금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예를 들어 검찰이 2005년 11월 발표한 두산그룹 비자금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용욱 회장은 무려 15억을 한 불교 사찰에 시주했다고 진술했다.이 경우 자금 추적 수사는 벽에 부딪힌다.종교 단체가 장부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 15억원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가 없다.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는 여론과 종교집단의 눈치를 보고 있다.근로소득세 징수를 담당하는 국세청 원천징수과 안홍기 사무관은 “종교 단체는 일반 직장하고 달라서 근로 소득이다 아니다 말하기가 힘들다. 재정경제부에서 유권 해석을 내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재정경제부 소득세제과 담당자는 “신도들이 기부한 헌금을 생활비로 쓰는 경우 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지 아닌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무어라 결론 내리기 어렵다”라고 말했다.아리송한 대답이다.외국의 경우 성직자가 모두 납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국내 성직자 가운데에도 자진 납세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 국세청 담당자는 “아직 사례를 보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세금 부과=종교 탄압?

직장사역연구소 방선기 목사는 정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세금을 내려고 마음먹은 사람도 세금을 낼 수가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소득세를 내라는 말도 없고, 내지 않는다고 딱히 제재를 가하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세금을 내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반 목사들로서는 납세를 해야 할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방선기 목사는 “어차피 대부분의 목사들은 면세점 이하의 영세 교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소득세를 부과해도 큰 손해가 없다”라고 말했다.그러나 대형 교회의 경우는 저항이 있을 수 있다.방목사는 이 문제를 건드리면 사학법 파동보다 더 큰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종교 탄압’이라는 반발이 거세리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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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교인들의 납세를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하는 모습.

천주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인이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지만, 유독 목사 사례비가 입방아에 오르는 이유는 그만큼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내부에서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교회 재정 투명화와 정직한 세금 납부를 주창하는 단체다.이 단체 이진호 처장은 “소득 신고를 하는 것이 목회 활동에 해가 아니라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고 은행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이 처장은 “목사님들이 탈세를 하려고 소득세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회계를 잘 몰라서 못 내고 있다.사실 영세 교회에서 장부를 만들고 기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는 교회 회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현재 세금을 스스로 납부하는 목사로는, 서울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서울 영동교회 정현구 목사·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왼쪽 상자 기사) 등이 있다.

신호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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