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故 구본주 대책위원회 1인시위' 현장에 가다
정연우 기자
▲18일 부산 동구 삼성화재 빌딩 앞에서 정윤선씨가 1위 시위를 하고 있다 ©정연우
18일 오후 3시. 부산시 동구 초량1동 삼성화재빌딩 앞.
지금 이곳에는 한 사람의 예술가가 걸개를 걸고 1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신을 '입체설치 퍼포먼스 작가'라고 소개한 정윤선씨(29)는 어느 단체의 소속도 아닌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삼성화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은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이 예술가들을 판단하는 가치관이 황당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윤선씨가 벌이고 있는 1인 시위는 바로 2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조각가 구본주씨의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소송의 1심판결에 가해자측 보험회사인 삼성화재측이 불복, 항소함에 따라 벌어진 예술가들의 반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삼성화재빌딩 보안직원들과 마찰이 생긴다.
1인 시위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옆에서 1인 시위를 지원하는 신용철(작가)씨가 카메라로 삼성화재빌딩 건물을 찍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옆에서 1인 시위를 유심히 지켜보던 삼성화재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가 봐도 참 아쉬운 상황"이라며 답했다.
현재 부산에서 1인 시위에 뜻을 함께한 예술가는 13명이 넘으며, 영상작가 신용철씨를 시작으로 부산일보에 만평을 그리고 있는 손문상 화백, 재미난 사람들의 기획가 김건우씨 등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퍼포먼스 작가인 정윤선씨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정연우
예술가가 죽으면 도시일용직 근로자가 된다?
조각가 고 구본주씨(37). 그는 지난 2003년 9월 29일 새벽. 포천에서 차도와 인도가 불명확한 길에서 가장자리를 걷다가 가해자가 몰던 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망자인 구본주씨는 전도유망한 예술가였다. 민중과 사회를 조각하는 존경받던 젊은 작가였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20여곳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리얼리즘 조각가였다.
사고 이후 1년 반이 지난 2005년 2월 4일. 서울지법은 1심 판결을 선고했고 재판부는 원고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결과는 구본주씨의 과실범위는 25% 미만이며 정년은 65세로, 예술전문인 5년~9년 경력에 해당하는 월 3백만원 정도의 소득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화재측이 이에 불복, 항소를 제기함으로써 시작됐다.
삼성화재측은 구본주씨의 과실은 70%이며 정년은 60세, 예술경력 불인정, 수입 불인정, 이에 도시일용노임에 준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화재측 변호인에 따르면 “조각가 정년을 65세로 인정한 선례가 없다”며 “비슷한 사례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60세, 도예가도 60세로 한 판례가 있다”고 한다.
즉 삼성화재측은 구본주씨가 신축건물의 대형상징물인 미술장식품들을 주로 제작해왔기 때문에 육체적 노동을 주된 업무로 한 노동자임으로, 이 직종에 적용하는 정년을 60세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작가의 경력은 신빙성 있는 소득자료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구본주씨가 대학시간강사를 시작한 이후의 경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퍼포먼스 작가 정윤선씨가 굳은 표정으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연우
삼성화재 항소제기-예술인 대책위원회 구성
예술인 전국 삼성화재빌딩 앞에서 1인시위 펼쳐
결국 삼성화재측의 이같은 결정은 예술인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되었으며, ‘조각가 고 구본주 소송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가 결성, 현재 전국의 삼성화재빌딩을 중심으로 1인 시위가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조각가 故 구본주 소송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가 주관하는 1인 시위는 지난 1일부터 서울을 비롯 인천, 목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함께 진행되고 있다.
오늘 1인시위의 마친 정윤선씨는 잠시 숨을 고른 후 기자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삼성이 구미에 맞게 예술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이건 병폐입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에요. 그런데 고인을 이렇게 평가한다니 한사람으로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정연우입니다.
2005/08/19 [01:22]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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