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을 둘러싼 비리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엊그제 경찰에 적발된 사례는 국내 건설업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현대건설 간부들이 29명이나 무더기로 범법행위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수법은 전형적인 것이었다. 현대건설 간부들이 수원시 매탄동에서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벌이면서 십수억원대의 뇌물을 받고 이중 일부를 재건축 조합장에게 넘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들이 주고 받은 돈은 공사비를 부풀려 조성한 비자금에서 나왔고, 그 부담은 입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실제로 공사비는 당초 계약액보다 무려 7백40억원이 늘어났다고 한다.

현대건설은 30명에 가까운 간부사원들이 ‘재건축 범죄조직’을 만들어 사회악을 저지른 데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자체 감시·감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만일 또다시 동일 범죄가 발생한다면 그동안 현대건설이 쌓아올린 명성은 일순간 허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재건축비리가 사흘이 멀다하고 끊이지 않는 것은 건설업체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같은 비리를 사전에 인지하고 원천봉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재건축은 조합결성에서부터 업체선정 및 인·허가 등에 이르기까지 사업의 단계가 복잡해 비리가 형성될 토양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또 공사를 따내기만 하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사들의 과당경쟁도 심각하며, 재건축 조합 간부들도 막강한 권한에 비해서는 전문성이 너무나 결여돼 있다는 점도 비리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조합장이 공사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현행 제도는 서둘러 개선돼야 마땅하다. 이와 함께 객관성과 전문성 및 공신력을 두루 갖춘 외부 기관에 공사의 모든 과정에 대한 감독과 감사를 맡게 함으로써 재건축 비리의 토양을 도려내야 한다. 72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