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지방자치주인 옵발덴은 1월부터 소득세율을 12%에서 6%로 인하했다. 올해 소득세율을 낮출 예정인 스위스 지자체는 전체 26개 중 18개에 달한다.

세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연방국가 특성상 지역주민의 투표일 뿐 범정부 차원의 감세조치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스위스는 소득세 인하를 통해 지역주민의 소비와투자를 늘리고 자동차 경주왕 미하엘 슈마허, 미국 가수 티나 터너 등 세계적인 갑부를 유치하는 성과를 얻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감세정책이 미국 경제를더욱 활성화 할 것"이라며 "감세정책을 영구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의회에공식 요청했다.

미국 공화당 행정부의 감세정책은 올해 11월 미국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민들의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미국은 2004년부터 개인소득세율 인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4년 이전 27~38.6%인 미국의 개인 소득세율은 현재 25~35%로 하향 조정된 상태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중산층 가정의 자녀 세금 혜택도 추가로 부여했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처럼 중장기적 감세정책을 통해 내수경기 회복과 외국투자 유치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만 '나홀로' 증세 정책에 발목이 잡혀 성장동력을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설익은 조세정책이 남발되고 이 가운데 일부는 당정 협의 과정에서번복되면서 개인과 기업, 외국인 등 경제 주체들의 소비ㆍ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확보에 지나치게 매달려 스스로 국가경쟁력을추락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수 국민대 교수는 "최근 추진되고 있는 조세정책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포괄적인 접근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조세정책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거시경제는 물론 금융ㆍ소비시장에도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허찬국 한경연 연구위원은 "불확실한 조세정책이 남발되면 거시경제는 물론 금융시장과 대외신인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도 개인소득세율을 단계적으로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32만싱가포르달러를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적용되는 최고 한계세율을 현행 22%에서 올해 21%, 내년에는 20%로 낮추기로 했다. 호주 연립정부도 2004, 2005회계연도에 큰 폭의 개인소득세 감면을 시행했다.

소득 단계별로 누진제가 적용되는 호주의 개인소득세율은 최고 세율이 47%에 달해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부담을 경감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서유럽 감세정책 동유럽으로 확산＝세금 인하 경쟁은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경쟁 추세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던 프랑스는 고용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법인세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프랑스는 95년 이후 법인세(세율 33.3%)에 추가로 10%의 부가세를 징수했지만 2002년 부가세율을 6%로 인하한 데 이어 2003년부터 아예 폐지했다.

독일도 지난해 초 슈뢰더 전 총리가 법인세율을 26.5%에서 25%로 낮춘 데 이어 연립정부를 주도하는 신임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최근 감세를 핵심 정책으로 채택하고 나섰다.

아일랜드는 외자 유치를 위해 법인세율을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대폭 떨어뜨렸다.

99년 24%이던 사업소득에 대한 표준법인세율을 2003년 12.5%로 크게 인하했다.

이에 앞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97년 집권하자마자 법인세율을 33%에서 31%로 인하했고 단계적인 세율인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유럽의 이 같은 감세 정책은 최근 들어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전파되며 유럽대륙 전역에서 국가간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 재원 대책없이 양극화 해소에 집착＝재정경제부 등 조세당국이 세금 확대 정책에 집착하는 것은 사회 양극화 해소가 참여정부 집권 후반기 최대의 정책목표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신년연설에서 "미래 대책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며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꿔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대통령이 "당장 증세는 없다"고 천명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증세 과정을 밟을 수밖에없다는 사실을 암시한 대목이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종료되는 2008년에는 △사회복지(64조1000억원) △균형발전(7조1000억원) △농림ㆍ해양(15조8000억원) 등 분야별 예산이 편성됐다.

그러나 지난해 편성된 양극화 해소 재원만 갖고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계층간ㆍ지역간ㆍ산업간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 측 분석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등에 저출산ㆍ사회안전망 대책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오라고 다그친 점도 증세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복지재원 10조5000억원 추가로 마련해야＝이창용 서울대 교수는 "재정 지출규모와 최적의 조세정책은 정치철학의 문제"라며 "다만 세금논쟁은 계층간 국론분열을 조장할 수 있고 경제주체의 예측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가 2010년까지 저출산ㆍ사회안전망 대책에 투입할 재원 규모는 30조5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10조5000억원은 세입 확충과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재경부는 저출산ㆍ사회안전망 대책의 재원 마련을 위해 소수자공제 추가공제를 폐지(연간 5000억원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5월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열린우리당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통해 마련할 예정이던 2조원 규모의 재원 확충도 불투명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비과세ㆍ감면 축소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학원비와 아파트 관리비 등의 부가세 부과 등 사실상의 '증세'를 추진하는 방안에 상당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오화석 기자 / 채수환 기자 / 황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