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눈덩이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한상률 국세청장이 차장 시절 당시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그림 로비를 했다는 의혹만으론 부족했는지, 이번엔 한 청장이 지난달 25일 경주와 대구 나들이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에 가까운 사람들과 골프를 치고 저녁을 들며 유임(留任) 로비를 폈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서민(庶民)들의 혹독한 겨울과는 달리 온돌방 아랫목처럼 뜨뜻한 저들의 겨울 이야기가 국민들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서민들 눈의 핏발을 돋게 만들고 있다.
한 청장이 경주에서 같은 조(組)로 골프를 친 사람은 D자동차 부품업체 대표, 한나라당 영덕·울진 강석호 국회의원,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이다. D사는 직원 140명의 자동차 카펫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라 그 대표가 대한민국 4대 권력 기관장 중의 하나인 국세청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처지는 못 된다. 그러나 그 지역에선 D사 대표가 대통령 쪽 사람과 각별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걸 보면 골프 멤버로 고를 만한 사람을 골랐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 의원은 이상득 의원의 핵심 직계라고 한다. 한 청장의 대구 저녁식사 자리엔 대통령의 친인척과 친지, 재대구(在大邱) 포항향우회장, 이상득 의원 측근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만하면 요즘으로선 '모임 중의 모임'이라 할 만하다.
한 청장이 26일 경주세무서 신청사 준공식에 가겠다며 굳이 1박2일 일정을 만들어 그 행사에 참석하려 할 만도 했다는 느낌이다. 한 청장도 공무원으로서 뼈가 굵은 사람인지라 그 자리 참석 멤버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얼굴을 내미는 게 얼마 안 있으면 있게 될 인사에서 자기에게 득이 될 것이란 걸 공무원의 동물적 직감으로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지방국세청장이 포항과 경북 유력인사들을 만나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보고하자 한 청장이 "나도 함께 하겠다"며 선뜻 끼어들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닐 듯하다. 현지에는 골프장에서 '한승진'이란 가명(假名)을 썼다는 한 청장이 저녁 자리에서 대통령 동서에게 충성주(酒)를 올렸다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소문까지 떠돌고 있다 한다. 만들어선 안 될 모임을 만들고, 함께 자리해선 안 될 사람들이 함께 자리를 하면 그런 말이 돌기 마련이다. '당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귀신이 아는데 왜 세상이 모르겠는가'라는 옛말이 그른 게 없다.
국세청장과 차장 사이에 그림을 서로 바치고 받았다는 이야기도 비밀로 덮이기 힘든 사건이다. 그림 뇌물을 받았다는 전 국세청장과 그림을 바쳤다는 현 국세청장, 그리고 그림에 얽힌 사연을 폭로한 화랑 주인의 남편이라는 국세청 국장 모두가 인사의 이해 관계에 따라 '친구와 적' '은인(恩人)과 원수'가 순식간에 바뀌는 사이였다고 한다. 거기다 이번 일을 놓고 인사를 앞두고 TK와 비(非)TK가 실력 대결을 벌인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니 대한민국 정부 인사(人事)가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오게 됐나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