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윤일병 어머니 ‘통곡의 메시지’
하늘이 내린 보물, 눈물 돼 다시 내렸다 

보물도 그런 보물이 없었다. 마흔이 다 돼 얻은 늦둥이 외아들. 어린 것을 둘러업고 마냥 기뻤다. 20년 후 “이제 다 컸다” 했지만, 어미에겐 언제나 ‘애기’일 수밖에 없어 눈에 저벅저벅 밟히던 아들. 다 큰 남자면 으레 다녀온다는 그곳에 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난해 12월 9일, 안모 씨는 논산훈련소 앞에서 아들을 배웅했다. 아들은 윤모 씨. 21살, 막 대학에서 간호학 전공 수업을 2학년까지 마친 청년이다. 한 우산 아래 모자만의 애틋한 이야기를 끝내고, 안 씨는 돌아오는 차에 올라탔다.
그날 밤, 윤 씨는 신병교육대에서 ‘나의 성장기’를 썼다. 막둥이인데도, 어리광을 피우기보다는 사려 깊은 면이 많았다고 전해지는 그는 그날도 가족 걱정이 앞섰다. 윤 씨는 “입대하는 못난 아들을 위해 논산까지 왔다가 비가 오는 고속도로를 혼자 가실 어머니가 걱정된다”는 글을 남겼다. 입대 첫날이기에 다소 부푼 마음도 있었다. “군대를 더 많이 성장할 곳으로 여기고 멋진 사나이가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 무렵, 어머니 안 씨는 하필이면 지독히도 추운 계절에 훈련소로 간 게 못내 아릿아릿했을 게다. 훈련은 견딜 만할지, 사람들은 어떨지 하는 걱정을 하다가 잘해낼 거라는 아들에 대한 믿음이 시름을 한 줌 덜어주곤 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난 2월 중순께. 논산훈련소를 나오는 아들을 본 안 씨는 안도했다. ‘이병’이 된 아들내미는 “훈련소 생활을 잘 마쳤다”면서 면회를 갔던 안 씨와 큰누나를 안심시켰다. 그 후 자대 배치를 받았고, 종종 전화로 안부를 전해왔다.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난 잘 지낸다”고 했다.

“엄마 오지 마, 4월은 안 돼…”
그 ‘한결같았던’ 목소리가 애간장을 다 녹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지 2개월쯤 됐을 4월 6일, 안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윤 일병이 의식을 잃어 병원에 이송됐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안 씨는 ‘퇴소식 이후 한 번도 면회를 가지 못해서 하나님이 이렇게라도 아들 얼굴을 보여주시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안 좋은 생각을 멀리했다. 병원으로 달려가며 스스로를 누차 달랬다. 아니다, 아니다. 설마, ‘그런 생각’은 숫제 안 했다.

하늘은 무심했다. 누워 있는 아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안 씨는 “응급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하늘이 하얘지고 세상이 정지된 것 같았다”고 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당일 날부터 숨을 다할 때까지 매일같이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덧없음에 세상 모든 공기가 몸을 통하는 것 같았다.

안 씨는 “통화할 때 한마디라도 귀띔을 했으면…. 면회를 간다고 할 때, 지금은 면회가 안 된다며 “엄마, 오지 마, 안 돼. 4월은 안 돼. ‘마일리지’가 없어”라고 했을 때, 미친 척하고 한 번만이라도 부대를 찾아갔더라면…”이라며 통곡했다. 윤 일병이 말한 ‘마일리지’는 실제론 없는 개념이다. 폭행 주도자인 이 병장이 가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병은 마일리지가 없어 부모를 초대할 수 없다”고 지어낸 말이었다.

면회가 안 된다는데, 찾아가면 혹시 불이익이 될까 봐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게 크나큰 과오로 남아 가슴을 바짝 죄어왔다. 안 씨는 “미안하고 죄스러워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가슴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옥 같은 날, 가족 생각으로 견뎠다
면회를 오지 말라고 했던 아들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윤 일병은 지난 12월 입대한 이후, 올 2월 18일에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의무병으로 배치 받았다. 가해자 및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그는 2주간의 대기 기간이 끝난 3월 3일부터 사망한 4월 6일까지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 모독과 구타, 가혹 행위에 시달렸다. 35일간이었다.

대답이 느리다는 이유에서 맞은 걸 시작으로, 맞는 모습이 우습다며 맞았고, 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를라치면 꾀병을 부린다며 맞았다. 먹을 수 없는 걸 먹어야 했고, 먹고 싶은 건 못 먹었다. 정말로 기력이 다했을 땐, 주사(비타민 수액)를 맞고 또 구타당했다. 그렇게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맞았다.

폭행이 한창이던 3월 28일, 윤 일병과 면담을 했던 유모 하사는 일지에 “많이 피곤해 보이고 지친 표정이었지만 (윤 일병이) 나름 할 만하고 좀 더 업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고 기록했다. 윤 일병이 보냈을 ‘무언의 호소’를 듣지 못한 유 하사가 야속하기보다, 아들 스스로 얼마나 이를 꽉 깨물고 버텼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미어졌다.

실제로 윤 일병은 앞서 신병교육대에서 이런 글 또한 남겼다. “군생활 중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먼저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고, 친구들을 떠올리며 두 번 참고, 마지막으로 전우들과 동기들을 떠올리며 세 번째로 참겠다”는 내용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가족들을 떠올리며 꾹 참았을 그. 죄스러워서 차마 되새기기조차 힘든 모습이다.

윤 일병은 삼남매 중 막내다.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칫 응석받이로 자랄 법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충당했고, 방학이면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개학 전날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비와 생활비에 더해 부모님에게 두둑한 용돈까지 챙겼다. 안 씨는 “늘 부족했던 엄마, 아빠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효자”라면서 “아무리 돌이켜봐도 꾸지람 한 번 들은 적 없는 다정하고 착한 아들”이라고 회상했다.

오순도순 살 날만 기다렸는데
지난 8월 8일, 국방부 앞에서 진행된 ‘윤 일병 추모식’에서 만난 안 씨의 어깨에는 짐작도 못할 무게의 슬픔이 올라 있었다. 이날 안 씨는 추모객 앞에서 아들을 기리는 편지를 읽었다. 안 씨는 “네가 군대에서 돌아오면 이제 우리 가족 한데 모여 오순도순 살 날만을 기다렸는데, 너는 마지막으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구나”라면서 “네가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정말 평안하게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이제는 정말 편히 쉬렴”이라고 말했다. 안 씨는 “천국에서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누차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던 안 씨는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따금씩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지만 다 닦지 못했다. 안 씨가 서 있던 길 뒤로는 은행나무가 수채 심어져 있었다. 나무에 달린 매미들은 그렇게 울어댔다. 여느 때라면 시원하게 들렸을 그 울음소리가, 마치 진혼곡처럼 서러웠다.

part 2
군 사망사건, 유명인 가족도 가담
또 다른 윤 일병들

군 폭행 ‘가해자’에는 연예인·정치인의 가족도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Case 1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연신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남 지사의 아들이 후임병 가혹 행위 가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관계자에 따르면 남 지사의 첫째 아들인 6사단 소속 ‘남모 상병’은 지난 4월 초부터 한 후임병의 뺨과 배를 수차례 때리고, 손등으로 또 다른 후임병의 지퍼 부위를 치는 등 성추행을 해왔다. 지난 8월 19일 ‘군인권센터’가 언론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수사 기록에 따르면, 남 상병은 지난 7월과 8월 사이 생활관에서 자신의 성기를 피해자(일병)의 엉덩이에 비비고 (피해자의) 성기를 툭툭 치는 등 강제 추행을 했다”면서 “또한 4월 초부터 8월 초 사이에는 경계근무지에서 업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얼굴 등을 주먹 등으로 7차례에 걸쳐 총 50회 폭행했다”고 밝혔다.

남 지사는 이러한 아들의 폭행 혐의를 지난 8월 13일, 군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알게 됐다. 특히 여론의 뭇매를 맞은 건, 이런 와중 남 지사가 군에 보낸 두 아들을 걱정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한 언론에 게재했기 때문이다. 남 지사는 군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이틀 뒤인 15일, 한 중앙 일간지에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문에는 “선임 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남 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했다. 남 지사는 지난 8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잘못”이라면서 “아들은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군은 결국 지난 8월 19일, 남 상병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육군 관계자는 “남 상병 대해 19일, 6사단 헌병대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전하며 “후임 폭행과 추행 혐의”라고 덧붙였다.

한편 남 지사의 장남 남 상병은 군 당국의 조사에서 “폭행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성추행은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부인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Case 2 유명 여배우 A 씨의 친동생
폭언, 폭행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13년 7월 1일 자살한 공군 김모 일병. 그는 당시 22살의 나이로 공군 ‘부관병’으로 배속된 지 1개월 만에 자해, 사망했다. 배속 직후부터 바로 위 상관인 A 중위로부터 지속적인 인격 모독 및 가혹 행위를 당해서다. 김 일병과 같은 학교 선배인 J 씨에 따르면 A 중위는 김 일병에게 방독면을 포함, 완전군장을 시킨 채로 연병장을 수없이 돌라고 지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의 과실을 모두 김 일병에게 돌렸고 정신적으로도 끝없이 압박했다. 실제로 김 일병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급격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공황상태’임을 의무대대 중사 등과의 면담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김 일병의 자살사건은 선배 J 씨가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J 씨는 대자보를 통해 “학교에 5년이나 있으면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에서도 ○○이는 유독 어른스러웠다”면서 “떠나가기 2주 전쯤 “형, 군대 와요. 좋은 곳이에요. 컴퓨터도 쓸 수 있어요”라며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자리를 비운 터라 답변하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이 쓰리다”고 밝혔다.

대자보를 붙인 뒤 이 사건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특히 사건에 가담한 A 중위가 유명 여자 연예인의 친남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물살을 탔다. 여기에 “해당 연예인의 아버지가 공군 중령이라 (가해자)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간 쉬쉬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실제로 군부는 1년 가까이 이 사건에 대한 심사를 미루다가, 결국 가해자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A 중위는 다만, 다른 보직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한편 김 일병의 사망에 대해서 ‘일반사망’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공군은 지난 8월 14일 중앙전공사망심사위원회 재심의를 통해 ‘순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한 해 평균 195.6명, 군에서 목숨 잃어
가슴 한가득 영정 사진을 든 한 유가족이 말했다. “우리 아들 참 잘생겼죠?” 애써 씩씩한 척 한마디 건넨 이는 공모 씨. 3년 전 군에서 목숨을 잃은 ‘노모  훈련병’의 어머니다. 지난 8일, 국방부 앞에서 마주한 공 씨는 “우리 아들, 제때 치료만 받았어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2011년 4월 23일. 노 훈련병은 야간 행군 중 낙오했다.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였다. 소대장은 온수 샤워를 지시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연대 의무실에 진료를 요청했고, 군의관 퇴근으로 의무병으로부터 약을 받아왔다. 처방받은 약은 타이레놀 2알.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낫질 않자 그는 연대 의무실에 다시 진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그런 채로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노 씨는 더욱 악화된 고열로 이틀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검 결과 ‘뇌수막염’을 앓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 씨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동네병원에서 수의사를 만나고 죽는데, 의식이 다할 때까지도 그 가녀린 몸으로 혼자 버텼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통해 “(네가 가고 나서도) 세상엔 변함이 없더라. 여전히 꽃이 피고, 네온사인도 반짝인다. 사람들은 노래를 하고,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더라. 그리고 또 죽더라”라면서 오열했다.

노 훈련병이 몸담았던 훈련소에선 앞서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다. 같은 부대 소속이었던 정모 훈련병은 지난 2011년 2월 “아파도 병원에 보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로움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훈련병은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으니 좀 더 좋은 약을 주시거나 민간병원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군의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런데 군의관은 ‘꾀병’으로 몰아갔다. 정 훈련병은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들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귀가 먹먹했는데 아직 안 나았어요. 진짜 불편해서 의무실, 병원 많이 갔는데 이젠 아예 꾀병이라고 합니다. 혹시 식물인간이나 장애인 되면 안락사 해주세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원래 없는 셈 해주세요. 정말 미안해 엄마, 사랑해”라는 글귀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이제야 수면으로 떠올랐지만 ‘또 다른 윤 일병’은 항상 있어왔다. 국방부가 공개한 ‘군 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1년간 군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총 4,108명이다. 한 해 평균 195.6명이 군에서 목숨을 잃는 셈이다.

part 3
어떻게 대처하나?
폭행 피해 아들 위해 반년간 발품… ‘전 일병’ 부모 인터뷰

7개월간 생업을 놨다. 전 일병의 보호자
전·김 씨 부부는 “사고가 터졌는데, 어디 가서
누굴 만나야 할지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면 사후 대책까지도 생각해놔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 일이 될 줄 상상도 못 했거든요.”

‘전모 일병(21)’은 지난해 11월 22일 71사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2주 적응 기간 뒤부터 시작된 구타는 약 3개월간 이어졌다. 그는 현재 7개월째 입원 중이며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음력 1월 1일(양력 1월 30일)에 면회 가려고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았어요. 며칠 지나 또 전화를 했더니 목소리가 영 안 나오더라고요.” 그간 걱정이 돼 늘 물었다. “혹시 때리는 사람 있는 것 아니냐”고. 그때마다 아들은 “남자들 세계엔 그런 게 있어”라며 일축해왔다. “(목소리가 안 나오던) 그날은 아들이 힘겹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나, 진작 휴가 갈 걸 그랬나 봐. 엄마, 면회 와…”” 순간 느낌이 싸늘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밤 악몽을 꿨어요. 아이가 모래 속에 푹 파묻혀서 입만 오물오물하고 말을 못 하는 꿈이었어요.” 창백한 모습의 아들은 꿈속에 세 번이나 나타났다.

이튿날,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에 부리나케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두 번 통화에 실패하고, 세 번째에야 대대장과 통화할 수 있었다. 아들의 안부를 묻자 대대장은 “아무 일 없다”고 답했다. “아무 일 없을 리가요. 아이 목소리가 이상하고, 이상한 꿈까지 꿨는데….” 두세 번 캐물었더니, 그제야 대대장이 사실을 실토했다. “전 일병이 사실 두 선임에게 구타를 당한 상태”라고.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대대장은 “전 일병이 (부모님께)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부대로 향했다. 훈련소 수료식 이후 2달 반 만에 보는 아들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다리는 절었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바지를 내려 봤더니 허벅지와 무릎 부분이 말도 못하게 부어 있더라고요. 순환이 안 되다 보니 얼굴에까지 부기가 올랐던 겁니다.” 외부 병원 치료를 받게 할 심산이었는데, 원사가 “요즘은 부대 병원도 일반 병원 이상으로 시설과 의료진이 좋다”고 설득했다.

부부는 좀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게 한이다. “초기에 입원시켜서 치료만 잘 해줬더라면 지금쯤 군 복무를 잘하고 있을 겁니다. 구타당한 걸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두 달이나 지나서야 MRI 촬영(국군수도병원)을 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초기 치료만 했었어도….”

아버지 전모 씨는 “처음 네갈래근이 손상됐을 때 제때 치료하지 않아 석회질이 생겨 딱딱해졌는데, 그 상태에서도 가해자들은 억지로 다리를 펴게 하는 등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를 자행했다”면서 “(네갈래근 손상으로) 100% 완치는 장담할 수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강해야 합니다”
사고를 접한 부부는 생업을 포기하고 이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부부는 “그래도, ‘극단’까진 가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 김 씨는 “(군이) 폐쇄된 곳이니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사건을 접하고 나서 무료 법률사무소부터 헌법재판소, 민간단체, 심지어 병원장까지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문을 두드렸어요. 그러니까 길이 보이데요. 아이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못 해요.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당사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밖에서 도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들이 입을 떼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나서, 모든 정황을 상세히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술서를 최대한 꼼꼼하게 작성해야 해요.” 이를테면, 전 일병의 경우 ‘관행적 폭행’의 피해자다.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고 와서 동기와 둘이 밥을 먹는데 뒷줄에 앉아 있던 8중대 대원들이 그 둘을 가리키며 “저 둘 중 하나, 우리 부대 오기만 해봐. 죽었어”라고 얘기했답니다. 폭행을 미리 의도했다는 거죠. 이유도 없이요. 이런 얘기까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김 씨는 구타 발생 후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구타를 당하면, 당사자에게는 우울증도 동반된다”면서 “몸이 아픈 것도 그렇지만, 심적 치료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돼요. 다 같이 나서서 보호하고, 감싸줘야 해요. 군대 얘기만 나오면, 트라우마 때문에 한동안 괴로울 겁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유해줘야 합니다.” 김 씨는 이어 “우울증은 부모에게도 온다”면서 “본인에게 소홀하면 아이를 도울 수 없다. 약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현실적인 조언인데요, 아이 군대 보내기 전에 실비보험 꼭 드세요. 만일을 대비해서요. 아이가 다쳤는데, 자금이 발목을 잡으면 안 되거든요….”
그는 참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의견도 보탰다. “자대 배치 받고 일주일 지나면 자주 면회를 가고 매일 전화하세요. 통화할 때 암호를 정해서 맞았다는 사실을 알리게 하고요. 아, 그리고 입대하면 선임이 ‘자기소개’ 해보라고 하는데, 조금 부풀려서 얘기하라고 전하고 싶어요. 만만하게 못 보게요. 씁쓸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국방부의 ‘병영문화 혁신 방안’은?
군 내 인권 문제가 대두되자, 지난 8월 13일 국방부에서는 ‘병영문화 혁신방안’을 내놨다. 우선 ‘군복무기본법’을 만들기로 했다. 기본법은 고참이 후임병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구제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또, 장병 인권 보장과 인성 교육 강화를 위해 인권 교관을 기존 250명에서 2,000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처벌 기준 또한 강화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보호관심병사 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응급의료 처리능력을 보강한다는 내용도 언급됐다. 취약지역에 대한 CCTV 설치도 확대할 예정이다. 또, GOP 근무 기간 중에도 면회를 할 수 있도록 면회제도를 신설해, 근무 장병의 부담을 완화해주고 고립감을 해소하는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군파라치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구타 및 가혹 행위 신고자에게 휴가 등 포상을 한다는 제도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신고 체계’가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인 8월 13일에 이상민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군인권센터 등이 주최한 ‘군인권 긴급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군에도 외부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권력이 작동하는 군 조직에서는 신고문화가 활발할 수 없다”면서 “현재 군 내에도 인권감시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사단급 내부공익신고센터는 연간 10건 미만 정도의 미미한 실적이다. 이는 현재 군 내 신고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언급되는 게 ‘군 옴부즈맨’이다. 이는 국회 산하에 민간 전문가(군 옴부즈맨)를 두고 군 내부에 대한 조사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홍 교수는 “(사고 발생 시) 군 내 시스템을 따르면 “군 현실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외부 인권기구를 통한다면 철저한 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 등은 물론이고, 가혹 행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여러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까지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또한 “군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 옴부즈맨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군사법개혁 관련 법률안 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