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근거들 245개.71부터 176
71.북한군들은 광주폭동에 비협조적인 광주시민들에게 화를 내면서 북한군입에서 북한말씨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정체가
노출될까하여 광주시민들을 살해하였다.
72.광주사태라는 용어는 5월 22일 목포의 북한군들이 처름으로 사용했다. 그 말을 서울에서 대자보로 붙이니 언론에서도 사용했고 언론은
5월 23일부터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광주사태.목포사태.
73. 광주사태전에 이미 여러 달 체류하며 무기탈취준비 등 간첩역할을 한 북한특수부대가 있었다.
74. 광주폭동은 북한군개입정도를 넘어 북한군들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 5월 21일까지 5.18시위를 지휘한 지휘부는 나타나지않았다.
박남선,윤상원,김중배는 5월 22일 지휘부에 나타난 사람들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군대장으로 잘못 묘사된 박남선은 골재화물트럭운전사에
불과하니 광주폭동을 지휘하지못한다.윤상원은 5월 22일 결성된 학생대책위원회대변인이었다.김종배는 5월 22일부터 무기회수에 반기를 든 학생이었다
탈북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고 말한다.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는 것을
광주시민들도 인정한다. 지휘부없이 그렇게 일사분란하고 동시다발적이고 뛰어난 군사작전이 가능한가?
75. 전남대생들이 상무대에서 무기를 탈취한 적이 없고 전남대에는 학생혁명군도 없었다. 광주시민인 시민군들은 5월 20일 상무대무기탈취사건을
모르고 있었다. 북한군들이 무기탈취작전을 주도했고 시민군들로 위장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나누어주었으나 총을 받지않는 광주시민들이
아주 많았다.
76.북한군들은 국군들과의 총격전으로 사망한 북한군들을 살아있던 북한군들이 북한군개인마다 몸에 지니고있던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북한군시신들을 폭파하여 폭파흔적을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국군들과의 총격전으로 부상을 입어 행군속도에 지장을 주는 북한군들은
북한군개인마다 몸에 지니고있던 2~3키로그램 폭약과 맞먹는 100그램의 고성능폭탄으로 자폭하였고 자폭흔적을 살아잇는 북한군들이 땅을 파서 흙으로
덮었다. 그래서 북한군시신들을 찾기힘들고 발견하기힘들다.
77.계엄군 5.18상황실장 홍순영의 증언. 홍순영은 북한군의 지휘체계,전술,침투방법,특징을 잘 아는 군인이었으니 시민군들로 위장한 북한군들을 보고
북한군인줄 알아보았다. 홍순영은 폭도들을 보니 북한군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한다. 그 근거로 북한군시신 3구에 신겨진 신발이 통일화신발
낡은 것으로 124군부대가 신고온 신발과 같다는 것,124군부대는 1.21사태를 일으켰던 북한군특수부대이다.지휘체계가 북한군같다는 것,걷는 모습이
북한군걸음걸이같다는 것.북한군시신들위에 하얀 찔레꽃이 놓여있었다는 것,찔레꽃은 남파간첩의 암호이고 북한군들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는 방법이고
북한군이 가장 선호하는 꽃이다. 광주침투북한군총지휘자 이을설이 찔레꽃이 놓인 관들을 붙잡고 우는 장면이 있는 영상들이 있다.홍순영이 북한군같다는
정보를 상부에 보고했으나 상부에서는 일리가 있다는 의견과 과한 주장이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고한다.
78.북한군잠수함이 서해를 거쳐 한강으로 들어와 잠실까지도 들어온 적이 있다.서해를 거쳐 영광해안으로 침투하는건 어렵지않다.
79 광주폭동당시 B2벙커에 근무했던 헌병의 증언. 광주폭동의 상황들이 실시간텔렉스로 계속 들어와 보니 일어나는 상황들이 일반적인 데모가 아니고
특수한 지휘부와 북한조종이 있엇다는 것을 직감했다.누가봐도 그렇게 느낄것이다. 처음에는 고정간첩들이 남한에 이렇게 많나라고 생각했다.
광주시가전 실시간보고를 보고 북한공작반란임을 직감했다.
80북한노인공작대가 20사단 61연대의 연대장을 속이고 부대이동을 막았다.
81.북한은 대한민국건국이전부터 대한민국수립이후에도 대한민국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공작을 해았다. 10.26사태이후 남한혼란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영향을 안미치고 공작을 안할리가 없다.
82.탈북자들의 증언에 광주에 북한군들로 갔다왔다고 말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군들이 무기고들을 털어서 당시 광주시민들인 남한봉기자들에게
총을 주어도 잘 받지않았다고한다.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주어도 잘 안받았는데 그렇게 극렬하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이나?
극렬하게 뛰어나게 전투를 벌인 자들은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이었다.
83.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남조선에 침투하여 단기소부대작전을 하던 사람들은 게릴라전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광주에서 장갑차를 탈취하고
무기고들을 습격한 것은 남조선시민들이 아니라 다 우리가 한 일이다라는 증언들이 있다.
84.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북한에서 파견된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이라고 눈치를 채거나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만 하면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은 그런 자들을 두말없이 즉석에서 시체로 만들어 처리하였다.북한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르지않거나 그들의 요구에
불응해서 도망가면 그 사람들을 역시 절대로 살려두지않았다고한다.
85.자유북한군인연합인 북한특수부대출신 탈북자 임천용과 북한정찰대출신 탈북자 이덕선은 광주사건과 관련된 공화국영웅 62명은 확실하다고 증언했다
86.아주 잔인하게 살해된 민간인사망자들. 머리가 완전히 박살난 시신,두개골을 톱질한 시신,목이 잘린 시신 등. 광주시민들끼리 그럴리가 없고
계엄군들이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을 그렇게 죽이지않았다. 계엄군들에 전라도출신이 40%나 되었고 광주사태 진압책임자는 전라도출신 정웅이었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도 북한특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되어있다.
그렇게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해놓고 계엄군들이 그랬다고 뒤집어씌워 폭동을 크게 일으키게 하기위해 그랬다.
87.폭도들 수백명이 20사단지휘차량과 호위차량을 화염병으로 공격해 14대의 차량을 탈취했다. 총으로 무장한 국군들을 화염병으로 공격해 국군들을
쫓아버리고 차량 14대를 탈취한건 매우 대담했다. 광주교도소를 5번이나 습격한 것도 대담했다. 전남지역 17개 시군의 44곳 무기고들을 4시간만에
털은 것도 아주 대담했다. 화순광업소에서 TNT8톤을 탈취하여 폭탄들로 만들어 전남도청지하실에 설치하고 광주시를 날려버리고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한 것도 아주 대담햇다. 광주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도 대담했다.그런 대담한 행동들을 한건 북한특수부대가 했으니 그런것이다
88.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서도 어떤 이유와 목적을 위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89.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그들이 남한을 적화시키거나 그들이 남한의 권력과 군권을 완전히 잡기까지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철저히 부정한다.남한이 적화되거나 그들이 남한의 권력과 군권을 완전히 잡으면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꺼리낌없이 떠들 것이다.
90.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인정되면 그들의 근간이 훼손되고 그들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다.
그래서 그들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광분하며 부정한다.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는 것을 아는 그런 자들과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자들도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철저히 부정한다.
91.탈북자 김태산은 광주폭동때 침투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쏘아죽이고 계엄군들에게 뒤집어씌웠다고하고 김정일이 내각간부들을 급파하여 작전을
참관시켰다고 증언했다.
92.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이 무장한 버스속에서 생존한 여고생 가방속에서 북한특수군보급품인 지포라이터가 발견되었다.
93.당시 국제일보기자이던 김양우가 쓴 시민군계엄군이란 책의 내용에 북한군의 장례식으로 보이는 이상한 장례식을 목격했다는 구절이 있다.
담양 창평 김대위집앞길에서 시신에 찔레꽃 한 송이를 두고 상주도 없고 구경꾼도 없는 이상한 장례식을 목격했다고한다. 찔레꽃은 남파간첩의 암호이다
94.무장트럭에 탄 폭도들 화이바에 찔레꽃을 꽂은 경우들이 있었다. 찔레꽃은 남파간첩암호이다.
95.탈북자 조귀임은 북한군들은 몇달동안 남한억양을 배우고 연습하고 머리를 길러고 시위대들을 뒤에서 쏴죽이고 북한군시체들은 야산에 암매장했고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쏴죽이고 계엄군들이 죽인 것으로 뒤집어씌우고 폭동을 조장했고 광주시민들은 총을 안받으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한다.
96.광주근교검문소의 김대위는 돈커크라는 기자와 그 일행들에게 북한군들이 야산,들판,논에 있고 대기하여 위험하니 그 기자들에게 들어가지말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15일 일본 Shimbun No1이라는 일본도쿄특파원협회지에 그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북한군들이 광주와 광주근교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광주와 광주근교의 국군일선지휘관들은 알고있었다고한다.
97.북한군들이 잠수함으로 침투한 지역은 영광군 염전면 두우리 백바위해변은 썰물때도 바닷물이 안빠지고 바닷물이 유지되는 특수한 지역이므로
북한잠수함으로 북한군들이 그 해변에 상륙하기 적합한 지역이다.
98. 침투한 북한군들은 AK소통같은 무기들을 안가져오고 전남 17개지역의 44곳 무기고들을 털어 무기들을 조달하여 무장하여 계엄군들과 전투를 벌인건
매우 자신감이 있고 간도 크고 대담했다. 북한군들이 AK소총같은 무기들을 안가져온건 검문을 피하기위해서라고 추측한다.
대학생들,고등학생들,양아치들,구두닦이들이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99.침투한 534군부대특수부대는 북한특수부대들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는 북한군최정예게릴라부대이다.
100.LMG기관총을 쏘는 법과 다루는 법을 현역제대한 군인들도 잘 모른다.
대학생들,고등학생들,양아치들,구두닦이들,깡패들이 LMG기관총을 다루어 사람을 명중시킬 수 있었겠나?
101. 북한군들은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 4대를 탈취하여 몰고다녔고 장갑차를 지그재그식으로 몰아 계엄군 1명을 깔아죽였다. 장갑차를 매우
능숙하게 몬 것이다.장갑차를 몰아본 사람들이나 군사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장갑차를 몰아보지않은 사람은 모든 유형의 장갑차들을 몰지못한다고한다
연고대생으로 칭하는 600명 중 일부가 장갑차를 몰았는데 1980년에 대학생 중에 자동차를 몰고다니는 사람은 매우 희귀했다. 대학생들이 자동차도
몰지못햇는데 장갑차를 몰 수 있었겠나? 대학생들과 광주시민들 중에 자신이 광주폭동때 장갑차를 몰았다고 주장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102. 5.18광주사태에 대해 슨 책들은 대부분 운동권이나 전라도것들이나 종북좌파들이나 종북좌익들이 쓴 책들이다. 그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좁은 시각과 입장에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세력확대를 하기위해 쓴 책들이다. 그러니 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전혀 안다룬
책들이 대부분이고 극소수 다룬 책에서는 다루었다고해도 완전히 왜곡하고 허위날조하여 북한군침투개입을 부정한다.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는데 북한군침투개입을 빼버리고 말하면 말이 안되고 엉터리이다.5.18광주사태의 진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쓴 책들은 아주 부족하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실을 밝히는 책에서는 광주사태때 북한군침투개입이 진실이라고한다. 광주사태의 진실을 잘 아는 탈북자들은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광주사태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쓴다.
103.광주폭동때 북한특수부대침투개입을 총괄한 김정일은 작전성공과 전과를 이유로 승진했다.
104.1980년 5월 25일 미국국무장관 무스키의 전문에 온건파수습위는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과격파가 등장해 세력을 장악했다.
인민재판이 열렸고 약간의 처형이 이뤄졌다 학생시위대는 혁명정부수립을 주장하는 신원미상의 무장한 과격파들로 대체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인민재판.인민재판에 의한 처형. 6.25전쟁때 전라도가 인민군들수중에 들어갔을때 인민재판이 많이 열렸고 인민재판에 의한 처형도 많이 벌어졌다.
혁명정부의 수립을 주장하는 신원미상의 무장한 과격파들이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인민재판과 인민재판에 의한 처형을 하는 것 보았나?
105.당시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이 1980년 5월 26일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 광주의 상황은 더욱 나쁜쪽으로 과격전환을 했다. 과격파들로 이뤄진
무장그룹과 심지어 인민재판과 처형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인민재판.처형 .과격파. 104와 같은 의미이다.
106.광주폭동당시 미국항공모함 코럴시항공모함과 미드웨이항공모함이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광주폭동이 아주 안좋은 상황이라는 증거다.
북한은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광주에 침투시켜 폭동을 일으켜 폭동이 전남전역으로 확산되면 친북성향의 전남국을 세우거나 폭동이 남한전역으로
확산되어 당시 남한정부가 전복되면 해주에서 대기하고있던 10만에서 15만의 북한군들을 기습남침시켜 남한을 삼키려했다. 미국항공모함 두 대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위해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광주폭동의 상황도 매우 안좋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즉 북한군들 600명이 광주폭동을 일으키고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광주사태가 정말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미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지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항공모함 두 대를 한반도에
보내지않는다. 전라도것들 중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위해 미국이 항공모함을 보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으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107. 광주폭동때 경찰 4명으 죽여 도청앞에 전시했다. 그런 행동은 6.25전쟁때 인민군들이 한 행동과 같다.
108.탈북자들은 남한에 들어올당시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 경상도도 아니고 전라도도 아닌 제 3자 입장이고 중립적 입장이고 광주사태의 진실을
잘 알 수 잇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들을 믿을 수 있다.탈북자들은 거의 대부분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109. 역사로서의 5.18이라는 책.4권짜리 김대령 저.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110. 1980년 3월 28일자 동아일보에 동아일보는 일본통일일보를 인용해 북한은 대남게릴라전을 획책하여 북한은 남한의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금년봄에 대량의 무장간첩을 남파하여 지방도시의 방송국을 점령하는 등 본격적인 남파게릴라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대남특수군군사적전계획을 작년
가을에 수립하여 인민군상장 김철만을 이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김철만은 124군부대와 제 7정찰여단을 통합하여 특수8군단과
청년돌격독립여단이라 불리는 특공게릴라부대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111. 1980년 3월 23일 한강에서의 무장공비수중침투사건. 성동격서인 작전일 것으로 생각한다.
112. 1980년 3월 25일 포항앞바다에서 발각된 무장간첩선사건. 성동격서인 작전일 것으로 생각한다.
113.1980년 6월 28일 매일경제신문은 일본통일일보를 인용해 북한이 조총련에 제 2의 광주사태를 일으키라고 지시했고 북한은 최근 재일조총련에 대해
앞으로 모든 힘을 기울여 남한파괴,교란공작을 펴고 제 2제3의 광주사태를 한국각지에서 일으키도록 지령했다고 6얼 28일자 통일일보가 조총련계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조총련부의장 박재호는 평양에 1개월간 머무르며 북한의 대남공작총책임자인 김중린과 만나 대남공작의 전략전술에
관한 상세한 지시를 받았다. 김중린은 폭동과 혼란을 한국각지에 유발시켜 남한을 반신불수의 상태에 빠지게 해 결정적 기회를 만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114. 시위대들과 시민군들의 구호 중에 하나인 전남국을 세우자라는 구호.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전남국을 세우자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재야운동권 중에서 남한정부를 전복하자라는 말을 하는 자들은 있어도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을 분리해서
나라를 만들자고 한 적은 없다. 광주시민폭도들은 북한특수부대 600명의 지시와 명령을 따라 전남국을 세울려고했다.
115.폭도들의 성명서에 매판자본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다. 매판자본이란 식민지나 후진국 등에서 외국자본과 결탁하여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토착자본을 말한다. 김중린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올린 보고서에 매판자본가들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116. 근래에 북한TV가 남한에 방영되어 5.18시민군영웅들의 얼굴이 대부분 발굴되었다.나이든 모습으로 수백명이나 북한에서 발견되었다.
117. 안기부와 국정원도 광주폭동때 북한군남파를 알고있었다는 북한군출신 탈북자의 증언. 안기부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도 알고있었을 것이다.
118. 광주폭동계획을 기획하고 5.18광주폭동당시 북한특수부대 600명을 지휘한 문제심은 광주폭동때의 전공으로 이후 인민무력부부부장까지 지냈다.
119. 전북한군상좌 김유송은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뒤에서 총질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광주폭동을 같이 하는 광주시민들끼리 그렇게 할리가 없다.
120.북한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이 강한 점을 활용했다. 특수부대.땅굴.잠수함.심리전. 북한군은 특수부대를 20만이나 보유하고 특수부대가 강하고
땅굴이 위협적이고 북한잠수함들이 남한에 비해 훨씬 많았고 심리전의 고수들이다.
121.광주폭동때 광주시민들인 주동자들,중요인물들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있었다. 윤상원은 조총련으로부터 북한서적들을 수입하여 남한에 공급하던
자로 조총련과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고있었을 것이 유력하다. 코뮨주의혁명가들과 남민전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으며 광주폭동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122. 북한고위층들이 남한에 와서 휴전선에서 먼 5.18광주망월동묘역에 꼭 참배를 하겠다고하는건 광주에 침투해 맹활약을 하다가 사망한
북한특수부대사망자들 11구의 시신들이 매장된 묘들에 참배를 하기위해서이다. 남한사람들이 한 민주화운동이자 혁명인 4.19
4.19희생자들 묘역에 북한고위층들이 참배를 하지않는다.
123. 미국정부정책입안재단인 헤리티지재단은 광주사태는 한국정부가 전라도민들을 학살할 의도와 목적아래 사전에 모의해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다.
미국이 개입한 사건도 아니다. 이 반란사태의 규모가 방대함을 생각한다면 사망자수가 현저히 낮은 것 이 사실은 한국정부가 국민피해를 극소화하기위해
노력을 경주했던때문인 것으로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그 말들을 되풀이하면 당시 남한정부와 계엄군들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학살은 북한군들이 한 것이다. 북한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80명 사살하고 총이 아닌 수단으로 40명 살해했다.
124.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졍하고나서 민주화운동과 좌익운동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혼동이 되어 국가와 사회가 좌경화,종북화되어가고있다.
125.광주폭동때 광주에 북한군침투개입여부를 잘 알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북한군들이 광주폭동때 광주에 침투개입했다고 말한다.
잘 알만한 사람들의 부류들은 광주폭동때 북한특수부대로 광주에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해 북한에 살다가 탈북하여 남한에 오거나 해외에 있는
탈북자들(가령 김명국 ,박승원) ,북한특수부대출신 탈북자들, 북한고위층출신으로 탈북하여 남한에 망명한 사람들(가령 황장엽),
당시 남한최고권력층(가령 전두환),당시 북한최고위층과 북한군최고위층( 가령 김일성,김정일,오진우), 광주폭동을 진압한 계엄군지휘자들과
계엄군일선지휘관들, 시위대들지휘자들과 시민군들지휘자들. 앞의 6부류는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이 맞다고한다.
126.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재야운동권이 국군을 장갑차로 깔아죽이는 것 본 적 있나?
127.광주폭동대 북한군침투개입을 확실히 증명하는 증거들이 발표되자 전라도것들과 종북좌파들과 종북좌익들은 5.18왜곡처벌법을 만들어
국민들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려한다.
128.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600명에 대한 정부자료에 20사단지휘차령을 수백명의 시위대들이 화염병공격을 하여 차량 14대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검찰자료에 시위대 300명이 20사단지휘부차량을 탈취한 차량 14대를 타고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 4대와 차량 수백대를 탈취하여 오고
고속버스5대를 타고온 시위대300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위대들이 버스수백대를 탈취하여 광주시내로 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기부자료에는 유동3거리에 300명 광주공원에 학생 300명이 출현하여 600명이 도청으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129. 연고대생으로 사칭한 600명에 대한 북한자료에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들 중 무기고들을 기습하여 무기들을 탈취하고 군용차량 400여대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북한대남공작책에는 600명이란 말은 광주폭동때 광주에서 맹활약을 한 534북한군특수부대를 지칭하는 암호명이다.
130. 광주폭동때 기자들이 출입이 통제되었던 광주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논화되고 사진으로 찍혀서 북한에 공개되어 북한사람들은
1980년에 TV로 매일 광주에서 벌어지는 시간들을 시청했다. 김정일이 대남연락소와 일본조총련에 과업을 주어서 광주폭동을 촬영하여 공개했다
131. 북한게릴라훈련장에서 김정일의 발언.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
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 교도지도국은 남조선해방의 전초병이다.
132.김정일의 발언. 우리는 광주사건에서 많이 얻었지만 놓쳤고 놓쳤지만 내일을 위해서 남겼다.
133. 총을 꺼꾸로 멘 청년집단이 도청을 통제하는 사진들. 북한군들은 총을 꺼꾸로 멘다.
AK소총의 결함으로 총구에 빗물이 들어가지않게 하기위해서라고한다.
134. 내각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가 남한으로 망명하여 북한이 5.18광주소요를 계획하고 지휘했다고 말했다.
135. 김일성이 말하기를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적화시킬 수 있는)절호의 기회를 3번 (6.25전쟁, 4.19혁명, 5.18광주사태) 놓쳤는데
광주사태가 제일 아쉽다.
136. 탈북자들의 증언들에 북한군들은 퇴각할때 북한군시체들을 야산에 묻었다고한다.
137. 광주폭동에 가담한 북한특수요원인 안창식을 남편으로 삼아 함께 살던 북한여고사의 진술에 광주폭동은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고한다.
138.탈북자 김명국(가명)은 광주에 북한군특수부대로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하여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자들을 도와주었다가 북한에서
못살게 되어 탈북하여 남한에 온 탈북자인데 도청까지 북한군대장을 호위했고 국군 3명을 쏘아죽였다고한다.
139.광주폭동당시 폭도들을 태운 트럭 2대에 인공기를 달고있는 장면이 TV에서 방영되었다.
당시에는 차에 인공기를 달고다니면 잡혀가서 큰 괴로움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140. 북한에는 기념할만한 것들에 5.18이란 이름을 붙인 것들이 즐비하다. 문천기계공장은 5.18기계공장으로 명칭변경을 했고 룡성기계공장
1만톤 프레스는 5.18프레스라고 이름을 붙였고 철도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은 5.18철도무사고운동으로 이름을 붙였고
전기기관차는 5.18기관차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외에도 기념할만한 것들에 5.18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많다.
141.5.18광주폭동을 일으킨 북한특수부대 600명의 지휘자는 문제심이다. 문제심은 1010군부대부대장이며 당시 현역 중장(별2개 한국의 소장에 해당)
이었다.문제심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5.18작전을 직접 지휘했으며 명령을 받고 50명을 대동하고 광주에 침투해서 작전을 지휘감독하고 돌아갔다.
문제심이 작성하느 광주작전계획은 1.교도국에서 남한광주현지에 파견할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된 25세이하 모범군인들로
인원을 선발 2.아세아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트럭과 장갑차를 노획 3.전라도전지역에 있는 무기고들을 습격하여 폭동군들을 무장 4.광주폭동에 파견하는
조선인민특수부대원들을 국군들로 가장시켜 침투시키려한다 그들이 시위에 참가한 광주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유언비어를 비롯한 심리전을 벌여
광주시민들과 전라도인들을 폭동에 합류하게 한다. 5.북한군들을 대학생 또는 시민으로 침투시켜 폭동진압국군들에게 사격을 한다 양측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그만큼 폭동을 확대시킬 수 있다. 6.남조선말과 억양에 능숙해야하는 관계로 머리를 장발로 길러 활동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7.폭동성공가능성. 박정희가 사살된 지금의 정세는 우리가 남조선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김대중을 미친듯이 섬기고있는 전라도인들
특히 광주의 민심은 터지기직전의 화약고라는 소식들이 현지에서 들어오고있다. 작은 사건이라도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기폭제같은 사건을 만들어낸다면
그들은 불나방이 되는줄 일면사도 들고일어날 것이다. 이런 지역감정들을 폭동에 이용한다면 보다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9.폭동이 일어나면
그곳 현지상황에 대한 중계를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보도할 종군기자들을 현지에 파견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국내외 폭동현장을
현지중계함으로써 남조선인민들로 하여금 국군들에 대한 분노를 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로써 전국적은 폭동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한다. 10. 광주폭동에 참가한 전조선인민군특수부대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든 국인들이 마스크 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김일성은 문제심이 제출한 작전계획안에 사인을 해주고 일어섰다.
142. 5월 21일 오후 3개공수여단에 속한 9개대대 모두가 몰살될 처지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시외곽으로 탈출했다. 광수여단보다 적은 군인수로
공수여단을 몰살될 위기로 빠뜨리는 군대는 북한군최정예특수부대이다.
143. 1980년 5월 17일 김대중에 5월 19일까지 계엄을 철폐하고 최규하-신현확내각을 해체하고 전국혁명내각을 구성하였다. 이런 내용으로
확답하지않으면 5월 22일을 기해 전국봉기를 단행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것은 김일성이 간첩들에 내린 전민봉기교시와 정확히 일치한다.
광주폭동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합작하여 일으키고 주도한 것이다.
144. 북한문건들에는 광주항쟁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인민들이 봉기했다고 기술되어있다.
145.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 그외 군대에 갔다오지않은 사람들은 총을 제대로 쏘지못한다. 양아치들,구두닦이들,깡패들도 총을 제대로 쏘지못한다.
예비군출신 폭도들은 별로 없었다고한다. 총을 처음 다루는 사람이 1~2시간 총쏘는 법을 배우면 총을 쏠 수는 있어도 멀리있는 사람과 몸을 숨긴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을 총으로 맞추지못한다.
146. M16총의 성능이 칼빈총,M1총보다 뛰어나다. 그런데도 M16총을 사용한 4000명의 공수부대가 600명의 북한군특수부대에게 총격전에서 밀려서
조선대와 광주교도소로 철수했다가 광주에서 쫓겨났다. 북한군특수부대 600명의 사격술과 전투기술이 뛰어났기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147. 계엄사령부와 계엄군지휘자들은 광주폭동초기에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분명히 개입했다고 말했다.
공산당,공산주의자,적색분자,간첩,불순분자가 북한군과 비슷하지않은가.
148.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고 광주사태를 세계에 알린 독일인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북한간첩인 것으로 밝혀졌다.힌츠페터는 2015년 10월 10일
북한노동당창건70주년 기념식에 나타났다. 북한노동당창건기념식에는 북한노동당간부거나 중요동조자만 참석할 수 있다. 힌츠페터는 북한정권의
5.18국제선전전요원이었다. 김사복의 택시에서 내린 힌츠페터는 접선장소에서 대기하고있던 북한특수요원들의 통역,호위를 받았고 북한특수요원들의
차를 타고 샛길을 통해 광주로 들어갔다. 힌츠페터는 자신이 찍은 영상들과 북한공작원이 찍어놓은 영상들을 받아가지고 세계에 알렸다.
149.전두환회고록에는 5.18광주폭동은 북한군소행이다라는 구절이 18번 나온다. 전두환은 당시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잇는 지위에 있었고 전두환은
1980년 6월 4일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처음 주장한이후 39년간 계속 그렇게 주장했다. 단 한 번 신동아와 몇분 인터뷰하며 광주폭동때
북한군침투개입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39년간 계속 주장한 것과 가장 최근에 주장한 것이 중요하지 단 한 번 월간지와 몇분 인터뷰한 것이 중요하겠나?
정치인의 인터뷰는 한번씩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150.광주폭동때 수백명이 광주근교에 암매장되었다는 소문이 꾸준히 있었다. 1년전에 발표된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에 광주침투북한군전사자 475명이
광주근교에 매장되었다고 되어있다. 광주시민들은 광주시민들이 암매장된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들을 여러번 파보았으나 시신은 1구도 나오지않았다.
광주시민들사망자들이 아니라 북한군전사들이니 북한군들이 묻었으니 그렇지. 광주시민들 수백구가 암매장되었으면 묻는 사람들이나 목격자들 중에
광주시민들이 있으면 묻힌 장소를 알게되는거지.
151. 광주폭동때 폭도들은 자유민주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민족민주를 내세웠다. 민족민주라는 이데올로기는 제 3세계에서 공산사회주의계열이 대중을
기만하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위해서 공산화의 전단계로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152. 북한대남공작역사책에는 광주사태가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153. 광주폭동당시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던 분당에 사는탈북자의 증언에는 침투한 북한군들이 먼저 발포하여 국군들을 쓰러뜨렸다고한다.
154. 전경복장을 한 시민군들. 탈북자들은 북한군들이 전경복장으로 위장을 했다고한다.
155. 어느 시점에서 폭도들 압도적 다수는 무기를 회수해서 반납했고 계속 그렇게 하자 북한군들이 반납을 못하게 했다. 북한군들이니 끈질기게 폭동을
이어가려했다. 광주시민들인 폭도들이라면 압도적 다수가 무기들을 회수하여 반납하면 같이 무기들 회수와 반납에 동참했을 것이다.
156. 소령위장 북한군에 속아 사상자들이 있었다고 계엄군통신병 문병소가 증언했다.
157. 탈북자 이애란은 북한저격부대소속 이웃집오빠가 광주봉기 남한사태때 급파를 대비했다고 말했다.
158. 광주외곽주남마을 버스총격사건. 낮 12시 추정사망자 15명. 북한군들이 총격을 가해 사망자들이 생겼다.
159. 광주시장이 말하기를 광주교도소공격을 북한군들이 했다.
160.평양기자출신 탈북자 김길선은 광주폭동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말했다.
161.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역사책인 광주의 분노와 주체의 기체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남한자료와 일치하고 더 자세하다.
폭동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있고 상황에 맞게 전략을 달리해 싸웠다고한다.북한군들이 직접 작전을 했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162.남파간첩 손성모는 광주사태당시 북한군들 길안내자역할을 하였다.
163.광주사태현장에 침투했던 전북한조선노동당중앙당연락소 전투원이 증언하기를 침투한 북한군들은 시민봉기군들과 국군들로 가장하여 서로
총질을 하여 이간책동을 했다고한다.
164. 미국무부와 CIA의문건에 북한정권이 유언비어로 광주사태를 조장했다고 되어있다.
165.북한이 만든 기록영화 조선기록영화촬영소제작 475명 광주인민항쟁. 광주폭동때 침투해서 활약하다가 광주근교에서 사망한 북한군특수부대원들이
475명이다.
166.북한으로 살아돌아간 북한군들 110명은 밤에만 산맥을 타고 이동했고 지리산과 태백산맥을 거쳐 비무장지대를 통과했다고한다.
167.5.18광주폭동당시 북한간첩들의 무선통신이 포착되었다고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광주침투북한군들의 무선통신은 감청에 걸리지않았다
168.김정일은 내각간부들을 급파하여 작전을 참관시켰다. 김태산증언.
169.김정일은 광주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북한군특수부대장교출신 탈북자 임천용이 증언했다.
170.광주시민들 중에 시민군들을 조직한 사람이 없다. 북한군들이 시민군들을 조직했다.
171.북한이 직접 광주에서 촬영해서 뿌렸다고하는 5.18광주폭동영상이 있다.
172. 5월 21일 서해안으로 배로 들어온 소수의 북한군들이 있었다.
173. 북한군특수부대장교출신 탈북자 임천용은 증언하기를 5.18광주폭동때 북한군들은 땅굴을 통해 잠입했다고한다.
174. 당시 동아일보기자인 김영택의 기록과 증언에도 도청이 장악된후 정체불명의 복면부대인 폭도들이 나타났는데 대한민국사람들이 아니다.
복명무장단체는 외지에서 온 불순세력이다 이들이 무기반납을 저지하고 폭동을 확산시킨다.
175. 북한군들은 후퇴할때 따라붙었던 남한시민군들을 북한군들의 행군속도를 따라오지못할거라 생각하여 또 귀찮아서 살해해버렸다.
176. 북한은 광주폭동의 군자금과 공작금을 지원하기위해 조총련에 1979년 19억엔을 송금하고 1980년 4월 14일에 조총련에 5억4천만엔을 송금했다.
1979년의 19억엔은 190억이고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1900억이상이다. 1980년의 5억4천만엔은 54억이고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540억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