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일 보초근무를 마치고 귀대하던 중 차량 전복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난 아들을 생각하면서요
정현아 !
작년
그러니까 2004년도 8월 31일. 유난히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하늘을 바라보며 의정부306보충대 입소와 함께 시작된 너의 군생활 .
다른 아이들은 애인과 서로 껴안고 이별의 인사를 나누는데 너는 우리 가족만의 환송을 받았었지.
사실 그때 아빠는 조금 화가 났단다. 우리 아들 인물도 어디 빠지지 않는데 그 흔한 애인 하나 없이 군대를 가야 하나 하고 말이야.
외할아버님 상중에 집을 다녀갔기에 100일휴가를 올 수 없다고 하기에 작년 12월 10일 1박2일 외박을 얻어 철원의 어느 펜션에서 하루 밤을 세우던 시간이 애절하게 떠오르는구나.
「이번 겨울만 지나면 졸병생활도 면하고 중고참 정도 돼니 엄마, 아빠 걱정마세요」 라며 엄마 아빠를 위로하던 착한 아들이었잖니.
그리고, 2월달이면 휴가 올거라며 전화로 이야기할 때가 불과 며칠전 아니었니 ?
아빠는 네가 너무나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이었기에 무사히 군생활 마치고 가족품에 안기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
그래, 이것이 무슨 청천병력이란 말이니. . . 남아있는 할머니, 민정이 그리고 엄마아빠는 어떻게 살라고 너만 홀로 훌쩍 떠날 수 있는거니?
정현아 !
대답 좀 하려무나. 이 아빠의 뼈아픈 절규의 목소리에 무어라 이야기 좀 해 주렴
아빠는 지금까지 군부대 사고가 나는것을 보면서 남의 일로만 생각했단다. 우리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런데 . . . 어째서. . .
아직 믿어지지를 않는구나. 아니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따름이란다. 하지만 현실인 걸 어찌하겠니. . .
지난번 네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지 !
비록 최전방이라 날씨도 춥고 집 생각도 많이 나지만 편안하게 잠잘 수 있는 우리가족을 비롯해서 후방에 있는 모든 이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기에 어떤 어려움도 참을 수 있다고. . .
그렇게 듬직하고 말없이 착하던 네가 왜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먼저 가야만 했니?
엄마 아빠가 그렇게도 보기 싫었니? 이 자식아, 한번 대답해 봐 이 놈아. . . .
이제와 곰곰 생각해보니 그동안 직장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대화조차 나눠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는구나.
하지만 정현아 !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 .
다만 하늘나라에 가서 편하게 쉬기를 바랄뿐 그 무엇을 너에게 해 줄 수가 있단 말이니.
문득 가족과 함께 했던 일본에서의 2000년부터 2003년까지의 3년여의 시간들이 생각나는구나.
3평짜리 좁은 방에서 4식구가 추위를 달래기 위해 서로 꺼안고 잠을 자며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던 그 정겨운 시간들.
사실 아빠는 그때의 달콤하고 소중했던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단다.
학예발표회에서의 너의 힙팝공연, 처음에는 일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일본친구들과 다정스런 대화를 나누는 너의 모습, 일본어능력시험 1급 합격하여 기뻐하던 모습.
솔직히 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억장이 무너지는걸 참을 수 없어 「이제 내 자식이 아니야」 하고 잊어버리려 노력을 해 본단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임을 금방 알게 된단다.
그래 정현아 !
비록 이 세상에 없다 한들 이 아빠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단 말이니.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빠는 죽을 때까지 정현이 생각하면서 살아 갈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
꽃다운 23살의 자랑스런 나의 아들 정현이거늘.
피워보지도 못한 이 세상을 떠난 너에 비하면 아빠는 이 세상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거니. 그런 정도의 고통은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유난히도 추위를 많이 타던 너 아니었니 ?
엄마는 너 군대 보내놓고 항상 그 걱정이었던 거 너는 잘 알고 있지 ?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없는 그 추운 민통선안 초소에서 보초근무 서지 않아도 될테니 엄마 걱정도 덜어준 효자 아들이라 믿을께, 정현아 !
정현아 !
이제 아빠는 비록 이 세상에는 없지만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의로운 일을 한 자랑스런 아들로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리려 해.
또한 네가 묻힐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 국립묘지까지도 스스로 예비해 두어 그곳에서 영면할 수 있게 한 현명한 아들로 생각할 께. . .
혹시 정현이가 이루지 못한거 있으면 아빠한테 이야기 해주럼. 아빠가 대신해 줄테니까.
너를 하늘나라로 보내던 날
참 많은 분들이 와서 마지막 가는 너의 모습을 지켜본 거 알고 있니?
특히 네가 다니던 경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님과 선후배들이 많이도 온 걸 보고 「우리 아들 학교에서 그렇게 인기 없는 놈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단다.
이제 우리 가족은 보훈(원호)가족이라는 이름이 하나 붙여졌단다. 너의 숭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사회에서 사는 동안 모범적으로 살아갈게.
무척이나 사랑해주었던 네 동생 민정이가 엊그제 그러더구나. 오빠는 비록 세상에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에 있을거라고 하면서 오빠 몫까지 엄마, 아빠를 위해 열심히 하겠노라고. . .
정현아 !
네가 운전한 것도 아니고 단순한 차량 전복사고에 왜 네가 죽어야 했는지 지금도 답답한 마음이란다.
사고 당시 출혈이 심했다고는 하지만 사고 직후에 너를 바로 후송하였다면 이런 참변은 없었을 거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한단다.
이런 군대라면 대한민국의 엄마 아빠들이 어떻게 마음 놓고 군대를 보낼 수 있단 말이니. 당시 응급조치를 했던 군의관들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왜 사고가 난지 2시간이 지나서야 가족에게 연락을 했는지 여러 가지 이해 못할 부분이 많이 있단다.
그러기에 너의 마지막 가는 모습도 보지 못한 죄인이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지금 와서 그걸 따진 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정현아 !
앞으로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노력할게. 특히 엄마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할게. 그게
저 세상에 있는 정현이가 바라는 걸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 더욱 더 공직생활에 충실하도록 할게.
그리고 그리움이 사무처 보고 싶은 마음 깊어질 땐 네가 편안히 쉬고 있는 대전으로 언제든지 달려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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