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참모본부(합참)는 2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김모(43)씨가 합참 전산센터를 들락거리며 군 자료를 빼낸 사건에 대해 "별것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씨가 유출한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제안요청서'에 대해 "조달청에서 인터넷에 공시했던 내용이고 콘텐츠가 없어 기밀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해온 수원지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군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료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가 유출한 자료들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합참은 '합동지휘통제체계 제안요청서'를 입찰 참여업체에 10여부 배포한 뒤 100% 회수했다. 합참 해명대로 별것 아니었으면 도로 가져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KJCCS는 우리 군의 중추신경이라 할 수 있다. KJCCS는 국방부·합참은 물론 육·해·공군의 작전사령부급 부대에서 예하 부대로부터 각종 상황정보를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작전사령관이나 군 수뇌부가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우리 군의 핵심 지휘통제 시스템이다. 청와대 지하벙커에도 단말기가 설치돼 있어 KJCCS를 통해 각종 상황보고를 받는다.

합참은 또 김씨가 빼낸 '노드 IP주소'만 가지고는 KJCCS에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공안 당국은 "노드 IP주소는 합참의 주요 서버에 들어가는 주소에 해당한다"면서 "노드 IP주소가 유출되면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최근 농협 해킹도 돈이나 자료 유출이 목적이 아니라 서버 자체를 엉망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공안 당국은 문제의 자료들이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지 합참에 의뢰했지만 합참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군은 보안 사고가 터지면 쉬쉬하거나 '별것 아니다'는 식으로 무마하고 보자는 태도"라며 "이렇게 하면 후일 더 큰 화(禍)를 불러오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합참은 국보법 위반 전력이 있는 김씨가 군사보호시설인 전산센터를 15차례나 출입했지만 임시 출입자였기 때문에 신원 조회 대상자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 컴퓨터에 군 기밀로 분류될 수 있는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 있는 경위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군 기밀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군에선 '별것 아니다'고 해명하는 일이 거의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 내에서 한국군 장교의 실수로 USB 메모리에 들어 있던 '작전계획 5027' 설명 자료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세력에 해킹당한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우리 군은 별 내용이 아니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주한미군 수뇌부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자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과의 전쟁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놓은 '작전계획 5027'은 2005년에도 초급 장교의 실수로 73쪽 분량이 인터넷에 유포됐었다. 그때도 군은 "73쪽을 모두 회수했다"며 무마에 급급했다.

2005년엔 중사 한 명이 개인 프로그램에 접속하다 방어전투 수행 방안 등을 유출했고, 2006년에는 중위 한 명이 포대 진지 등 군 기밀 8건이 담긴 노트북으로 TV 드라마를 다운받다가 기밀을 전부 유출시켰다. 북한은 2008년 8월 해킹 메일을 육군 야전군사령부 대령급 간부의 컴퓨터에 침투시켰을 만큼 '사이버전' 능력을 키우고 있다. 2008년 체포된 여간첩 원정화가 북한에 건넨 우리 군 장교 명함 100장 가운데 일부 장교의 이메일도 해킹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