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검찰단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평상시 일반국민들은 군 검찰단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지만 창군 이래 최초로 육본 압수수색을 감행한 군 검찰단은 분명하게 그 존재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창군 이래 최초의 육본 압수수색 덕분에 군 검찰단이 창단 이래 최초로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군 검찰단은 2002 대선을 앞두고 이미 한차례 온 국민의 관심을 모은 바 있었다. 이름하여 김대업 사건이다.
구태여 김대업 사건을 왜 들먹이냐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정권의 ‘군 수뇌부 길들이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2002년 당시의 상황부터 되집어 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군 수뇌부를 길들이기 위한 서곡은 이미 시작되었었던 것이다.
뜨거웠던 2002 대선을 앞두고, 소위 병풍은 태풍의 눈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사기꾼에 불과한 김대업을 의인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었고 이에 탄력받은 김대업은 한여사 육성녹음테이프가 있다는 개구라를 치며 한껏 고무된 바 있다. 그런데 그 이전에 김대업의 진술을 두고 군 검찰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린 사건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김도술 진술서에 대한 공방이었다.
국회 청문회로까지 이어진 군 검찰단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우선 당시 법무관리관이었던 김창해 준장과 고석 대령은 김도술 진술서에 대한 존재를 부인했다.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 것이다. 이들은 육사 출신이다. 육사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패스한 정통 군일들로서 국민 정부 시절 군 검찰단내에서 최고의 실세로 통하던 인물이었으며 김준장이 맡았던 법무관리관이라는 직책은 군 병무병과에서는 최고위 직이다. 고석 대령은 김도술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담당 법무관이었다. 수사의 실무 책임자였던 것이다.
반면에 고석대령의 지휘하에 수사를 진행했던 이명현 중령과 유관석 소령은 김도술 진술서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내용이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 약 6～7줄 분량의 간이 진술서가 있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분명 이 후보에게 불리한 증언이었다. 이들은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군 검찰에 기용된 케이스다. 병역 의무를 장교로 복무하고 곧 제대할 인물이었던 것이며 실제로 청문회 당시 이 소령은 이미 제대한 후 경기도 모 지원의 판사로 재직중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됐고, 결국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이후 김창해 준장은 뇌물혐의로 전역했고, 검찰에 의해 구속까지 당한 후 현재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보복’이라는 야당의 주장도 있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냥 잊혀져갔다. DJ 정부시절 최고의 군실세중 한명이었던 사람의 몰락치고는 너무나 허무했던 것이다.
고석 대령은 군법무관과 법무과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취임이후 김준장과 같이 동반 퇴출당한다. 최근 근황은 자세히 모르지만 군 검찰의 실세라고 부르는 법무감 후보 1순위였음에도, 끝내 임용돼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 검찰의 실세는 법무관리관과 법무감이라고 볼 수 있다. 비교하자면 법무관리관은 검찰총장에, 법무감은 대검 중수부장에 견줄 수 있는 막강한 자리다. 참여정부가 진행한 군 검찰단에 대한 개혁과 독립의 시작은 바로 이렇게 출발된 것이다. 정통 군출신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 이것이 참여정부가 군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출범 전부터 저들은 적이었던 것이다.
군 검찰단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번 육본 압수수색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군 검찰은 독자적으로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종결을 내리지 못한다. 군대라는 특성상 관할 지휘관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비록 참여정부가 관할관제도의 폐지를 추진하였지만 계급위주의 지휘통제 방식이 뿌리내려 있는 군내에서 군 검찰단 독립은 그렇게 쉽사리 이룰 수 있는 사항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두 가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군 검찰 독립’에 대한 논의가 참여정부 출범이후 끊임없이 제기돼 왔는데 북경비정 북방한계선 침범 사태 등과 같이 청와대와 군이 충돌할 때마다 군수뇌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로 적극 거론돼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재준 총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은 정권의 군검찰 독립 움직임에 적극 반대했다. 특히 남총장은 군 검찰의 독립을 ‘북의 정치보위부’에 비유하면서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군 수뇌부 장악 의도에 찬물을 껴 얹었던 것이다.
둘째는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육본 압수수색에 앞서 군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15일 정부는 장성급 105명에 대한 정기 인사를 단행한 바 있는데 1년 동안 공석 상태로 있던 육군 법무감을 새로운 인물로 임명했다. 그리고 한달 후, 신임 법무감의 진두지휘아래 군 검찰은 자신들의 지휘자인 육본 장성들의 인사문제에 대한 전격 압수 수색을 단행한다.
창군 이래 처음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불과 한달밖에 안된 법무감이 과연 진두지휘할 수 있겠는가? 한달이라면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되는 시기이다. 외부의 하명을 받고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단행할 수가 없다. 그만큼 군수뇌부에 대한 도전은 군 검찰단에게 있어 무모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토록 서둘러야만 했을까?
지난 8월 이 정권을 아연 실색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소위 남 총장의 발언이라고 알려진 ‘정중부의 난’ 사건인데 사실유무는 판명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권은 뜨끔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중부의 난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군사 쿠데타’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극도의 불안감이 자신들을 엄습했을 것이다. 사실 쿠데타가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적었지만 이미 노무현 정부와 군 수뇌부간의 갈등은 그 골이 너무나 깊게 파여져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불안감은 더했을 것이다. 정권의 선택은 먼저 칼을 뽑아드는 것이었다. 군대란 존재는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 정권 실세들에게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과 다름없었기에 투서에 불과한 괴문서 하나 달랑 들고, 군 수뇌부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남 총장의 사퇴서를 반려했다. 왜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정중부의 난’에서 찾는다. 신일순 대장과는 달리 남 총장은 군내에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다. 또한 한미연합 사령관이라는 직책과 육군 참모총장이라는 직책은 그 상징성이 다르다. 군 최고의 수뇌부와 준·소장급 장성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면 쿠데타 까지는 아닐지라도 군의 반발이 너무나 거셀 것이 자명하다. 구태여 군에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군의 사기는 ‘사병’들에게서 나오지만 사기를 움직이는 두뇌는 우리가 똥별이라고 부르는 ‘장성’들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점은 이미 노빠들의 사상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군대를 사병이 접수하겠다’는 요지의 글과 각종 패러디들은 단순한 해학과 위트로만 볼 수없는 지경이다.
필자는 군 복무를 하면서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 대대에서 근무를 한바 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제일 높은 계급을 본 것이 대령이며 그것도 1년에 한번 밖에 보질 못했다. 하물며 ‘별’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적도 없고, 별 근처에 가거나 별이 부대 근처에 오는 것도 싫었다. 그만큼 ‘별’이란 존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경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 사병들이 ‘별’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심지어 척결의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상상해보라. 본격적인 ‘계급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돌격앞으로’라는 지휘관의 명령에 ‘니가 먼저 가라’는 사병들이 속출할 것이며 이는 유명무실한 군상들의 집합체에 불과하지 더 이상 군대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우리에게 ‘안보’란 더 이상 없다. 참여정부의 개혁이 진행될수록 필자는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마침내 그것이 군의 개혁에 이르자 비로소 두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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