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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생활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 퍼옴
[한겨레]

이통3사 위치추적 ‘빅브러더’ 마케팅 인권단체 강력 반발

신기하면서도, 섬뜩한 얘기다.

회사원 양아무개(33·서울 구로구)씨는 며칠 전 친척을 배웅하려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딩동’.

누굴까? “LGT 로밍 미/일/중 통화료 30% 할인 공항 3층 G~H 사이”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확인 결과, 이런 로밍 관련 문자메시지는 휴대폰 019 가입자인 양씨 뿐 아니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많은 011(017) 가입자에게도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똑같이 보내지고 있었다. 016(018) 가입자는 로밍 관련 메시지 대신에 ‘KTF 라운지를 이용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양씨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사실을 알고,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을까? 지난 9일 중국으로 여행을 가던 이은희(42·서울 송파구)씨는 “내가 여행을 가는지 알았는지 의아스러웠다”며 “아마도 내가 공항에 오기 전에 로밍서비스를 예약해서 그런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던 이윤주(56·서울 강남구)씨도 “나도 참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타겟 마케팅의 비밀
그 비밀은 이동통신업체들의 영업방식에 숨어 있었다.

SK 텔레콤과, LG 텔레콤, KTF쪽이 ‘추적’(파악)된 개인의 위치정보를 이용해, 이른바 ‘모바일 타깃 마케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 발송자는 011은 “1566-2011”, 019는 “3416-7010”으로, 모두 해당 이동통신사의 로밍센터였다.

이런 문자메시지는 019쪽은 지난해 9월부터, 011쪽은 2002년 말부터 보내고 있다.

휴대폰 가입자 가운데 인천공항에 도착한 사람들만 골라 019쪽은 하루 평균 약 2천건, 011쪽은 1000~1500건을 보낸다. 016, 018 사업자인 KTF는 지난 2002년 6월께부터 우수고객을 상대로 하루 평균 약 500명에게 보내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이런 일은 아직 무척 신기하다.

우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국에는 이동통신 3사를 모두 합쳐 약 2만 개의 기지국이 있다. 각 업체별 기지국은 휴대폰 가입자가 어느 지역에서라도 통화가 연결되도록 ‘Cell’(세포) 단위로 나눠 맡고 있다. 이동통신을 영어로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mobile phone이지만 전문용어로는 cellular phone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휴대폰에 안테나 표시가 뜨는 것은 가입자와 기지국간 연결돼 있다는 표시다.

따라서, 다른 Cell에서 인천공항 Cell에 가입자가 옮겨가면, 곧바로 위치를 파악하고 자동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휴대폰 단말기에 따라서, 전화를 받거나 걸었을 때만 문자 메시지가 보내지기도 한다.

한 이동통신업체 관계자는 “서울에는 약 250미터마다 Cell이 나눠져 있을 정도로 촘촘하다”며 “인천공항처럼 다른 지역과 떨어져 있어 Cell이 분명한 곳은 가입자의 현 위치를 훨씬 쉽게 잡아내 자동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위성항법장치(GPS) 방식은 10m 단위까지 정확하게 위치를 잡아내, 사실 기지국을 이용한 이런 수준의 위치파악은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다.

프라이버시 침해냐 첨단 서비스냐
이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이런 개인의 위치정보를 이용한 문자메시지는 처벌받고, 금지돼야 할 프라이버시 침해인가? 아니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최첨단 서비스인가? 양씨의 판단은 “프라이버시 침해”다.

양씨는 “지난 6월 해외출장 때 첫 로밍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위치추적을 통한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며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할 수 있으며, 불쾌하고 정당하지 못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양씨는 “다른 업체들도 통신회사와 계약을 맺어 고객의 위치정보를 또다른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고 수신거부 신청을 했지만 불쾌함을 떨칠 수 없었다.

양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다.

9일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며 이아무개(38·서울 강남구)씨는 “황당하다”며 “내가 정보를 제공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나의 위치를 알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같은 날 일본에 가려고 인천공항에 간 박주경(27·서울 송파구)씨는 “신기하면서도 정보누출이 아닌가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며 꺼림칙한 기분을 전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도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 SDI 직원 휴대폰 위치추적 소송을 맡은 김칠중 변호사는 “어떤 지역에 들어갔다는 것은 개인의 위치정보인데 이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위치정보를 침해하는 것이다”며 “애초 가입자가 맺은 이용계약의 범위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도용’으로 볼 수 있다”며 “약관 등에 구체적으로 위치정보를 이용하겠다는 것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불법의 여지가 있다”가 밝혔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개인이 불쾌하게 생각할 것을 생각해서 함부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안된다”며 “프라이버시 침해의 요소가 있지만, 정확하게 얼마만큼 침해하는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진보네트워크 정책국 김정우 활동가도 “개인정보 수집의 목적을 정보주체가 분명히 알아야 되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광고 목적으로 쓰이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동통신사쪽은 짐작하듯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LG 텔레콤 관계자는 “가입자의 동의를 받은 뒤 알려주는 것으로 수익을 노리는 ‘스팸’이 아니라 고객에게 유용한 ‘정보’다”며 “상업적 이용이나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SK 텔레콤 관계자도 “일종의 위치정보 마케팅이지만, 동의를 한 사람에 한해서 다른 사업자가 아닌 이동통신사가 보내는 것인데, 문제가 없다”며 “최근에는 거부하는 사람만 빼는 것이 아니라, 받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낸다”고 말했다. KTF 관계자도 “고객에게 편의시설을 이용하라는 혜택을 알려주는 것으로 상업적으로 돈벌이에 이용하는 게 아니다”며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업적 남용
이동통신사가 주장하는 이런 ‘정보’도 상업적으로 이용됐다는 점에는 사실 다툼의 여지가 없다. 019쪽은 해당 문자메시지 앞에 “안내”라고 쓰고 있지만, 011(017)쪽은 “광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상업적 이용을 인정한 것이다. KTF 관계자도 자신들의 라운지 이용관련 문자메시지는 혜택 ‘안내’라면서, “타사에서 로밍 서비스처럼 상업적으로 돈벌이에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동통신사쪽은 이용자가 거의 눈여겨 보지 않지만,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문자메시지를 받으시겠습니까?’라는 약관 등에 동의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011(017), 016(018), 019 가입자 가운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인천공항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이들이 문자메시지 수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인천공항에 상주하는 사람이어서 이동통신사에서 중복수신을 막으려고 특별히 뺀 사람들이다.

이동통신사만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정보통신부쪽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부 통신이용제도과 김치동 과장은 “위치정보를 이용한 서비스는 맞지만, 상대방의 ‘동의’만 받는다면 불법은 아니다”며 “프라이버시 침해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스팸메일을 담당하는 정보이용보호과 김기권 과장도 “현재로서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며 “스팸메일로 볼 수 있지만, 일정 형식을 지키면 그것도 법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애매한 가입자의 동의
결국, 가입자의 ‘동의’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것이다.

다른 기존의 위치정보 서비스와 달리 논란이 되는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이른바 ‘친구찾기’, 잃어버린 휴대폰 찾아주기, 자동차 길 안내, 맛집 등 주변정보 검색 등의 위치정보 기반서비스는 많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 가입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등 위치정보 이용에 대한 적극적이고, 뚜렷한 ‘동의’가 확인된다.

이에 반해, 로밍서비스 안내 문자메시지는 이동통신업체쪽은 ‘동의’를 받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하지만 휴대폰 가입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양씨는 “그런 약관 등에 동의한 기억이 없고, 누가 그런 약관이나 가입동의서를 자세하게 읽어보느냐”며 “설령 동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나의 위치정보까지 상업적으로 이용하라고 동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위치정보를 이용한 서비스는 첨예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때문에 정보통신부는 지난 2003년 8월 ‘위치정보의 이용 및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했다. 개인의 위치정보에 관한 수집, 이용 등에 관한 자세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개인정보와 관련된 법으로는 ‘통신비밀보호법’이 발신기지국의 위치정보를 수사목적 외에는 누구도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망 법)’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신상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이용 및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모두, 명확하게 위치정보 이용에 관한 사항은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치정보의 오·남용으로부터 사생활의 비밀 등을 보호”하기 위한 이 법은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 위치정보를 수집, 이용 및 제공한 때 △동의의 범위를 넘어 개인위치 정보를 수집, 이용 또는 제 3자에게 제공한 때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빅브라더의 악몽
그런데, 이 법마저 문제 투성이다.

우선 내용이 문제다.

통신이용제도과 김치동 과장은 법 제정 취지에 대해, “위치정보는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구체적으로 가입자가 위치한 지역을 알려주는 것이므로 동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 정보를 이용한다면 심각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법은 이동통신사가 위치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려면 가입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동의를 받는 등 개인의 위치정보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했지만, 정작 이동통신사들이 위치정보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은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6년 위치정보 서비스 세계 시장이 유럽 5조원, 한국 5000억원 등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전자상거래 활성화 차원에서 오히려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정보통신부 정보이용보호과 다른 관계자는 “다양한 서비스가 이뤄지다 보니 관련법이 그러한 것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법적용을 놓고 논란이 되고 고민스럽다”고 속내를 전했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는 이런 법조차 질질 끌어,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8월 입법예고를 하면서, “올해 안에 정부 법률안을 확정, 내년 국회에 상정해 시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에는 2004년 2월 임시국회에 상정, 이르면 올해 5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보도됐다. 하지만, 관련 법은 시행은 커녕 최근에야 정부 법률안이 확정돼 이제 법제처에서 심의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야 시행될 것이라는 게 정보통신부의 달라진 전망이다.

결국, 법체계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그사이 개인의 위치정보는 제대로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SK 텔레콤 관계자는 “야구장 주변에 가면, ‘두산과 엘지가 3연전을 지금 펼칩니다. 꼭 보러오세요’라는 서비스까지 가능하지만,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미리 이상형을 설정하면, 그런 사람이 같은 Cell안에 들어오면 ‘쪽지를 보내겠느냐’고 알려주는 서비스는 이미 이용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몇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의 위치를 누군가 추적하고, 그때마다 휴대폰으로 광고 문자메시지를 보낼 날이 곧 닥칠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1984’에서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던 최첨단 장치 ‘텔리스크린’이 휴대폰으로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조지 오웰이 경고한 ‘빅브러더’의 악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섬뜩하고 두렵다. 김순배 기자 [email protected] 7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