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하라
서울도시개발공사가 지난해 말 분양한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자 건설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처음으로 영업비밀에 속하는 분양원가를 공개해서도 그렇지만 분양원가에 60%가 넘는 분양이익이 붙여져 분양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이익률로 계산해도 40%나 되어 대한주택공사나 민간 건설업체도 폭리를 취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 요구에 대해 건설업체는 물론 정부도 시장 자율경쟁 체제와 영업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식당에서 밥과 반찬의 가격을 설명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으며 원가를 공개하고 판매하는 제품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택을 다른 제품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주변 여건과 발전 전망에 따라 토지 가격이 천차만별(千差萬別)이고, 조합이나 시행사 등 주택공급업체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가능성도 크다. 주택을 생산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수급에도 시차가 발생한다. 소비자에게 주택은 재산의 대부분이며 주택 구입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가운데 하나이다.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자율시장 질서의 위배를 든다. 그런데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5년 동안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80%나 올랐으며 최근 2년 동안에도 무려 43%나 급상승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분양가 상승이 주변 아파트 시세를 부추기고 다시 분양가를 상승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결국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요원해지고 부동산 투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주택시장에서는 시장경제 논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분양가 결정 방식도 주택시장의 비효율성에 한 몫 하고 있다. 주택의 적정가격은 임대료 등 주택 보유로부터 예상되는 현금 흐름과 주택구입 자금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주택 임대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아 주변 시세를 참조해 가격을 정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기존 주택가격과 분양가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면 투기 세력이 가세하여 부동산 버블로 이어진다.
대안으로 분양원가에 종합적인 여건을 고려한 적정 이윤을 붙여 분양가를 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원가 기준으로 신규 주택의 적정 가격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주변 지역 매매가에도 영향을 주어 주택시장의 안정화를 기할 수 있다.
정부도 시장 자율을 맹신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분양권이나 조합원 지분 전매금지, 재건축 소형 평형 의무비율 확대 등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나 주택공사를 민영화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소형평형 의무 비율 확대 등 수요억제책은 대형 평형 아파트 가격을 높이고 결국 소형 평형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보다 공급 물량 확대 정책과 함께 분양원가를 공개하도록 해 주택수요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가 구매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 시장 자율경쟁 체제에 더 친숙하다.
분양원가 공개가 주택사업자의 의욕을 위축시킨다고는 하나 원가 공개는 분양가 직접 규제와는 다르다. 또한 분양가 공개가 반드시 분양가 규제로 이어져 자유시장 질서를 저해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는 소비자의 중요한 권리이며 분양원가와 주변 시세를 모두 알면 주택구매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주택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도 긍정적이다.
최근 정부는 소비자에게 주택선택권을 주고 부실시공과 입주 지연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후분양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강제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동안 건설자금의 조기 확보와 주택공급 촉진에 무게를 두어 소홀히 했던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주택 분양원가를 공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주택 분양원가 산출 방식을 정하고 진실 여부를 밝히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충분한 실수요자가 존재하고 자본비용을 커버할 수 있다면 분양원가 공개로 수익성이 감소해 주택사업이 위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비자가 주택 품질 향상을 위한 원가 상승을 용인하면 건설업체들은 차별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기주택거주율이 아직도 54.2%에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망국병인 부동산 과열을 잠재우고 주택 가격의 거품을 빼기 위해서는 분양원가 공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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