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종호 기자]

뉴 싼타페·그랜저TG 등 최근 출시된 국산 신차(新車)들의 디자인이 외국산 자동차와 유사해,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 사이에 ‘디자인 베끼기’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신형 ‘싼타페’는 두툼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등 앞모습이 닛산의 SUV인 인피니티 FX와 닮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현대차는 “멀리서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서 뜯어보면 두께나 곡선이 다르다”며 “요즘 자동차 디자인은 서로 닮아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닛산 인피니티를 판매하는 딜러(독립판매대리점)들은 디자인이 비슷한 싼타페 때문에 차량 판매에 불이익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피니티 딜러 관계자는 “개성을 중시하는 수입차 소비자들 중에는 디자인이 유사한 국산차가 나올 경우, 구입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싼타페가 인피니티 FX의 ‘고급차 이미지’를 흡수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FX는 6450만~7850만원으로 싼타페(2220만~3116만원)에 비해 4000만원 이상 비싸다.

앞서 현대차가 출시한 그랜저(TG)와 쏘나타(NF)는 혼다 어코드 구형모델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다. 기아차의 소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스포티지’는 천장부터 뒤쪽으로 길게 내려오는 선이 볼보 ‘XC90’와 비슷하고, 앞모습은 폴크스바겐 ‘투아렉’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르노삼성의 ‘SM7’은 기술제휴 관계에 있는 일본 닛산의 ‘티아나’와 디자인이 거의 똑같아, 자체 디자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디자인 모방’에 대해 자동차 업계 일각에선 “현대·기아차가 세계 7위의 자동차 메이커(354만대 생산)로 성장한 만큼, 디자인에서도 현대·기아만의 개성적인 캐릭터를 가져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소수인 고급세단이나 스포츠카와 달리, 대량생산 자동차의 경우 세계적인 베스트셀링카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이근 교수는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수십만 대를 팔아야 하는 양산(量産)차는 디자인이 우수하다고 검증된 차들을 모방하는 것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