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 처리장 활용 방안, 유적 훼손 논란 가속

(경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기 1-3세기에 축조된 초기 신라시대 공동묘지로 밝혀진 경부고속철도 구간 내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유적이 고속철 공사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토사(土沙)에 압사될 위기에 몰렸다.

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이백규)이 지난 8일 마련한 덕천리 유적 발굴조사 설명회에서 경부고속철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은 유적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이 구간 247m에는 교각을 설치하는 대신, 너비 80m 규모로 성토(盛土)를 하는 방식으로 선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공단 측은 "경부고속철 구간 중 경주-언양 구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토사(흙이나 모래, 자갈 등)를 처리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공단 측에 의하면 경주-언양 구간만 해도 고속철 건설 과정에서 300만 헤베로 추산되는 토사가 발생하며, 이를 전부 처리하기 위해서는 10만평 이상의 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2004년 6월 이후 현재까지 중간 조사 결과 목곽묘 80기, 옹관묘 50기와 같은 초기신라시대 고분 130기를 비롯해 청동기시대 분묘와 주거지 및 통일신라 도로 3곳 등의 복합유적으로 확인된 덕천리 유적은 고속철 토사 처리장으로 전락할 수 있어 유적 훼손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철도시설공단측은 나아가 고속철 건설에 따른 유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토 방안 대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교각 건설 요구에 대해서는 "그렇게 된다면 당초 9개월로 예정한 고속철 공사는 18개월 가량으로 늘어나게 되며, 그에 따른 사업비도 72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날 발굴설명회에서 나름의 홍보활동을 펼치던 공단측 한 간부는 "(성토 대신 교각 건설의 채택은) 국민과 약속한 고속철의 개통공기를 위반하는 셈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A 지도위원은 "(유적 확인 등으로 인한) 고속철도 구간 변경 등은 지금 단계에서는 물 건너 간 일"이라고 하는가 하면, B 지도위원은 "이미 조사가 완료된 유적은 빈껍데기나 다름 없다"는 말로써 철도시설공단측의 주장에 보조를 맞추는 듯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덕천리 유적은 아직도 조사가 이뤄져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아 있고, 그에 따라 더욱 많은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논의들은 "성급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초기신라시대 분묘 유적만 해도 책임조사원 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 학예실장은 "현재까지 조사 성과로 미뤄 볼 때 80기가 확인된 목곽묘는 130기, 50기가 확인된 옹관묘는 70기 정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발굴작업이 끝나지 않았음을 밝혔다.

현장설명회에 참여한 문화재청 담당자는 "발굴조사가 중간쯤 완료된 유적을 두고, 문화재위원회도 아닌 지도위원회에서 그 유적 처리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면서 "지도위원회 의견을 수렴한 조사단 의견이 향후 유적 처리 방안을 결정하는데 중요할 수는 있겠지만, 유적 처리 방안은 조사가 완료될 즈음 문화재위원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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